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할 일과 하나님이 하실 일이 다르다(눅18:27)
하나님은 엘리야가 아합을 피하여 숨었을 때 까마귀를 들어 먹이셨고, 빌립을 번쩍 들어 올려 옮기신 일도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고기가 먹고 싶다고 했을 때 메추라기 떼를 보내주신 일이 있고, 반석에서 물이 솟게도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고, 앉은뱅이를 일으키시며, 소경이 보게 하시고 귀머거리가 듣게도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마른 막대기에서 싹이 나게 하시며, 마른 뼈들에 살이 붙어 군사가 되게도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을 하시는 전지전능하신 분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무조건 다 해주시지는 않습니다. 사람이 할 일은 사람이 하게끔 하십니다. 이것이 신앙생활의 원리입니다. 이는 부모가 학교는 보내주지만 공부해서 학점은 내가 따야 하고, 밥은 부모가 해주지만 입에 넣는 것은 내가 해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하여 모든 것을 예비하고 계시지만 숟가락으로 떠서 입에 넣어주시지는 않습니다. 사람이 할 건 하도록 하십니다. 사람이 할 때 힘을 주시고, 용기를 주시고, 우리가 한 것 이상으로 채워주시는 분이십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마7:7~8). 구할 때 얻게 하시고, 찾을 때 찾게 하시며, 문을 두드릴 때 열리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공부를 열심히 하고 시험을 치렀을 때 하나님이 공부한 것을 기억나고 생각나게하시고, 열심히 노력할 때 하나님이 지혜를 주시고 능력을 더하여 주신다는 것입니다.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천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마6:26)는 말씀을 붙들고, ‘하나님이 다 해주시겠지.’ 하면 안 됩니다. 그건 하나님을 오해하는 것입니다. 공중의 새는 심지 않고 거두지 않지만 열심히 날아다니며 먹을 것을 찾게 하시려고 날개를 주셨습니다.
가나 혼인잔치에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되는 일은 하인이 여섯 항아리에 물을 아구까지 채우고 나서야 일어난 것이고(요2:6~7),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리고성을 일곱 번 돈 후에 성이 무너졌으며(수6), 죽은 나사로도 돌을 옮겨놓을 때 살리셨으며(요11:39), 밤새 물고기를 잡지 못한 베드로가 오른편에 그물을 던진 후에 배를 가득 채우셨습니다(요21:6). 소경 바디매오에게 ‘걸어오라’ 하신 후에 눈을 밝히셨고(막10:46~52), 한나도 통곡의 기도한 후에 남편과 동침할 때 수태되었으며(삼상1), 기름을 준비한 자만이 혼인잔치에 들어갈 수 있음도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마25).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아말렉과 전쟁을 할 때 모세의 손이 올라가면 이기고 손이 내려오면 졌습니다. 하지만 그 전쟁에서 모세의 기도만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여호수아 장군이 전쟁터에서 군인들을 이끌고 전쟁을 했기에 승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싸울 날을 위하여 마병을 예비하거니와 이김은 여호와께 있느니라”(잠21:31). 전쟁에 이기게 하는 분은 하나님의 일이나 마병을 준비하는 것은 우리의 일이라고요. 성령을 모셔 들이는 것에도 우리가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먼저 회개하고 마음의 문을 여는 것입니다. 마음의 문은 문고리도 없고 열쇠구멍도 없기에 우리가 안에서 문을 열어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영인 성령이 우리 안에 들어오시는 것입니다. “볼찌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계3:20).
아담이 죄를 범한 이후로 이 세상에는 노동의 수고가 있게 되었습니다. 수고하지 않으면, 노력하지 않으면 잠언 24장의 말씀처럼 포도원에 가시덤불이 가득하고 잡초가 무성하게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내가 해야 합니다. 내가 부지런히 잡초를 제거하고, 무너진 담을 수축할 때 포도원에 포도가 가득하게 됩니다. 내가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공부하고, 부지런히 배울 때 하나님이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사람 앞에서 섰을 때 무슨 말을 할지 염려하지 말라’고 하셨다고 목사가 아무것도 안하고 단에 선다면 됩니까? 밤새 기도하고, 주시는 말씀을 가지고 준비를 해야 성도들이 은혜를 받습니다. 교회가 부흥하려면 우리가 전도해야 합니다. 우리가 전할 때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아볼로는 무엇이며 바울은 무엇이뇨 저희는 주께서 각각 주신대로 너희로 하여금 믿게 한 사역자들이니라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은 자라나게 하셨나니”
(고전3:5~6). 이 말씀은 우리가 해야 할 일과 하나님이 해야 할 일이 있음을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씨는 사람이 뿌려야 합니다. 잡초도 사람이 매야 하고, 거름도 사람이 줘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비를 주시고, 태양과 바람을 주셔서 자라게 하실 것입니다. 게으름을 버리고 나태함을 버리고 자기가 할 일은 자기가 해야 할 것입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입니다. 내가 할 일은 내가 해야 합니다. 저는 30대 기력을 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기도만 하는 게 아니라 운동도 하고, 건강식도 먹습니다. 배필을 달라고 기도했으면 배필을 찾아 나서야지요. 집안에만 틀어박혀 있으면 뭐가 됩니까? 기업이 잘 되게 해달라고 기도했으면 인재를 고용하고, 기술을 향상시킬 수 있는 일을 해야 합니다.
애굽을 나온 이스라엘 민족이 사면초가에 이르렀습니다. 앞에는 홍해요, 뒤에는 바로의 지시를 받은 애굽 군대가 쫓아오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혼비백산하며 불평불만을 토해냅니다. 그때 모세가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는 두려워 말고…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출14:13~14).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고 모세는 말했습니다. 아무것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니 가만히 하나님의 역사를 기다리라고 했습니다. 그럼에도 모세가 해야 할 일이 있었습니다. 바로 지팡이를 내미는 것이었습니다. 모세가 지팡이를 내밀자 동풍이 일어 바닷물이 갈라져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다를 땅처럼 걷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교회에 거룩한 백수들이 많습니다. 기도만 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자들입니다. 그들은 ‘기도했으니 하나님이 다 하실 거야.’라고 말합니다. 물론 기도는 하나님을 움직이는 동력이며, 기도로 하나님을 움직이게 하는 자가 가장 위대한 자입니다. 고로 한나나 히스기야처럼 자기의 목적을 위해 애끓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그리고 기도했으면 행함이 따라야 합니다. 공부하고 연구하고 운동하고 노력해야 합니다. 자신에게 투자하지 않는 자가 제일 어리석은 자가 아니겠습니까? 소 잃고 외양간 고치지 말고 미리 자신의 건강을 위해, 더 나은 삶을 위해 투자해야 합니다. 내 삶에 성장이 있느냐 없느냐는 하나님께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내 행함에 있습니다. 내가 할 일을 했을 때 내 삶에 성장발전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내가 할 일을 할 때 일어납니다. 그 분의 역사는 마치 내가 불을 붙일 때 기름을 부어주는 것과 같고, 내가 앞으로 갈 때 뒤에서 바람을 불어주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겨자씨의 비유도 마찬가지입니다. 겨자씨 하나를 땅에 심는 것은 우리의 일입니다. 아주 작은 일이지요. 그러나 그 할 일을 했을 때, 하나님이 그 작은 씨로 말미암아 큰 나무가 되게 하시고, 공중에 나는 새들이 깃들게 하실 것입니다(막4:31~32).
내가 할 일을 내가 하고, 하나님의 역사를 기다립시다. 할렐루야!
하나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도우신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불 꺼진 항구와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