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 덧날라!
지난 주 나는 금식을 하면서 영상을 편집했다. 이를 안 직원들이 내게 왜 금식하느냐고 걱정스레 물었다. 나는 그들에게 “속이 거북해. 위가 힘들고 아프다고 해서 좀 쉬게 하려고. 위가 아프다는데 자꾸 밥을 넣어서 건드리면 더 아프지. 좀 쉬게 하는 게 최선이지.”라고 말해줬다.
이건 진리다. 상처가 난 곳을 자꾸 건드리면 상처가 덧나고 낫질 않는다.
아내들이 가끔 하는 실수가 이것이다. 부부싸움을 할 때 남편의 과거 잘못을 자꾸 꺼내는 것 말이다. 또 애들에게도 “너, 그 때 그랬잖아.” 하면서 훈육을 하는데 그러면 애들은 반발만 하게 되고, 남편은 “또 그 얘기야?” 하며 버럭 화를 내며 방을 박차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왜냐하면 이제 좀 나을 만한데 다시 상처를 후비는 격이기 때문이다. 아픈 부분을 자꾸 건드리니까 나오는 당연한 반응이다.
용서는 서류 보관하듯 잘못을 한 곳에 차곡차곡 챙겨놓는 것이 아니다. 완전히, 온전히 잊어주는 것이 진정한 용서다. 하나님이 우리의 죄를 기억하지 않으신 것처럼. “내가 저희 불의를 긍휼히 여기고 저희 죄를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히8:12).
왜 하나님이 죄 지은 자를 일흔 번에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고 하셨겠는가. 용서한 것은 잊었기에 처음 용서하듯 하라는 것 아니겠는가.
스승인 자신을 세 번이나 부인한 베드로를 만난 예수님이 “너 그럴 수 있냐? 너를 수제자라고 믿었던 내가 어리석었지.”라고 혼내지 않으셨다. 그저 물고기를 구워 먹이시고, ‘너, 나 사랑하지?’ 하고 물으셨을 뿐이다.
재산을 탕진하고 돌아온 아들에게 그 아버지는 아무것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으셨다. 좋은 옷과 반지를 끼우며 그저 감싸기만 했다. 그렇다. 상처는 감싸줘야 낫는다. 약을 바르고 거즈로, 밴드로 싸줘야 낫는다. 본시 상처 받은 사람이 제일 아픈 법이니 굳이 후벼 파지 말아야 한다.
남의 아픈 과거, 아픈 상처를 자꾸 건드리지 마라. 괜히 사랑인척 자꾸 만지지도 말라. 아예 잊어주고 보듬어줘라. 상처에 덧나지 않도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