일과 믿음
‘아시아에서 노동시간이 가장 긴 나라’, ‘일에 미쳐있는 나라’ 등, 우리나라는 일이라는 분야에 있어서는 세계적인 나라이다. 실제로 미국 CNN은 한국이 세계최고를 차지하는 10가지 분야를 꼽으면서 3번째로 ‘일 중독’ 부문을 선정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일이 곧 삶이자 일상이다. 반면에 노동생산성은 OECD 회원국 22개국 중 17위다. 일을 그렇게 열심히 하는데 실제의 결과는 열심히 한 시간만큼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고, 일하는 시간이 지나치게 길어 오히려 생산성이 떨어진다는 분석이다. 그래서 정부에서는 내년부터 주 52시간 상한제를 실시하여 현재의 지나치게 긴 노동시간을 단축하려 하고 있다.
긴 노동시간도 문제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일에 대한 목적을 잃어가고 있다는 것이 더욱 큰 문제다. 단지 일만 열심히 할 뿐 무엇을 위해서 일을 하는지, 왜 일을 하는지에 대한 궁극적인 의미가 결여되어 있다.
우리의 신앙도 그런 것이 아닐까? 목적을 상실하고 그저 교회 문턱만 넘나들고 있는 것은 아닐까? 목사님은 우리에게 자주 ‘사명에 부도내지 말라’고 말씀하시는데, 이는 목적을 상실하지 말라는 말씀 아닐까? 먹고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일하면 능률이 오르지 않고 재미가 없다. 그러나 목적이 분명하면 일이 신바람난다. 하나님의 일도 그렇다. 천국의 확실한 소망과 그 날에 받을 상에 목적을 두면 누가 말려도, 누가 뭐라 해도 열심을 낼 것이다.
목적이 이끄는 삶, 그런 자가 성공자요, 행복한 자다. “소망이 더디 이루게 되면 그것이 마음을 상하게 하나니 소원이 이루는 것은 곧 생명 나무니라”(잠13:12). 김성일 집사
쓰지 않으면 녹슨다
지난 8월, 하나님의 은혜로 이사를 하면서 깨달은 것이 많다.
나는 전도사로 생활하면서 단출하게 필요한 것만 지니고 살아왔다고 자부했다. 그러나 막상 이삿날이 되어서 짐을 내릴 때 나는 너무나 놀라서 할 말을 잃었다. 사다리차로 내린 그 많은 짐들…, 그중에 몇 가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쓰레기였다. 있으면서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창고에 방치되어 있었거나 혹은 관리부실로 제 기능을 할 수 없게 된, 말 그대로 진짜 쓰레기였다.
그 때 깨달음의 첫 번째는 주어진 것을 성실하게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소소한 생활 집기부터 나름 고가의 가전제품까지 사용하지 않으니 그것들의 크기와 가격에 무관하게 먼지만 낀 쓰레기가 되었다.
하나님이 내게 달란트를 주셨는데 그것을 사용하지 않으면 쓰레기가 된다. 건강을 주셨는데 몸을 사용하지 않으면 망가지게 되고, 젊음을 주셨는데 젊음을 사용하지 않으면 이미 늙은이와 같다. 물질을 내게 주신들 잘 사용하지 못한다면 종이쪼가리에 불과할 것이다.
그래서 더욱 목사님이 존경스럽다. 하나님이 주신 은사를 귀히 여기고 목회 내내 성실하게 귀신축사의 은사를 사용하셨다. 남들과 비교하지도 않으시고 가볍게 여기지도 않으시며 문자 그대로 성실히 은사를 사용하여 교회를 섬기시고 예수님을 증거하셨다.
두 번째로 비워야 한다는 것이다. 새롭게 도배하고 단장한 집에 쓰레기를 가지고 들어가는 사람은 없다. 성령으로 새롭게 된 삶을 살고자 하는 사람이 옛 사람의 죄 된 습관을 버리는 것은 당연하다. 허락하신 새 땅에 들어가려면 이 세상의 것을 비워야만 한다.
겉모습만 전도사로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어느새 나도 모르게 창고 한 편에 쌓여져 있는 짐들처럼 슬그머니 틈타고 들어온 게으름과 나태함은 없는지,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 땅에서, 그리고 하늘에서 주실 상을 누리기에 합당한 비움을 늘 실천하고 있는지 반성해본다.
오늘 하루도 내게 주어진 것으로 하루를 성실하게 채워나가고 나의 옛것들은 비워내길 기도한다.
이현승 전도사
coollee0817@naver.com
믿음은 위기를 먹고 성장한다
우연히 신문에서 ‘모 기업이 소송으로 고객을 압박하여, 계약의 해지, 또는 축소를 시도하는데, 대기업을 상대로 개인이 대응하기 어려워 피해가 심각하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었습니다. 2016년 여름, 신문에서 보던 일이 어머니에게 찾아왔습니다. 상대는 법원장 출신의 변호사를 포함한 9명의 변호사였습니다. 피고로서 소송에 응하든지, 소송을 취하하는 조건으로 상대가 원하는 요구를 받아들이든지 선택해야 했습니다.
먼저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배우자가 기도 중에 사무엘하 17장(골리앗과의 전투에서 승리한 다윗) 말씀을 받고, 변호사 도움 없이 아들인 제가 대리인으로서 직접 소송에 응할 것을 강권했습니다. 그러나 상대 변호사들의 화려한 경력 앞에 위축되었고, 도저히 혼자 법정에 설 자신이 없어서 회피하고 싶었습니다. 그래도 “총회장 목사님께서 설교 중에 다윗과 골리앗에 대한 말씀을 또 하신다면, 진정 하나님 뜻인 줄 알겠습니다.” 하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총회장 목사님의 설교 중에 ‘다윗과 골리앗의 말씀’으로 응답하셨고, 하나님께서 저에게 원하시는 것은 ‘하나님만 의지하며 직접 어머니의 대리인으로 법정에 나가는 것’이었습니다.
총회장 목사님을 뵙고 사연을 말씀드렸습니다. 목사님께서는 ‘이 사건은 하나님을 자랑할 수 있는 절호의 찬스이며, 네가 의롭다면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법무법인이 너를 상대할지라도 너를 이기지 못할 것’이라고 진심을 다해 축복해주셨습니다.
몇 달에 걸쳐 1심 재판이 진행되던 중,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갑자기 재판장은 상대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합의할 것을 권고하고, 변론을 종결시켜버렸습니다. 저는 믿음으로 합의권고를 거부했습니다. 그러나 재판장은 이미 상대의 손을 들어주기로 판단이 선 상태였습니다. 곧바로
‘유능한 변호사를 찾았어야 했다’는 소리가 들려왔으나 이를 악물고, 오직 나를 도우실 분은 하나님 밖에 없다고 간절히 믿음으로 고백했습니다.
선고기일 2주 전 밤 9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는데, 놀랍게도 재판장의 전화였습니다. ‘재판 기록을 재차 살피니 원고가 청구를 잘못한 것 같다. 편견 없이 다시 보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상황이 역전되었다는 것을 직감했습니다. 마침내 1심 선고 결과가 나왔고, 승소하였습니다.
며칠 뒤, 상대는 항소했습니다. 2심(항소심)은 1심과 다르게, 가족이 대리인으로 법정에 설 수 없고, 당사자가 직접 법정에 출석하거나 변호사를 선임해야만 했습니다. 하나님 뜻을 따라 변호사 도움 없이, 100% 하나님께서 이기게 하셨다고 자랑하는 것이 목적이었으므로, 어머니께서 법정에 직접 출석하는 방법을 선택했습니다. 그런데 어머니께서 법정에서 제대로 답변할 수 있을지 걱정되었습니다. “재판장이 제출한 모든 자료를 완벽히 이해해서, 어머니에게 질문을 하나도 하지 않게 해주세요.”라고 조목조목 기도했습니다.
2심 첫 변론기일에 미리 참석하여 다른 재판을 보았습니다. 재판장은 아주 자세히 질문을 많이 하고, 허술한 주장을 하는 쪽에는 면박을 주기도 했습니다. 매우 긴장되고 무거운 분위기에 압도되었습니다. 급박한 상황이 되니, 어린 아이 같이 “아버지가 어린 딸을 대하듯, 재판장이 어머니를 대하게 해주세요.”라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드디어 어머니 순서가 되었고,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재판장이 온화한 미소를 머금으며, “피고 이름이 참 특이하시네요. 가운데 ‘여’자가 천자문에 나오는 한자지요?” 하고 긴장을 풀어주었습니다. 재판장은 몇 마디 부드러운 농담을 더 하고서 제출한 자료를 스스로 요약해서 알려주고, 어머니께 그 내용이 맞는지만 물었습니다. 어머니께서 법정에서 한 말은 “네.”라고 답한 것이 전부였습니다. 재판장은 더 볼 것이 없다는 듯 변론을 종결했습니다. 어머니는 마치 ‘재판장을 보는 것이 총회장 목사님을 뵙는 듯 하였다’면서, 하나님께 감사의 눈물을 한참 흘리셨습니다. 역시 2심 선고 결과도 100% 승소였습니다.
목사님의 말씀처럼,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가야 합니다. 그 뜻을 따라갈 때, 하나님은 저와 같이 겁 많은 사람에게도 위기를 먹이 삼아 믿음을 성장시켜주시고, 승리의 희열을 맛보게 하셨습니다. 사람의 눈으로 다윗과 골리앗을 바라보면, 칼과 창과 단창을 들고 있는 거대한 장수 골리앗이 더 커 보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면, 다윗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훨씬 크십니다. 삶 속에 골리앗 같은 문제가 찾아올 때, 문제 위에 계신 하나님을 바라본다면 가장 정확한 해결책을 얻을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 손에 달려있으니까요!
정명관 성도
vic-777@naver.com
거저 주는 자의 축복
2009년에 TED라는 걸 처음 알게 되었을 때 꽤 충격을 받았습니다. TED는 미국의 비영리 재단인데요, 1984년부터 강연회를 개최하고 있습니다. 과학기술, 환경, 디자인, 국제사회 이슈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초청되어 18분간 강연을 하지요. 그 강연 영상을 2006년부터 웹사이트에 올리면서 전 세계인이 수많은 강연을 무료로 볼 수 있게 되었고, 엄청난 화제와 인기를 끌었습니다. 요 몇 년간 국내에도 TED의 강연 형식을 따라하는 여러 TV프로그램들이 생겨났지만 2000년대 초반에는 TED 말고는 거의 전무했었죠.
제가 처음으로 접한 TED의 강연은 어느 대학생의 것이었습니다. 그는 스캐너 없이도 그저 손으로 사물에 영역을 그리면 그 부분이 저절로 컴퓨터에 저장되고, 카메라 셔터를 누르지 않아도 손동작만으로 사진이 촬영되는, 마치 SF 영화에나 나올법한 기술을 개발해 발표했습니다. 그 기술도 놀라웠지만 제가 충격을 받았던 건 그가 자신이 개발한 기술을 모두가 알 수 있도록 오픈 소스로 온라인에 공개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강연을 마치고 청중들에게 자신의 기술을 기반으로 더 나은 기술을 만들어달라고 말했습니다. 당장 기업에 팔아도 큰돈을 받을 수 있는 기술을 모든 사람에게, 그것도 무료로 공개하다니, 그 열린 태도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남들과 경쟁하는 게 일상인 사회에서 살아왔습니다. 그래서인지 돈이 되는 지식을 아무런 대가없이 남들과 공유하는 사고방식이 제겐 신선하고 놀라웠습니다. 당시 신입사원이었던 제 모습, 그리고 제 선배의 모습과는 너무나 대조적이었죠. 하루는 선배가 컴퓨터 프로그램의 단축키를 능수능란하게 사용하는 걸 보고 단축키를 좀 알려달라고 부탁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자 선배는 “나도 이거 우리 선배가 안 가르쳐줘서 내가 책 사다가 일일이 배운 거야.”라고 대꾸하고선 끝내 가르쳐주지 않았습니다. 저라고 별반 다르지 않았어요. 어쩌다 좋은 광고기획서를 구하게 되면 저 혼자 보면서 공부하고 그랬거든요. 하지만 TED의 그 청년을 본 이후에 저 자신을 되돌아보게 되었고, 제가 가진 좋은 자료들을 친구들과 공유하고 제가 아는 노하우를 후배들에게 하나하나 가르치려고 노력하게 되었습니다.
‘교학상장(敎學相長)’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가르치고 배우면서 함께 성장한다는 뜻입니다. 생각해보면 학창시절에 내가 아는 걸 친구들에게 설명해주면서 나 또한 한 번 더 배우게 되잖아요. 남에게 주는 것 같지만 사실 나도 받고 있는 거지요. 마태복음 10장 8절에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나병 환자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되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 세상엔 하나님이 우리에게 거저 주신 것이 참 많습니다. 귀신 쫓는 능력, 기도할 수 있는 능력, 건강, 재능, 인맥, 물질. 그 많은 것들을 거저 받았으니 이제는 조금 더 여유로운 마음으로 거저 주는 자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랬을 때 주님께서 더 채워주시지 않을까요?
신은혜 성도
dopal0203@naver.com
진리로 무장한 인생
참된 의는 끝까지 하나님을 향한 소망에 바르게 반응하는 것을 말합니다.
한 간증을 듣게 되었습니다. 교회에 헌신하는 신실한 부부가 있었는데, 남편은 제법 큰 사업을 하며 교회재정에도 큰 기여를 하는 교회의 보배역할을 하고, 부인 집사님 역시 주님 사랑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영혼을 사랑하고 섬기며 이 두 사람은 한 번도 새벽예배를 빠지지 않는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어느 날 새벽예배를 마치고 남편이 일이 있어 먼저 교회를 출발한 지 약 30분이 지나서 청천벽력 같은 연락이 왔는데, 앞서 출발한 남편이 교통사고로 현장에서 소천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비보를 접한 목사님과 일꾼들이 너무 큰 충격에 빠져 서로 눈치만 살핍니다. 그도 그럴 것이 부부가 몸을 아끼지 않고 섬기며 물질로 봉사했는데 “하나님이 살아계시면 이럴 수 있느냐?”며 믿음이 연약한 새신자들이 단단히 시험에 들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사고가 난 다음날 아침, 병원 장례식장에 있어야 할 아내 집사님이 새벽예배에 참석했습니다. 그 다음날 역시 새벽예배에 참석하자 모든 성도들이 함께 눈물을 흘리며 안타깝게 바라봅니다. 그렇게 모든 장례를 치른 후 변함없이 충성하는 집사님을 바라보던 성도들이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모습이 진정한 신앙인이요, 참 그리스도인’이라며 그 집사님은 자연스럽게 그 교회에서 신앙의 롤모델이 되었고, 그 후 웬만한 환난과 시험쯤은 훌쩍 뛰어넘는 성숙한 교회와 성도들로 거듭났다는 마음 뿌듯한 간증입니다. 참된 믿음은 온갖 역경을 이겨내고 바위틈에서 피어나 그 향기와 자태를 드러내는 한 송이 꽃과 같습니다. 우리는 복음의 능력으로 살리는 영을 부여받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어떤 환난과 고통과 사망의 음침한 죽음의 자리에서도 결코 무너지거나 쓰러지지 않는 하늘의 권능을 의지하는 우리들에게 ‘과거는 에벤에셀!, 현재는 임마누엘!, 미래는 여호와이레!’ 뿐입니다.
김정옥 전도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