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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과 함께 하는 점심식사

970호 · 2018-09-30
세상을 보는 창

2018년 6월, 인터넷 경매 사이트 이베이에 흥미로운 경매가 열렸다고 한다.

경매품은 다름 아닌 ‘오마하의 현인’이자

‘투자의 달인’ 워런 버핏과의 점심식사권이다. 버핏과의 오찬은 버핏 회장과 점심을 먹으며 투자 계획을 제외한 모든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주는 행사로 2000년부터 시작되었는데, 올해 경매 낙찰가는 역대 낙찰가 중 3번째로 높은 330만 달러(약 35억 5,000만원)에 낙찰됐다. 최고가는 2012년, 2016년에 낙찰된 345만 6,789달러(약 37억 2,000만원)다. 뉴욕의 소박한 스테이크 하우스에서 단 3시간 동안 진행되는 이 점심식사는 ‘세상에서 가장 비싼 식사’이지만, 투자자라면, 돈만 지불할 능력이 된다면 누구나 한 번은 꿈꾸는 한 끼의 식사라고 한다.

그러면 약 35억을 점심값으로 지불하면서 과연 이 워런 버핏에게 어떤 질문을 할까? 사실 그 비싼 점심을 먹는 이유를 인터넷을 통해 찾아봤다. 그 중 2008년도에 65만 달러로 낙찰을 받은 ‘가이 스파이어’가 있었다. 그는 워런 버핏을 만나고 그를 통해서 배울 수 있었던 것은 어떻게 하면 투자를 잘할 수 있는가가 아니고, 자신이 가진 것을 가지고 사람들에게 줄 수 있는 자선에 대해서 배울 수 있었다고 말하며, “이제 나의 목표는 버핏이 되는 것이 아니고, 더 진실한 내가 되는 것이다. 진실한 나를 통해서 진정한 성공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는 것을 배웠다.”고 했다.

성경 역대하 9장 1~9절에 보면 솔로몬의 지혜를 소문으로 듣고 시험코자 스바 여왕이 찾아왔다가 솔로몬의 지혜의 말씀을 듣고 놀라 지혜를 주신 하나님을 송축하며 금과 많은 향품과 보석을 왕에게 드렸다. 마태복음 12장 42절에 스바 여왕은 땅 끝에서 솔로몬의 지혜를 듣고자 왔다고 말씀하시면서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고 말씀하셨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예수님과 함께 하는 점심식사를 경매에 붙인다면 얼마나 할까? 그것을 돈으로 환산할 수나 있을까? 그런데 그 값은 공짜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이 진실된 관심을 가지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온 세상의 주인이시고 솔로몬보다 더 큰 주님이 우리를 매일 만나길 원하신다. 그리고 모든 것을 가르쳐주시기 원하신다. 그 주님과 함께 하는 점심식사, 당신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이정금 전도사

jungkm@nate.com

오늘의 메세지

무엇이 우선인가?

자고이래 수많은 종교인, 철학자, 수행자들이 ‘나’란 존재는 무엇인가를 깨닫고, 영생을 얻기 위해 치열하게 살아왔다. 그래서 얻게 된 경지를 득도, 해탈이라 했다. 공자는 ‘아침에 도를 깨닫는다면 저녁에 죽어도 원이 없겠다’고 했고, 석가모니는 왕국도, 처자식도 다 버렸다. 내가 구원의 길에 다다르는 것이 무엇보다도 시급하고 우선인 것을 알기 때문 아닌가.

그러나 육체를 입고 있으면서 모든 욕망과 고통과 살기 위한 수고로움에서 벗어나려면 죽는 길 밖에 더 있는가. 삶이 고달픈 사람은 그래서 생명을 버린다. 어떤 이는 십 년 동안 눕지 않고 자지 않으며 육체의 욕망을 이기고 궁극의 깨달음을 얻고자 했다. 그러나 그 치열한 과정을 다 이겨낸 그가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아아! 나는 속았다’고 외치고 임종했다고 한다.

우리가 죽어 천국에 자력으로 갈 수 있나? 길을 아는가? 나사로는 천사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안겼다. 믿음으로, 창조주께 의탁함으로만 갈 수 있는 곳이 천국이다.

내 구원이 우선이다. 예수께서 실제 함께 하시고 인도하시는지 점검해보라. 그저 ‘믿습니다’는 위험하다. 치열하게 간구하여 그 확신을 얻어야 한다. 무엇이 급한가? 무엇이 우선인가? ‘헛되고 헛되니 헛되고 헛된’ 인생사에서 주님 만나 뵙고 인도하심을 받는 일보다 시급하고 복 된 일이 있는가! 주님께 감사하며 다만 간구 드린다. ‘주님, 심판의 자리에서 더욱 떳떳하게 설 수 있도록 주님의 사랑과 권능이 충만하여 원 없이, 한 없이 쓰임 받다 가기를 예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

이광주 전도사

leekjlkj@naver.com

생명의 말씀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

“박사님, 아멘 약 주세요.”란 책을 쓴 황수관 박사에 의하면 우리 몸에는 내장인 심장, 위, 장, 신장, 및 방광을 지배하는 자율신경이 있다. 자율신경은 교감신경과 부교감신경으로 구분되는데, 교감신경은 주로 불안, 공포, 초조, 시기, 질투, 놀람, 분노, 욕심, 미워하는 마음이 있을 때 강력히 작용한다고 한다. 그래서 교감신경이 작용하면 그 여파로 심장이 급하게 뛰고 소화불량이 되는 등 내장에 병을 초래한다. 죄를 지었을 때 마음이 불안하고 가슴이 뛰고 손이 떨리는 것도 바로 교감신경 작용의 결과라 한다. 이에 반해 부교감 신경을 활성화시키면 건강해진다. 기쁜 마음, 아름다운 마음, 사랑하는 마음, 봉사하는 마음, 감사하는 마음, 고마워하는 마음, 겸손한 마음, 남을 귀히 여기는 마음이 부교감 신경을 자극하는 촉매제들이다. 이 부교감 신경이 자극되어야 육체가 건강해지는 것이다. 그러니 항상 기뻐하며 범사에 감사하는 마음은 부교감 신경을 크게 자극해서 건강한 삶을 살도록 해 주는 것이다.

‘나의 갈길 다가도록’을 비롯하여 수 천곡의 찬송가를 작시한 화니 그로스비 여사는 일생동안 소경으로 살았던 사람이다. 어느 성도가 그녀에게 묻기를

“당신의 얼굴은 늘 밝고 감사의 빛으로 차 있네요. 당신의 처지를 보면 감사할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데 무엇이 그렇게 감사합니까?” 그러자 그녀는 “감사의 조건들이 참으로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아니라고 할지라도 내가 그리스도인이라는 단 한 가지 이유만으로도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고맙고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 라고 대답하였다. 자신이 비록 육체적으로 앞을 못 보는 소경이지만 불평이나 원망으로 삶을 비관하지 않고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로서 기쁘게 살아가는 삶 자체를 감사하고 있다. 이게 범사에 감사하는 신앙이다.

원망이나 불평은 사탄이 좋아하는 일이다. 사탄은 성도의 마음속에 원망과 불평을 심는 일을 한다. 사탄을 이기는 길은 항상 선을 추구하며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일이다. 범사에 감사함으로 사탄을 물리치는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

임택함 목사

cjcc1004@hanmail.net

한라의 핀 샤론의 꽃

희망이 현실이 되는 습관

희망이 현실이 되기 위해 우리는 세 가지 습관을 길러야 한다. 생각의 전환, 긍정적인 언어, 그리고 생각한 것과 입으로 내뱉은 말대로 행동하는 것이다.

내가 그림으로 대학입시를 준비하던 고3, 그 해는 IMF의 여파로 우리나라에 경제위기가 시작된 해였다. 그 여파는 우리 가정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예체능으로 대학진학을 준비하는 학생들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시기에 입시학원 대신 집에서 실기시험을 준비하는 건 물론, 두어 번 짜 쓰면 없어지는 비싼 물감을 사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 결과, 난 대학에 떨어졌고, 재수는 할 수 없는 상황이니 나의 환경에 수긍하며 꿈을 포기해야만 했다. 그 후 난 ‘이 상황에 내가 무슨’, ‘내가 그렇지 뭐’, ‘해도 안 될 거야’, 이런 생각으로 현실에 안주하는 삶을 살았다.

그러던 27세인 여름, “꿈은 바랄 수 없는 것을 바라는 것이며, 비현실적인 이상을 품는 것이다.”, “고착된 사고의 틀을 깨고 생각의 속도를 낸 사람은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든다.”고 하신 이초석 목사님의 설교를 듣게 되었다. 목사님의 말씀은 오랜 시간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고 내 삶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했다. 그 시간을 통해 늘 모든 것에 부정적이던 나의 생각에 변화를 가져왔고, 변화된 생각은 언어로, 그 언어는 행동으로 이어졌다. 지금의 ‘대학교수’라는 직위는 이 세 가지 습관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심리학자 마틴 셀리그만 박사는 「학습된 낙관주의」라는 책을 통해 “행복해지고 싶다면 낙관주의자가 되어야하고, 낙관주의자가 되기 위해서는 언어습관을 고쳐야 한다.”고 했다. 이 말은 아무리 극단적인 비관주의자라 할지라도 긍정적인 생각으로 언어습관을 기른다면 누구나 낙관주의자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수년, 수십 년 동안 지속된 사고방식은 너무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이어서 본인이 그렇다는 것을 누군가 알려주거나, 심각한 상황에 부딪히기 전까지는 스스로 깨닫지 못함으로써 언어와 행동에 영향을 미치기 마련이다.

언어는 생각에 의해 표현되고, 언어의 핵심은 행동이라고 한다. 다시 말하면 부정적으로 생각을 하고, 부정적인 눈으로 내 주변을 보면 언어중추가 영향을 받아 언어체계를 바꿔버리고, 우리의 행동도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반대의 개념으로는 긍정적인 생각과 더불어 덕을 세우는 말, 선한 말을 하면 우리의 행동 역시 선하고 덕을 세우는 행동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꿈, 희망, 이런 것은 한 순간에 갑자기 실현되는 것이 아니다. 내가 이초석 목사님의 말씀을 통해 깨닫고 바랄 수 없는 것을 마음에 품고 난 후 가장 먼저 한 일은 그 꿈을 이루기 위해 필요한 과정들이 뭘까 고민하면서, 해낼 수 있다는 긍정적인 생각과 긍정적인 언어로 하나하나 행동으로 옮긴 것이다. 그렇게 15년이라는 세월이 흐른 지금의 나의 모습은 내가 꿈꾸고 말하고, 행동한 결과가 아닌가 생각한다.

하나님께서는 잠언 18장 20절과 히브리서 11장 1절 말씀을 통해 ‘혀를 긍정적으로 잘 사용하면 아름다운 언어의 열매를 누릴 수 있고, 믿음으로 바라는 것들을 바라고 행동하면 이룰 수 있다’고 하셨다. 고착된 사고의 틀에서 벗어나 ‘생각하는 습관’, ‘유익하게 말하는 습관’, 그리고 생각과 언어대로 ‘행동하는 습관’을 길러 꿈과 희망이 현실로 이루어졌다고 고백하기를 소망해본다.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

권정미 성도

jmgood7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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