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은 넘지 못할 벽이 없다 (히10:37~11:6)
믿음이 무엇입니까? 히브리서에는 믿음을 이렇게 정의하고 있습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히11:1).
맞습니다. 믿음이란 ‘믿~~습니다’ 하고 기합을 넣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바라는 것, 우리가 꿈꾸고 소망하는 것이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실상과 증거를 갖는 것이 믿음입니다. ‘실상(實狀)’은 실제로 그 꿈과 소망이 이루어진 모습이요, ‘증거(證據)’란 확실한 증빙서류를 가진 것을 말합니다. 새 집을 계약했다고 합시다. 계약했다고 바로 그 집에 들어가지는 않습니다. 그럼 안 들어갔다고 내 집이 아닙니까? 아닙니다. 내 집 맞습니다. 내 이름으로 된 증빙서류를 내가 가지고 있으니까 분명히 내 집입니다. 때가 되면 곧 내 집으로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믿음이 이와 같습니다. 내가 원하고 소망하는 것들이 지금 당장 보이지 않고 이루어지지는 않았지만 믿음이 있으면 그것은 이미 내 것입니다. 믿음이란 증거, 확신을 갖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가 “꿈은 여러분을 버린 적이 없습니다. 여러분이 꿈을 버렸을 뿐입니다. 희망은 여러분을 버린 적이 없습니다. 여러분이 희망을 버렸고, 믿음은 여러분을 버린 적이 없습니다. 다만 여러분이 믿음을 버린 것입니다.”라고 누누이 말씀 드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믿음이 있노라 하면서 소망하고 꿈꾸는 것을 기도해놓고는 당장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조금 풍랑이 일고 어려움이 온다고 좌절하고 포기하고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이는 사놓은 집의 등기서류를 잃어버린 것이고, 더는 도둑맞아 명의가 남에게 넘어간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자를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히11:6). 하나님은 도전하는 자, 의욕이 넘치는 자를 좋아하시고 그들을 통해 역사를 이루십니다.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우리는 뒤로 물러가 침륜에 빠질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히10:38~39).
야곱은 얍복 강가에서 밤이 새도록 하나님의 사자와 더불어 씨름을 하다 환도뼈가 위골되는 지경에 이릅니다. 날이 밝아오자 하나님의 사자가 떠나기를 청했으나 야곱은 축복을 받기 전에는 보낼 수 없다며 하나님의 사자를 놓지 않습니다. 기필코 축복을 받고야 말겠다는 것이었습니다. 포기하지 않는 이 정신, 이 믿음 앞에 하나님의 사자도 항복했습니다. 그래서 야곱을 축복하고 이름을 이스라엘로 바꾸어주었습니다(창32:22~32).
엘리야는 3년 6개월 동안 닫혔던 하늘 문을 열기 위해 갈멜산에 꿇어 엎드려 그 얼굴을 무릎 사이에 넣고 비가 내릴 때까지 기도했고(왕상18:19~46), 엘리사는 기필코 엘리야보다 갑절의 영감을 받겠다며 엘리야를 좇더니 그의 계승자가 되어 정말 갑절의 능력으로 많은 일을 행했습니다.
소경 바디매오는 예수님을 만나기만 하면 눈을 뜰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기에 주위에서 뭐라고 하든지 예수를 목청껏 불러 소원을 이뤘고(막10: 46~52), 수로보니게 여인도 개 취급을 받았지만 예수님만이 딸을 고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기에 포기하지 않았으며(막7:25~30), 누가복음 11장에 친구에게 보리떡을 구하는 자나 누가복음 18장에 재판관을 찾아간 과부도 반드시 목적한 바를 이루고야 말겠다는 믿음이 있던 자들이었습니다. 12년 동안 혈루증을 앓던 여인(마9), 반드시 전쟁에 이겨 이스라엘의 우두머리가 되겠다던 입다(삿11), 친구를 중풍병에서 낫게 하겠다는 분명한 목적이 있었던 네 친구(막2:1~5), 꼭 아들을 낳는 것이 목적이었던 한나(삼상1), 이 모두 믿음이 있기에 뒤로 물러나지 않은 자들입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우리가 시작할 때에 확실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참예한 자가 되리라”(히3:14).
여러분, 이처럼 확고한 믿음은 넘지 못할 벽이 없습니다. 위에 나열된 위대한 믿음의 선친들에게 예수님이 하신 말씀은 “네 믿음이 너를 구원했다.”,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이것입니다. 믿음으로 소경이 눈을 뜬 것이고, 믿음으로 죽어가던 딸을 살린 것이고, 믿음으로 서자가 높은 지위에 오른 것이며, 믿음으로 하나님이 닫아놓은 태를 열고 아이를 낳은 것입니다. 오직 믿음입니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만 살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 11장을 읽어보세요.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드려 의롭다는 증거를 받았고,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맛보지 않고 승천했으며, ‘믿음으로’ 노아는 방주를 만들어 구원을 받았고…. 믿음으로 안 되는 것이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여러분은 안 되는 게 그렇게 많습니까? 왜 여전히 가난하고, 여전히 병들어 있고, 여전히 근심과 걱정으로 시름하고 있습니까? 한 마디로 믿음이 없는 겁니다. 콧바람에도 날아가는 겨자씨만한 믿음만 있으면 산을 들어 옮길 수도 있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가라사대 너희 믿음이 적은 연고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만일 믿음이 한 겨자씨만큼만 있으면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기라 하여도 옮길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마17:20). ‘산’이 무엇입니까? 바로 여러분이 가진 태산 같은 문제입니다.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오직 믿음입니다.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을 하시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 말입니다. 하나님이 팔이 짧아 구원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고 귀가 둔하여 못 들으신 것이 아니고 당신이 믿음이 없어서, 믿음이 자꾸 흔들려서 문제가 여전한 것입니다. 바울이 루스드라에서 태어날 때부터 걸어본 적이 없는 앉은뱅이를 일으킨 것은 그 앉은뱅이에게서 걸을 만한 믿음을 봤기 때문 아닙니까? “바울이 주목하여 구원받을만한 믿음이 그에게 있는 것을 보고 큰 소리로 가로되 네 발로 바로 일어서라 하니 그 사람이 뛰어 걷는지라”(행14:9~10).
여러분, 왜 여러분의 믿음이 갈팡질팡하는지 압니까? 기다릴 줄 모르기 때문입니다. 기다린다는 사실은 믿는다는 겁니다. 개도 슈퍼마켓 앞에서 주인이 기다라고 하면 불안해하지 않고 기다립니다. 주인이 곧 나올 거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능치 못할 일이 없는 하나님을 믿는다면 기다릴 수 있습니다. 못 믿으니까 ‘안 되는 건가?’, ‘나 죽는 거야?’ 하며 조급해하고, ‘이건 아냐.’ 하며 결국 믿음을 팔아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십니까? 하나님의 때는 한 번도 늦은 적이 없다는 사실을.
요한계시록에는 경계의 말씀이 있습니다.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계2:4~5). 믿음을 버린 자들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믿는 자 속에서만 역사하십니다(살전2:13). 하나님 앞에는 홍해나 여리고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죽은 자를 살리는 것이나 아픈 자를 고치시는 것이나 매일반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의 문제를 보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믿음을 보시는 것입니다.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요11:40)고 예수님이 마리아와 마르다에게 말씀하시고 나사로를 살리신 것처럼.
홍해 같은 문제가 있습니까? 여리고 같은 문제가 있습니까? 사업이, 단체가 죽었습니까? 건강을 잃었습니까? 파산했습니까? 열매가 없습니까?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능히 이 모든 일을 해결하실 것입니다. 우리 앞에 있는 것들은 다 허상입니다. 믿음만 있으면 그것들은 다 깨질 것이고, 실상은 가장 좋은 것으로, 가장 아름다운 것으로, 가장 선한 것으로, 우리가 원하는 것으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을 가지세요. 믿음을 지키세요. 돈을 많이 내면 값진 것을 살 수 있듯이, 흔들리지 않는 큰 믿음으로 입을 크게 벌리면 하나님이 분명히 채우실 것입니다. 할렐루야!
홍해를 보지 말고
하나님을 바라보라
앞의 문제는 허상이다
실상은 믿음대로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