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펙을 이기는 스토리!
덴마크의 유명한 미래학자의 책 『드림 소사이어티』에 보면, 앞으로 도래할 시대를 ‘꿈+감성+이야기’가 주도할 시대로 특징짓는다. 이제는, 물건 하나를 팔아도 그 물건에 입혀진 독특한 스토리와 감성이 소비자를 움직일 수 있고, 한 사람을 어필하려 해도 그만의 독특한 스토리가 있어야만 타인에게 주목받고 감동을 주는 시대란 말이다. 취업난이 빚어낸 신조어 ‘스펙’! 이것은 누구나 노력하면 가질 수 있는 기능적인 측면이다. 그러나 ‘스토리’는 남들에게 공유될 수 없는 유일하고 독특한 자신만의 진정한 실력이 된다.
청소년 수련회를 통해 총회장 목사님은 ‘남의 것을 부러워 말고, 나만의 것을 찾아라! 내 장점을 활용하라!’고 교육하셨다. 스펙으로 평준화되기 보다는, 자신만의 스토리를 만들어내는 유일하고 특별한 사람이 되라는 의미이다. 남들과 비교하지 말고, 차별성 있는 스토리를 만들어내는 것이 경쟁력 있는 나만의 무기가 되리라!
하나님의 창조 세계와 그것을 통치하시는 역사들을 보면, 획일성보다는 다양성을 좋아하시는 하나님의 속성을 알게 된다. 아브라함부터 사도 바울에 이르기까지 성경의 모든 인물들에게 입혀진 다양한 스토리들은 우리를 변화시키는 강력한 원동력이 된다. 사도바울이 당한 고난의 종합세트(고후11장)는 그 누구도 감당하지 못한 독특한 고난이요 역경이었으나, 그가 가진 스토리를 읽는 모든 이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구원의 깊이를 절절히 깨닫게 한다.
남들보다 내가 가진 고난과 역경이 더하다면, 그것은 나만의 유일한 스토리로 무장시켜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이 될 것이다. 어느 누구도 인생의 곤고함과 고난을 피해갈 순 없다(전7:14). 인간은 개념으로만 사는 존재가 아니라, 희로애락을 직접 통과하며 살아야 할 ‘실존’이다. 그냥 불러서 아는 하나님과 체험된 하나님은 전혀 다르다(욥42:5). 내 안에 찾아오셔서 ‘내재하시는’ 하나님을 반드시 ‘체험하는 것’이 신앙생활이어야 한다. 세상은 스펙으로 우리를 평준화시키려 하지만, 하나님의 자녀는 유일무이한 스토리를 가진 자들(갈6:17)이어야 한다. 이것이 곧 세상을 이길 힘이 된다.
송직화 목사
jesus_allinall@hanmail.net
내겐 너무 부담스러운 일
제가 이 지면에 처음으로 글을 쓴 게 2012년 여름이었으니까 문서선교부에서 글쓰기로 봉사 한지도 벌써 6년이 되었습니다. 한 달에 한 편씩 대략 칠십여 편의 글을 썼지요. 6년의 시간이면 초등학생이 중학생이 되고 신입사원이 대리가 되는 긴 시간인데, 어찌 된 영문인지 저는 그때나 지금이나 글을 쓰는 것이 참 어렵습니다. 하나의 글이 완성되기까지 보통은 일곱 시간, 짧게는 네다섯 시간이 걸립니다. 이건 오롯이 책상 앞에 앉아 있는 시간이고, 그 전에 어떤 글을 쓸지 고민하는 시간까지 더해지면 더 많은 시간이 들어가지요. 이 봉사가 제게 부담스럽지 않다면 거짓말입니다.
어떨 때는 도저히 무슨 글을 써야 할지 떠오르지 않아서 마음에 커다란 돌덩이가 얹혀 있는 기분으로 며칠을 보낼 때도 있고, 어떨 때는 글을 썼다 지웠다만 몇 시간째 반복할 때도 있습니다. 그렇게 매번 저의 부족함을 깨닫고는 주님만을 의지하며 기도합니다. 저 자신은 그저 주님의 타자기가 되게 해달라고요. 저의 어설픈 조언이나 자랑, 그럴싸한 문장을 쓰는 것이 아니라 오직 주님의 도구가 되어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고 용기가 되고 힘이 될 수 있는 글을 쓰게 해달라고 진심으로, 진심으로 기도합니다.
‘도저히 글을 못 쓰겠습니다.’라고 말하고 싶은 몇 번의 고비가 찾아오기도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펑크 없이 글을 완성할 수 있었던 건 주님의 은혜입니다. 생각해보면 글을 쓰며 봉사한 시간들은 허투루가지 않고 제 신앙을 키워주고 또 지탱해주었지요. 이 귀한 지면에 글을 쓸 합당한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게 되었고, 저 자신의 행실을 좀 더 점검하게 되었습니다. 행여 글과 행동이 불일치한 사람이 되지 않도록 말이지요. 성경도 억지로라도 더 읽게 되었고요. 또한 응답도 많이 받았습니다. 일상을 살아가면서 미운 사람 때문에, 기도가 잘 되지 않아서, 일이 안 풀려서, 여러 가지로 힘들었을 때 주님께 부르짖는 심정으로 그것에 관해 글을 썼고 그 과정에서 하나님께 위안 받고 깨닫고 힘을 얻게 되었습니다.
사실 저는 부담스러운 일은 되도록 피하자 주의입니다. 그래서 인터뷰나 발표 등의 제안을 종종 거절하기도 했었지요. 그 거절들이 제 마음과 몸을 편하게 해주었습니다. 반대로 자의든 타의든 과분한 프로젝트를 맡거나 프리젠테이션을 해야 할 때도 있었습니다. 그건 정말이지 스트레스의 연속이었지요. 제 실력에 실망하고 그 일을 하겠다고 한 걸 후회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 일을 끝냈을 때 저는 좀 더 배우고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무엇이 더 좋고 나쁘다고 말할 수 없으나 한 가지 분명한 건 내게 조금 벅찬 일, 그 안에는 늘 성장의 기회가 있었습니다.
때때로 우리의 능력에 비해, 연차에 비해, 신앙에 비해 과분한 일이 주어지곤 합니다. 그 일이 얼마나 괴롭고 힘든지 잘 압니다. 그리고 또 압니다. 그 일을 통해 발전해있을 자신을요. 그러니 우리 피하지 말고 한번 부딪혀보는 게 어떨까요? 응원합니다.
신은혜 자매
dopal0203@naver.com
좁은길 따라가기
초교파를 지향하는 보수 원로 목사님을 만났다. 인터넷 페이스북에 올린 내 글에 은혜 받았다고 만남을 청해서다.
사모님을 비롯해 신학박사들과 함께 만났다. 교단의 총회장 목사님이 누구냐 물어 “이초석 목사님입니다.” 대답하니 정적이 흘렀다. 침묵 후 원로 목사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나는 이단논쟁은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앞으로 나와 관계가 있다는 말은 하지 말았으면 합니다. 내가 다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초석 계열’ 사람과 친분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내가 다칠 수 있습니다.” 해서 “알겠습니다.” 하였다. 몇 시간 동안 식사와 차를 함께하며 대화해보니 너무도 신앙관이 잘 맞았다. 내 책과 설교 녹음을 주었다. 며칠 후 원로 목사님께서 전화 주셨다. ‘우리 자주 만납시다’ 하여 감사히 받았다.
그 후 기독교 갱신을 위한 목사, 선교사 모임에 초청 받았는데 열댓 명 목사, 선교사들이 모였다. 초교파적으로 교회 갱신을 위한 모임의 발기인 격이었는데, 명단에 보니 맨 밑에 내 이름이 들어가 있었다. 모인 분들의 소개가 끝난 후 나만이 따로 소개를 직접 하도록 배려하여 소개를 했으나 역시 총회장 목사님의 이름을 들은 몇몇 목사, 선교사들은 인격적 모멸을 느끼도록 인신공격을 포함해 교리와는 상관없는 무례한 언동을 서슴지 않았다. 성직에 있는 사람 같지 않았다. 사람을 앞에 두고 불쌍한 사람 취급하고, 총회장 목사님의 이름을 아무런 존칭 없이 부르니 내가 이 자리에 왜 초청받아서 이런 날 선 공격을 받아야 하나 난감했다. 개인적으로 얘기하니 괜찮은 분들인데 접점이 없었다.
“나는 목사님의 교리를 따르는 것보다 이초석 목사님 삶을 존경합니다. 우리 교회 신실한 성도들이 이 자리에 있었다면 여러분들 모두가 이단이라는 소리를 들었을 겁니다. 톨스토이가 러시아의 수십 개 종파에 대해 ‘성령의 감동으로 당신들의 강령을 만들었다는데 성령이 왜 각기 다른 말을 하는가’ 라고 했습니다. 이 자리에서도 나를 이단이라고 하는 목사님을 다른 목사님이 이단이라 정죄하셨습니다. 왜 교파와 교단을 구분하여 이단으로 정죄합니까? 나는 하나님의 이끄심으로 우리 교단에 오게 되었습니다. 정죄 받을 하등의 이유가 없습니다. 여러분! 이초석 목사님은 하나님이 아니시고 성령님이 아니시라고 분명히 말씀하시는데 정죄하지 마세요. 요한이 ‘우리를 따르지 않는 자들이 주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으며 이적을 행하여 금하였나이다.’ 하니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 이름으로 이적을 행하면 나를 돕는 자니라’ 하셨습니다. 주님도 정죄하지 않으셨습니다. 오직 하나님과의 직접적인 교류에 더욱 힘써야 할 것입니다. 정죄는 주님의 몫입니다. 벧엘의 하나님의 사람은 여로보암 왕에게 죽음을 무릅쓰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벧엘에서는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말고 다른 길로 속히 나오라고 했는데 늙은 선지자가 ‘하나님의 사자가 와서 먹어도 좋다고 했네.’ 하여 믿고 먹고 마시고 돌아가다가 사자에 찢겨 죽었습니다. 목사님들께서 무슨 말을 하셔도 나는 내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과 꿈과 환상에 의지합니다. 단지 하나님과의 직접적인 관계에 더욱 집중할 뿐입니다.”
성격 급하고 참지 못하는 나답지 않게 겸손하고 담담하며 온유했다.
“너희를 넘겨줄 때에 어떻게 또는 무엇을 말할까 염려치 말라 그 때에 무슨 말할 것을 주시리니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속에서 말씀하시는 자 곧 너희 아버지의 성령이시니라”(마10:19~20), “비방을 당한즉 권면하니 우리가 지금까지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끼 같이 되었도다”(고전4:13).
열 명이 넘는 목사, 신학자. 선교사들과의 대담에서 조금도 망설이거나 주저함 없이 온유하고 부드러움을 잃지 않게 하시고 응답할 말을 주시고 당당하게 하여 주시니 많은 사람들의 선입견을 조금이나마 돌이킬 계기가 된 듯싶다. 장시간 모멸과 수모를 당하고 나니 마치 이상한 괴물처럼 대하던 목사, 선교사님들이 한결 부드럽게 변하며 진심으로 나를 포옹하는 분도 계셨다.
세 번에 걸친 만남 속에 원로 목사님, 신학박사, 선교사, 신학대학 총장과의 긴 시간의 대담을 거치니 거꾸로 총회장 목사님의 그릇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다. 비평하는 자는 비평하고, 개는 짖어야 한다며 개의치 않으시는 그 대범함. 변명하지 않으셨다. 내가 이렇게 힘들었는데 당사자인 목사님은 오죽하셨을까.
‘이초석 계열’로 살아가기가 녹록하지는않다. 하지만 좁은 길이 목사님과 함께 하는 이 길이라 믿으니 다시 한 번 마음을 새롭게 다잡아 본다.
이광주 전도사
leekjlkj@naver.com
내 몸을 건강하게~
우리 크리스천들은 영과 혼과 육을 균형 있게 발전시켜야 한다. 영이 무너지면 곧 지옥이요, 혼이 무너지면 무식이며, 육이 무너지면 질병과 고통이다. 똑똑한 젊은이들이 생전에 노후를 미리 준비하는 것처럼, 지혜롭고 현명한 사람은 아프기 전에 자기 육체를 돌본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프기 시작해야 몸을 돌본다. 그보다 더 어리석은 사람은 몸이 아파도 몸의 외침을 듣지 않는다. 그들의 노후는 불을 보듯 뻔하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육체를 잘 관리하지 않고 소홀히 대했기에 건강한 삶을 영위할 수 없다.
육체의 소중함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다. 건강을 잃으면 기도하기가 힘들다. 부정의 생각이 긍정의 생각보다 강해지고 매사에 집중할 수 없게 된다. 몸에 힘이 없고 아프기 때문이다.
나도 한번 허리 건강을 잃고 나서야 비로소 건강의 소중함을 깨닫고 운동을 시작했다. 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왜 건강을 잃기 전에 미리 관리할 수는 없었을까? 지금 와서 보면 지혜가 없어서였고 지식이 미천했기 때문이다.
아침을 깨우고 가볍게 운동을 시작해보자. 하루 30분 넘는 정도의 땀 흘릴 수 있는 운동량이면 충분하다. 꾸준한 운동을 통해 체력이 길러지고 근력이 향상되면 업무의 효율이나 공부의 집중에도 탁월한 효과가 있다.
아침이 여의치 않으면 저녁에 해도 좋다. 가능한 시간을 확보해서 꾸준히 노력하자. 다만 성공하는 사람들은 새벽을 깨워 아침에 운동을 하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으면 좋겠다.
5년 후, 10년 후는 지금의 내가 만든다. 영을 위해 기도의 시간을 확보하는 것처럼, 혼을 위해 독서와 공부를 하는 것처럼, 육을 위해 운동하는 시간도 반드시 확보하도록 하자.
장명훈 집사
jjoshua@hanmail.net
Dr. 설재현 집사
kseolmed@hanmail.net
지혜를 구하는 민족
20세기 이후에 가장 주목받는 민족은 유대인입니다. 세계 인구의 0.2%, 1,400만 명밖에 되지 않는 유대인들은 수 천년동안 온갖 박해와 인종말살의 위협 속에서도 꿋꿋이 생존했을 뿐 아니라 조상의 땅으로 돌아와 국가를 세웠습니다. 이렇게 작은 민족이 세계사에서 이룩한 성과는 기적 그 자체입니다. 노벨상 수상자의 35%, 미국 대학교수의 25%, 상하의원의 20%, 월가금융전문가의 35%, 뉴욕 중고등학교 교사의 50%, 미국 70만 변호사의 20%, 미국 최상위부자 40명 중 22명이 유대인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유대인들이 극심한 고난의 역사를 딛고 일어나 전례를 찾아보기 힘든 업적을 쌓으며 승승장구하는 비결이 무엇일까요? 대답은 간단합니다. 유대인들은 지혜를 구하는 민족입니다. 금은보화를 얻기 위해 지혜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지혜를 구하기 위해 금은보화까지도 기꺼이 던져버리는 민족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성공을 교육의 목적으로 삼지만 유대인들은 하나님이 주신 지혜를 최대한 발견하고 활용하는 것을 교육의 목적으로 삼는다고 합니다. 왜냐면 지혜를 위해 진주를 버리면 지혜와 더불어 진주까지 얻게 된다는 진리를 그들은 알고 있습니다. 세상의 가치관과 세상의 부귀영화만을 추구하는 사람을 두고 성경은 ‘어리석은 자’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들은 부귀영화를 누리거나 장수하면 안 되는 것일까요?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다만 우리의 가치관의 우선순위가 중요하다는 것을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이 세상의 그 무엇보다 더 하나님의 지혜를 추구하고 소유하기를 원하십니다. 지혜가 있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주신 부귀영화와 장수가 따라오기 때문입니다. “지혜는 진주보다 귀하니 네가 사모하는 모든 것으로도 이에 비교할 수 없도다”(잠3:15). 이것이 유대인들이 승승장구하는 비결입니다.
장명훈 집사
jjoshua@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