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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3호 목차 › Text 주일설교

성령 받았으면 전도하라(행1:8)

973호 · 2018-10-21

‘본토와 아비와 친구를 뒤로하고/ 죽음을 앞세우고 주만 따라 갑니다/ 주님의 뜻 이루려고 이 목숨 바치오니/ 오 내주여 오 내주여 내게 힘을 주옵소서…/오늘도 떠납니다 주의 복음 전하러/ 내일도 가렵니다 주의 복음 전하러’

‘사도의 길’이라는 저의 신앙 고백송입니다. 저는 지난 주 성가대에게 이 찬양을 부르라고 했습니다. 다시 세계선교와 국내전도에 매진하겠다는 저의 결심을 보인 것입니다.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20:24)고 고백한 사도 바울처럼 저 역시 복음을 전하는 일에 이 목숨을 바치리라 다시 한 번 다짐합니다.

여러분도 이 일에 적극 동참해주시겠습니까? 복음을 전하는 일은 저에게만 부탁하신 것이 아니라 모든 믿는 자에게 부탁하셨으니 말입니다. 아니 부탁이 아니라 전도는 하나님의 지엄한 명령입니다. “하나님 앞과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의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딤후4:1~2). 이는 바울이 디모데에게 보낸 편지인데, ‘엄히 명하노니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고 말함으로 전도가 하나님의 명령임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예수님도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요20:21),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막16:15),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마28:19~20)고 명령체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궁극적인 목적은 영혼구원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 중 단연 으뜸도 영혼을 구원함에 있고(막1:38), 예수님이 12제자를 삼으신 이유도 먼저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기 위해서요, 다음은 전도하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막3:14). 교회의 사명 역시 영혼구원에 있습니다.

또한 전도는 하나님의 소원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2:4)고 말씀합니다. 믿지 않은 영혼들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은 자식을 잃어버린 부모의 마음 같이 애가 탑니다. 한 마리 양을 찾아 헤매는 목자의 마음(마18), 집을 나간 아들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는 아비의 심정이 하나님의 마음입니다(눅15). 그 하나님의 마음을 풀어드릴 사람이 바로 먼저 믿은 우리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 모든 사람이 구원에 이르고 진리를 알게 되기를 소원하십니다.

그런데 전도가 어렵지요? 진심으로 하나님의 소원을 이뤄드리고 싶은데, 하나님의 명령을 받잡고 싶은데 잘 안 되지요? 이유가 있습니다. 인간의 생각과 지식으로 전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전도는 우리의 지식이나 언변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지식이 많고 달변가라고 전도를 잘하는 것이 아닙니다. 누가 지식으로 사도 바울과 견주겠습니까만 그런 바울도 자신의 지식으로 전도해보려다 실패한 경험이 있습니다. 아덴에서입니다. 그곳은 철학적으로 뛰어난 곳이며, 우상이 들끓는 곳인데, 바울은 그곳에서 철학적으로, 사상적으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들과 쟁론도 하고, 변론도 하고, 그들 수준에 맞게 설교를 했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참담했습니다. 사람들의 조소와 반대에 부딪쳐 바울은 설교를 중단해야 하는 사태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저희가 죽은 자의 부활을 듣고 혹은 기롱

(譏弄)도 하고 혹은 이 일에 대하여 네 말을 다시 듣겠다 하니”(행17:32).

아덴에서 전도에 실패한 바울은 고린도 지방에 이르러 이교도들의 강한 세력과 철학자들의 사변과 교만한 태도, 그리고 도덕적으로 타락한 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려고 할 때, 인간적인 중압감을 느껴 두려워 떨었습니다.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며 두려워하며 심히 떨었노라”(고전2:3). 그런 그가 작정한 것이 있습니다.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지혜의 권하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하여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

(고전2:4~5)는 것이었습니다. 즉 무엇을 전해야 할지, 어떻게 전해야 할지를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에 전적으로 의존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학식이 있는 자나 권력 좀 있는 자를 전도하려면, 아니 누구에게든 전도하려면 바울처럼 두려워 떨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성령이 임하면 달라집니다. 사람 앞에 설 때 무슨 말을 할지 염려하지 않아도 됩니다. 지혜와 지식의 원천이신 하나님이 성령으로 일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면… 내 증인이 되리라’고 말씀하신 것은 성령을 받아야 전도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도 성령을 받고 나서야 복음의 사역을 감당하셨지 않습니까?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눅4:18~19). 그 예수님은 부활 후 승천하시며 그를 따르던 자들에게 “볼찌어다 내가 내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을 입히울 때까지 이 성에 유하라”(눅24:49)고 하셨고, 120문도는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성령 받기를 기다리며 전혀 기도에 힘썼습니다. 약속대로 성령은 오순절에 임하셨고(행2:1~4), 성령 받은 그들은 나가서 두루 복음을 전파했던 것입니다.

여러분, 다 성령을 받으셨지요? 그렇다면 나가서 전하세요. 우리에게 성령을 주신 것은 돈 벌라고 주신 것이 아니라 전도하라고 주신 것입니다. 성령을 받음은 무기와 연장을 받은 것입니다. 무기가 좋으면 영적 전쟁에서 이길 수 있고, 연장이 좋으면 일이 쉽지 않겠습니까? 성령을 받으면 권세와 능력이 임하기 때문에 지금도 살아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눈으로 보여줄 수 있어 전도하기가 좋습니다. 그래서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찌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막16:17~18)고 하신 것입니다. 베드로나 바울, 그리고 예수님의 제자들이 성령의 충만함을 입고 나가 귀신을 쫓고 병을 고치며 기사와 표적을 나타내며 하나님 말씀을 확증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두 사도가 오래 있어 주를 힘입어 담대히 말하니 주께서 저희 손으로 표적과 기사를 행하게 하여 주사 자기 은혜의 말씀을 증거하시니”(행14:3).

그리고 하나 기억할 것은 복음을 전할 때 너무 복잡하게 전하면 안 됩니다. 진리는 자고로 단순한 겁니다. 예수님이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14:6)고 간단하게 말씀하셨듯이, 여러분도 나가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행4:12)고 전하면 됩니다. 듣는 자는 구원을 얻을 것이요, 듣기를 싫어하는 자는 어쩔 수 없는 것입니다. 씨는 우리가 뿌리지만 거두시는 분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전하는 자가 없이 누가 듣겠습니까(롬10:14)? 우리도 누군가의 전도로 오늘이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때를 얻든지 못 얻는지 전파해야 할 것입니다. 분명히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리라”(단12:3)는 말씀이 당신에게 임할 것입니다. 할렐루야!

결코 차선은 없다

오직 최선을 다하자

한 영혼이

천하보다 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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