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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6호 목차 › 세상을 보는 창

하나님 제일 중심으로!

966호 · 2018-09-02
아름다운 인생

‘하나님 아버지의 일을 먼저 하면 아버지가 내 일을 해결해 주신다’는 목사님의 말씀을 붙잡고 하나님의 일에 시간적, 물질적인 구애를 받지 않기 위해서 사업을 시작한지 1년 반.

올해 하계산상집회와 수련회 기간 동안 영상팀에 합류하게 되었습니다. 믿음이 있었지만 3주라는 시간동안 사업을 뒤로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결정이었습니다. 때마침 일이 많이 들어와 더욱 마음에 갈등이 컸습니다. 일을 다른 사람에게 넘겨 진행하는데, 일이 생각대로 잘 되지 않아 마음이 불편했고 손해도 있었습니다.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보고 계셨던 한은택 목사님께서 ‘너에게 복이 오려나보다.’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기도하면서 3주간 봉사를 마쳤습니다. 그런데 마치 누가 짠 것처럼 동시다발적으로 여러 가지 일들이 쏟아졌고, 잠자는 시간도 없을 만큼 바쁘게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목사님이 30년 넘게 말씀하신 것이 ‘하나님은 다 하실 수 있지만, 딱 하나 거짓말을 못하신다.’입니다. 정말 맞습니다.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마6:33)고 말씀하신 하나님은 그 약속의 말씀을 제게 이루신 것입니다. 제가 한 일이 아주 작은 일이었지만, 하나님은 이를 기억하시고 제게 흔들어 눌러 넘치도록 축복을 주셨습니다.

이 경험은 제 믿음의 초석이 될 것입니다. 앞으로 살면서도 내 일과 하나님의 일이 겹칠 때 당연히 하나님의 일을 택할 것입니다. 하나님 우선, 하나님 제일의 삶을 살 것이며, 이로 인해 제 삶 속에 범이 날개를 다는 축복이 임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이은성 성도

es2563@naver.com

진리의 학당

여호와의 사자

성경은 하나님의 이름을 기억하게 하는 책이다. 하나님은 자신을 나타내시는 방법으로 그 이름을 알려주시니(요17:6) 이름은 실재에 대한 표호이다. 누구라도 하나님을 직접 뵙지 못하나(딤전6:16) 그 이름을 듣는다. 천사를 통해 현현하신 이름은 여호와이다(출3:15).

천지와 만물과 사람을 창조하신 이는 신적존재로서의 하나님이시다. 생육번성과 정복·다스림의 복은 그대로 이루는 말씀이므로 하나님의 이름의 언약이 필요치 않았다(창1:28).

그러나 사람이 생령이 되고 하나님의 계명을 받아 영생하는 존재가 되게 하실 때는 여호와라는 신명을 사용하셨으니(창2:3~) 영적 인간은 하나님의 이름을 알고 그 이름의 언약을 힘입어야만 하는 존재가 된 것이다.

아담으로부터 모세 이전까지도 여호와의 이름이 알려지고 여호와의 사자가 역사했지만 하나님이 직접 당신의 이름이 여호와인 것을 최초로 모세에게 알려주셨음은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고 여호와 하나님은 그들의 하나님이 되시고 이스라엘은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다(출6:2~8).

이때에 여호와 이름으로 일컫는 ‘여호와의 사자’가 모세에게 나타나 ‘나는 너희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여호와라’ 하셨으니(출3:2~17) 하나님이 한 천사에게 여호와의 이름을 의탁하시고 그를 ‘여호와의 사자’라 일컫고 여호와의 사자는 여호와 이름으로 역사하는 것이다. 그럴지라도 그 사자는 하나님의 손에 있는 종일뿐 하나님은 아니다.

여호와의 사자는 이스라엘의 출애굽과 가나안까지의 노정을 인도했고(삿2:1) 시내산의 계시를 통해 율법(출7:53)과 성막(출25:8~9)을 반포함으로써 광야교회를 이루고(출7:38) 하나님의 아들이 들어오실 때까지 그 중책을 온전히 수행하다가(히1:6) 독생자가 마침내 아버지의 이름 예수로 오시게 되니(마1:21~23) 그의 직무는 종결을 맞게 되었으므로 신약성경은 오직 예수 이름뿐, 여호와 이름은 다시 사용하지 않는 것이다.

하나님을 뵌 이는 오직 독생 하신 예수뿐이다(요6:46). 아브라함이 여호와를 보았다 하는 것은 실상은 여호와의 사자를 본 것이니(창22:11,15)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의 장막에 수행하는 천사 둘과 함께 가셨다(창18:1~2). 두 천사는 소돔으로 향해 가고 아브라함은 세 천사 중 하나인 여호와 앞에 그대로 서서(창18:22) 소돔성의 용서를 위해 간구한 바 있다. 여호와는 이스라엘에게만 나타났고, 그들 육체를 애굽에서 구원하여 가나안까지 인도하였지만 그들 영혼의 죄는 사함 받지 못하였으니 성막의 예물과 제사는 더 좋은 새 언약의 피로써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그림자요 예표일 뿐이다

(히9:9~15). 예수는 온 세계에 나타나셨고, 전체 인류의 영혼을 구원하시고 천국으로 인도하신다. 여호와 이름은 손으로 지은 성전에 모시고 섬기지만(대하6:10) 예수 이름은 우리 심령에 임마누엘 하셔서 영원토록 우리와 함께 계신다(요14:26). 우리는 여호와를 믿는 것이 아니라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다.

예수만이 하늘에 앉으신 심판자요 구세주이시니, 마귀와 죄인에게는 심판자요 믿는 우리에게는 구주이시다. 여호와의 사자는 하나님의 아들이 오시는 첩경으로써 그 길을 예비하는 직무를 맡았으므로 여호와의 사자는 우리 하나님이 아니고 오직 예수만이 우리의 구주요 하나님이시다(요20:28). 여호와는 이스라엘만 표호로 부른 이름이요(호12:5) 종들이 부른 이름이지만 예수 이름은 천하 만민이 부르는 이름이요 자녀들이 부르는 이름이다(롬8:15).

여호와는 모형을 베풀지만 은혜와 진리는 예수 이름으로만 말미암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이름으로 구원받고 예수 이름으로 세상을 명령하고 예수 이름으로 은혜와 진리를 받았고 예수이름으로 인내한다. 아버지 하나님은 예수 이름의 장치 속에 우리를 보전하신다(요17:11).

박덕규 목사

영생에 이르는 길

모태신앙과 성령충만

하나님은 우리에게 구원에 이르는 유일한 길을 주셨습니다. 그 이름만 들어도 감격스러운 그 아들 예수를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여기서 재미있는 사실은 이 유일한 길을 알게 된 계기는 사람마다 천차만별이라는 것입니다. 바울이나 우리 목사님처럼 환상 가운데 예수님을 직접 만나는 경우도 있고, 꿈속에 인 치듯 교훈하여 주시는 경우도 있으며, 기도 중에 마음속으로 감동시키시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말하고 싶은 건 모태신앙이라고 말하는 태어날 때부터 예수님이 우리 구주라고 믿게 된 경우입니다.

우리는 비교적 불행한 몇 가지 경우를 제외하고 부모님이 누군지 전혀 의심하지 않습니다. 태어나면서부터 옆에서 사랑을 주시고 의지가 되어주는 부모님을 너무도 분명하게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알고 있다는 단어보다 느낀다는 단어가 더 맞을 것 같습니다. 모태신앙은 그렇게 처음 세상과 관계를 맺을 때부터 하나님을 알고 출발합니다.

그러나 분명한 건 모태신앙이라고 해서 모두 신앙이 깊은 건 아니라는 것입니다. 신앙은 이해를 바탕으로 한 지식의 범주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바로 여기에 모태신앙의 함정이 있습니다. 부모님께서 이게 진리니까 무조건 믿어야한다고 하면 덮어두고 믿기 때문입니다. 이런 경우에는 부모님의 행동에 영향을 많이 받기도 하고 주변 사람들의 영향을 많이 받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모태신앙의 경우에는 반드시 성령의 역사하심을 체험해야 합니다. 덮어두고 믿는 건 그 자체로 축복일수 있지만 경험보다 강력한 믿음의 초석은 없기 때문입니다.

저도 그리 긴 인생을 살진 않았지만 신앙과 현실의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많이 했었습니다. 가장 큰 불안함은 서른 살까지 방언을 하지 못했다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그 이전에도 성령체험은 많이 있었습니다만 방언을 하지 못하니 의심이 마음 한쪽에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서른한 살 되었을 때 산상집회에서 강력한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시대 목사님은 성령세례 시간에 아직 방언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앞으로 나오라고 하셨고, 여태 이렇게 긴 신앙생활을 해왔는데 방언을 못하는 사실이 부끄러운 저는 나가지를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께서 ‘꼭 나가서 성령이 임한 증거를 받아야 한다’고 하셔서, 시쳇말로 등 떠밀려 나갔었습니다. 단 위에 올라간 저는 ‘이제 마음을 다해 기도하라’고 하시는 목사님 말씀에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단 위에서는 여기저기서 방언이 터지고 있었지만 저는 한없이 나약해지기만 했습니다. 실눈을 뜨고 다른 사람을 보기도 했고 ‘이러다가 방언을 못 받으면 어떻게 하나’ 불안하기도 했습니다. 한없이 가라앉고 있을 때 어떤 목사님께서 머리에 손을 대시니 신기하게 입으로 방언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그 한없이 가라앉는 기분과 그 끝의 끝에서 성령께서 주시는 방언의 경험을 아직도 잊을 수 없습니다. 분명 그날 저는 모태신앙의 테두리를 벗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구원으로 이르는 유일한 길에 제가 확신을 가지게 된 계기는 이것이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계기를 통해 하나님을 만나고 계신가요?

김대화 성도

realdialog@naver.com

Good News

19세기 러시아 문학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문호 톨스토이의 ‘참회록’은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습니다. 그 책에 기록된 우화에는 우매한 인간의 모습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사나운 맹수의 공격을 피하려고 우물 속으로 뛰어들었는데 마침 넝쿨이 있어서 그것에 매달렸습니다. 그런데 우물 밑바닥에는 수많은 독사가 혀를 날름거리고 있었습니다. 우물 밖에는 사나운 맹수가 입을 벌리고 있고, 밑바닥에는 독사들이 우글거리고 있는데 설상가상으로 그가 매달려 있는 넝쿨을 생쥐들이 갉아먹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넝쿨에 달려있는 벌집에서 달콤한 꿀이 떨어지는 것을 받아먹고 있다 보니 현재의 위기 상황을 까마득하게 잊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이 어리석은 자가 다름 아닌 우리의 자화상인지도 모릅니다. 시종을 알지 못하는 인생 죽은 뒤에는 무서운 심판이 있고 이 땅에서도 날마다 매순간마다 위기의 순간을 맞이하는데도 가짜 소망이나 달콤한 죄의 유혹에 빠져서 살아가는 어리석은 인생들이 있습니다.

세상의 어떤 방법으로도 우리를 구원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붙들고 있는 줄은 곧 끊어져 버리고 말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만이 구원의 유일한 방편입니다.

상화평 목사

sanghwapyung@hanmail.net

신앙에세이

예수천국, 불신지옥!

회사에 일본인 손님이 왔다. 장시간 차에서 대화를 하던 중 종교 관련 이야기가 나왔다. 그는 학생 때 여러 사회적 이슈로 종교는 무서운 것이라 여겼다고 한다. 그러다 호주 유학 당시 호주 친구를 따라 교회를 다니게 되었고, 2년 동안 성경공부를 했단다. 그러면서 종교에 대한 시각도 달라졌지만 현재는 교회를 다니지 않는다고 한다. 이유인즉, 당시 한국인 친구를 사귀었는데 크리스천이던 그 친구가 예수님을 믿지 않는 모든 사람들은 지옥에 간다 했단다. 그럼 기독교를 모르는 사람들은 어떻게 하느냐 하니, 그래서 우리가 전도를 해야 한다는 답에 충격을 받고 그 날부터 종교와 멀어졌다고 한다.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지옥에 간다는 말에 신앙생활을 그만두었다는 것도 놀라웠지만, 그 말을 2년간 성경공부도 했다는 교회에서가 아닌 한국인 친구로부터 처음 들었다는 것도 놀라웠다.

하나님에 대한 오해가 있을까 싶어 그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사람의 시각으로는 믿는 자들만 천국에 가고, 다른 이들은 지옥에 간다는 말이 너무하고, 비인간적이고, 심지어는 잔인하다고 느껴질 수도 있을 거예요. 그렇지만 하나님의 시각에서는 당신을 사랑하는 자들과는 함께 있고, 당신을 싫어하는 자들은 멀리 떨어뜨려 놓으시고자 모든 인류의 사후에 적용되는 법을 하나 만드셨지요. 마치 우리도 결혼식이나 생일파티에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들만 초대하는 것처럼요. 그리고 하나님이 계신 곳을 천국, 하나님을 전혀 찾을 수 없는 곳을 지옥이라 부르셨습니다. 이렇게 생각한다면 당신의 옛 한국인 친구에 대한 기억도 조금 나아지고, 하나님을 조금 더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예수천국, 불신지옥. 어쩌면 하나님의 사랑이 담긴 간절한 영적 이정표이다.

박찬영 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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