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자타령 그만하고 네 신분을 알라(요1:12~17)
누군가 높은 자리에 오르고, 누군가 대단한 사람과 결혼하고, 누군가 돈을 많이 벌면 사람들은 “저 팔자는 무슨 팔자고 나는 뭔 팔자냐?” 라며 자신을 한탄합니다. 그러나 과연 그 사람이 팔자를 잘 타고 나서 성공하고, 잘 된 걸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지금의 그 사람은 어제 그 사람 생각의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성공하고야 말리라’, ‘저 사람과 결혼하고야 말리라’, ‘돈을 벌고야 말리라’는 생각이 그를 부지런히 움직이게 했고, 부지런히 가꾸게 했고, 부지런히 일하게 했을 것입니다.
여러분의 지금은 어제 여러분의 생각의 결과입니다. 절대 팔자 때문이 아닙니다. 팔자라고 생각하는 건 속는 겁니다. 악한 것들이 ‘타고난 팔자는 못 바꾸니 그냥 이대로 살라고, 그런대로 한 세상 살라’고 여러분을 꾀는 겁니다.
이왕 팔자 이야기가 나왔으니 제대로 우리 팔자가 어떤지 알아볼까요? 우리처럼 팔자를 잘 타고 난 사람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죽어 대속하심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요1:12). 그것도 아무나 당신의 자녀를 삼으신 것이 아니라 우리가 엄마 뱃속에 있기 전에, 창세전에 작정하고 우리를 택하사 당신의 자녀로 삼으셨습니다. “곧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엡1:4~6). 우리가 하나님이 자녀라니…. 세상에 이런 팔자가 또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데 왜 이렇게 좋은 팔자로 태어났으면서 지지리 궁상떨고, 남의 밑에서 빌빌거리고 살고, 남들 잘 되는 것을 부러워만 하고 있습니까? 그것은 당신의 생각 때문입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생각이 결과라고(렘6:19). 아무리 왕의 자녀라고 해도 생각이 작으면 인생의 폭이 작아질 수밖에 없고, 아무리 재벌 자제라도 만사가 회의적이거나 부정적이면 밝고 긍정적인 삶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하나님이 창세전에 택한 하나님의 특별한 자녀라고 할지라도 그 사람의 생각을 뛰어넘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작은 생각은 작은 결과를 낳고, 부정적인 생각은 부정적인 삶을 낳고, 썩은 생각은 썩은 삶을 낳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그동안 되는 일이 없었습니까? 생각부터 바꿔야 합니다. ‘경기가 안 좋아서 사업이 안 돼.’ 라는 생각을 버리고 ‘천인이, 만인이 안 돼도 나는 된다.’는 생각으로 바꿔야 합니다. ‘병원에서는 죽는다고 했지만, 나는 산다.’는 생각으로 바꿔야 합니다. 그 생각대로 결과가 나타납니다. 마가복음 5장에 열 두해 동안 혈루증을 앓던 여인이 예수님의 옷자락에 손을 대고 나음을 입었습니다. 왜 나았을까요? 그녀가 예수님의 옷을 만질 때 예수님의 능력이 최대치여서 그랬을까요? 아닙니다. “내가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얻으리라”(막5:28)는 그녀의 생각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다른 사람은 아무 생각 없이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졌기에 그런 역사가 일어나지 않았던 것입니다. 나무가 병들었을 때 가지를 친다고 나무가 살아나는 게 아닙니다. 뿌리를 점검해야 합니다.
화분에서 약 3년 정도 자란 영산홍을 화단에 옮겨 심어준 적이 있습니다. 옮긴 지 꽤나 되어서 잘 자라고 있는지 살펴보니 이게 그전 그대로 있는 게 아닙니까? 오히려 그전보다 꽃이 부실해보였습니다. 하여 분재를 잘 아는 분께 물어보니, 그 분 하는 말이 필시 뿌리가 돌돌 말려 있을 테니 그 뿌리를 잘라줘야 잘 자란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땅을 파보니 정말 뿌리가 여전히 화분 속 모양대로 돌돌 말려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잘라주었더니 그 후 쑥쑥 자라고 꽃도 활짝 피웠습니다. 이전에 가졌던 썩은 생각을 잘라내야 합니다. 나쁜 생각, 부정적인 생각을 잘라내야 합니다. 그래야 여러분의 삶에 꽃이 활짝 핍니다. 뿌리는 근원, 곧 마음과 생각입니다. 이것이 변하지 않으면 인생에 회생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4:23)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몇 년 전에 집회를 마치고 일본 오끼나와에 있는 세계 최대의 수족관에 갔습니다. 저와 일행은 수족관 한 곳을 지나다가 상어와 작은 물고기들이 한 공간에서 놀고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자고로 상어란 물고기를 잡아먹고 사는 법인데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의아해하자 그곳 담당자가 그 이치에 대해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큰 수족관에 상어와 물고기를 넣어놓으면 당연히 상어가 그것들을 잡아먹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보이지 않는 유리벽을 치고 그곳에 전기가 흐르게 해놓는답니다. 이것을 모르는 상어가 여느 때처럼 물고기를 잡아먹으려고 덤비다 유리벽에 부딪치면 전류가 흘러 깜짝 놀라게 됩니다. 이 일이 하루 이틀 반복되다보면 상어는 ‘물고기를 잡아먹으면 다치는 구나. 절대 잡지 말아야지.’ 하고 생각한답니다. 그래서 유리벽을 제거해도 물고기를 잡아먹지 않고 조련사가 주는 먹이만 먹는다고 합니다.
악한 마귀가 우리를 이렇게 조련하고 있는 겁니다. 보이지 않는 유리벽을 쳐놓고 상어를 조련하듯 하며 ‘이건 안 돼. 그냥 살아야지.’ 이렇게 생각하도록 만듭니다.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만물을 정복하고 다스리라고 창조하셨는데, 마귀란 놈이 우리의 본성을 잊게 하여 부정적이고 회의적으로 만드는 겁니다. 서커스에 나와 온갖 재주를 부리는 코끼리도 이런 이치 아닙니까? 그래서 그 큰 몸집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조련사에게 꼼짝도 못하고, 조련사가 시키는 대로 어울리지 않는 몸짓을 하면서 사는 것 아닙니까? 바다의 왕자 상어나 산 속의 왕인 코끼리가 본성을 잃고 사는 것처럼,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도 잊고, 타고난 본성도 잊고 살지는 않습니까? 거기서 나오십시오. 거기서 나오는 길은 생각의 전환에 있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자녀다. 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면 악한 것들이 손 못 댑니다. 하나님이 친히 난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송아지는 엄마소 닮고, 자녀는 아버지를 닮는 법 아닙니까?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에겐 불가능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어느 노인이 산속에서 독수리 알을 가져다가 집 닭장 속에 함께 넣었습니다. 때가 되자 병아리가 부화되고, 그 속에서 독수리도 태어났습니다. 이 독수리는 닭이 엄마인 줄 알고 자랐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독수리 한 마리가 닭을 채가지고 가는 것을 어린 독수리는 보게 됩니다. ‘나랑 똑같이 생긴 저것은 닭을 잡아먹고 하늘을 차고 오르는데, 나는 왜 이 닭들과 놀고 있는 거지? 나는 누구일까? 나도 하늘을 날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이 들자 어린 독수리는 날개를 펴고 날아보려 했습니다. 이를 지켜보던 닭들은 ‘너 미쳤니?’ 하고 야유했습니다. 어린 독수리는 ‘그래, 내 주제에 어떻게 하늘을 날아?’ 하면서 날개를 접었습니다. 그런데 독수리가 또 나타나 하늘을 맴돌았습니다. 그 독수리는 어린 독수리를 향해 “넌 독수리야. 왜 거기서 그렇게 있는 거야? 넌 날 수 있어.” 하고 큰소리로 말했습니다. 그래서 어린 독수리는 날개를 계속 퍼덕였고, 결국 땅을 차고 창공으로 날아올랐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닭장 속의 닭이 아니라 하늘을 훨훨 날 수 있는 독수리입니다. 마귀는 당신을 계속 닭장 속의 닭으로 살게 하려고 태클을 걸지만, 태생은 속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지속적으로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막9:23)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이제 신분을 알았으니 팔자타령일랑 하지 마십시오. 마귀가 ‘네 팔자에 무슨’, ‘네 주제에 무슨~’ 그러거들랑, “내 팔자가 어째서? 내 팔자는 하나님 자녀 팔자다.”라고 대응하십시오. 그리고 늘 긍정적인 생각, 생산적인 생각, 창조적인 생각을 가지십시오. 그 생각이 당신의 미래를 아름답고 멋지게 만들 것입니다. 할렐루야!
생각보다
무서운 파괴력은 없다
인간은
생각에 의해 움직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