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포도주를 헌 부대에
마가복음 2장 22절에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느니라”는 예수님 말씀이 있습니다. 성경에는 포도주로 나오지만 정확히 번역하면 포도즙이라고 합니다. 가죽부대에 넣기 전 상태는 포도즙이고 포도즙이 가죽부대에 담겨서 발효됨으로써 포도주가 되는 것입니다.
포도즙을 가죽부대에 담아 놓으면 발효되면서 가스가 발생하여 팽창하게 됩니다. 새 포도주는 팽창하는 힘이 있어서 가죽부대는 여러 번 늘어났다 줄어들었다 하는 탄력성이 있어야 합니다. 헌 가죽부대는 탄력성이 부족하여 팽창하는 가스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터져 버립니다.
새 포도주를 예수님의 말씀으로 비유한다면 가죽부대는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으로 비유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들어오는 순간 성령의 역사로 인해 우리 안에서 복음의 능력이 팽창하게 됩니다. 우리가 구태의연한 믿음과 형식적 교회 규정에 얽매여 있다면 온전히 예수님을 품을 수 있을까요? 아마도 복음의 거센 힘을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무너져버리고 말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이 혼자만의 구원에 만족하고 복음을 전달하는 데 소홀하지는 않는가요? 교회가 점차 조직적이고 체계화되면서 영적 모멘텀이 약화되지는 않았나요? 교회 지도자가 하나님의 나라보다 사리사욕에 우선순위를 두고 있지는 않나요? 교회 봉사자가 하나님의 의보다 사람의 의를 우선하지는 않나요? 예배가 형식과 제도, 문화만이 남아있지는 않나요? 하나님보다 교회를 우선하여 자랑하지는 않나요? 말만 사랑한다고 하고 실천은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은 아닌가요? 천국에 대한 소망보다는 돈, 명예, 권력과 같은 현실적 소망이 우선하지는 않나요? 바리새인을 욕하면서 정작 자신은 위선과 형식에 치우치고 있지는 않나요?
우리가 만일 이러한 의문에 해당하는 사항이 있다면 우리는 낡고 더 이상 쓸 수 없게 된 헌 가죽부대에 해당됩니다. 헌 가죽부대에는 새 포도즙이 들어와 발효하여 터져야 합니다. 낡고 어두운 형식적이고 위선적인 믿음 생활이 부서지고 없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새 술은 새 부대에’가 ‘새로운 조직에는 새로운 변화가’라는 외형적 변화로 인식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며, 내적, 즉 영적 변화로 인식하는 것이 올바른 것입니다. 세상을 쫒는 대신 예수님을 택하는 선택, 내 생각보다 하나님의 음성에 기울이는 습관, 내가 가진 모든 것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므로 모두 드릴 수 있다는 마음, 내 삶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 제사로 드려지기를 간구하는 마음이 우리에게 항상 함께하길 기도합니다.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엡4:22~24). 이관섭 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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