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이름을 왜 가르치지 못하게 하나?(행4:1~22)
예수의 부활을 전하던 베드로와 요한이 제사장들과 사두개인에게 잡혀 옥에 갇혔습니다(행4). 이 일로 산헤드린 공회가 소집되었는데, 이날 대제사장을 포함한 그들 문중이 내린 결론은 이것입니다. “도무지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행4:18).
‘왜 도무지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고 했을까요? 그 이유는 바로 ‘유명한 표적’ 때문이었습니다(행4:16).
‘유명한 표적’이란 사도 베드로와 요한이 기도하러 가다가 미문에 앉아 구걸하던 앉은뱅이를 일으켜 걷게 한 사건입니다
(행3). 이 소문이 일파만파 퍼지자 예수를 죽이면 모든 것이 끝날 줄 알았던 대제사장을 비롯한 사두개인과 서기관들은 난감해졌고, 한편 시기가 발동하여 베드로와 요한을 잡아들였습니다. 그리고 물었습니다. “너희가 무슨 권세와 뉘 이름으로 이 일을 행하였느냐”(행4:7). 그러자 베드로가 성령이 충만하여 대답합니다. “백성의 관원과 장로들아 만일 병인에게 행한 착한 일에 대하여 이 사람이 어떻게 구원을 얻었느냐고 오늘 우리에게 질문하면 너희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알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고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사람이 건강하게 되어 너희 앞에 섰느니라”(행4:8~10). 바로 ‘예수 이름’으로 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예수의 이름이 무엇이기에 이런 능력이 나타날까요? 처녀 마리아가 성령으로 잉태되었을 때 주의 사자가 나타나 아들의 이름을 ‘예수’라 하라 했습니다(마1:21). 그런데 예수님은 기도 중에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저희를 보전하사”(요17:11)라고 말씀하심으로 ‘예수의 이름이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이라고 하십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이름이 예수’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지 사흘 만에 부활 승천하시고, 그 이름으로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주셨는데, 요한복음 14장 26절에는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의 이름도 ‘예수’라는 것입니다. 정리를 하면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이 예수입니다. 삼위일체(三位一體)이심이 증명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당신의 이름을 소유하고 이 땅에 오신 예수님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주시니(마28:18), 예수 이름 앞에 하늘의 것과 땅의 것, 그리고 땅 아래의 것들이 복종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빌2:9~10). 예수의 이름이 천하 만물을 지으시고 주관하시는, 인간을 지으시고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이름이기 때문입니다. 예수 외에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이 없음도 바로 예수의 이름이 하나님의 이름이기 때문입니다(행4:12).
대제사장이나 사두개인, 서기관들이 예수를 죽이고, 그의 제자들에게
“도무지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고 한 것은 예수가 하나님의 이름으로 오셨기 때문이었습니다. “나는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왔으매 너희가 영접지 아니하나 만일 다른 사람이 자기 이름으로 오면 영접하리라”(요5:43).
그렇다면 예수의 이름은 그 시대, 그들만이 소유한 것일까요? 아닙니다. 예수의 이름을 영접한 자들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요1:12),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들에게 예수 이름으로 오신 성령을 부어주심으로 권능을 받게 하십니다(행1:8). 그래서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찌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막16:17~18)는 말씀을 응하게 되는 것입니다. 즉 성령을 받은 자는 베드로 및 사도들이 행했던 ‘유명한 표적’과 동일하게 ‘이런 표적’, 예수 이름으로 귀신을 쫓고,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음을 받아야 합니다. 제가 소경의 눈을 뜨게 하고, 귀머거리를 듣게 하고, 앉은뱅이를 일으키고, 병든 자를 고치고, 귀신을 쫓는 것은 이초석의 이름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예수 이름으로 하는 것입니다. 이건 저의 전매특허가 아닙니다. 여러분이 받은 성령이나 제가 받은 성령이 동일하기 때문에 여러분도 능력이 나타나야 합니다.
그런데 예수 이름으로 귀신을 쫓고 병을 고치면 잘못되었다고 합니다. 그 당시 대제사장을 비롯한 많은 자들처럼 예수의 이름으로 능력을 행하면 ‘이단’이라 정죄하고, 잘못되었으니 잠잠하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의 이름을, 곧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는 대역죄를 짓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어떠한 자비도, 죄 사함도 없음을 성경은 강조하고 있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의 모든 죄와 훼방은 사하심을 얻되 성령을 훼방하는 것은 사하심을 얻지 못하겠고 또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마12:31~32).
여러분, 예수 이름의 권세가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이제 아시겠습니까? 예수 이름을 소유하는 것은 인생의 마스터키를 소유한 것과 같습니다. 물질축복의 문, 건강의 문, 행복의 문, 형통의 문, 영생의 문을 마음대로 열 수 있는 마스터키를 가진 셈입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예수 이름의 권세를 주었건만 여전히 가난과 저주와 병과 죄 가운데서 살고 있습니까? 왜 예수 이름의 권세를 사용하지 않습니까? 아무리 총알이 장전된 총일지라도 방아쇠를 당기지 않으면 호랑이는 고사하고 토끼 한 마리도 잡을 수 없습니다. 가난과 저주와 병과 죄를 주관하는 것은 악한 마귀요, 귀신입니다. 그러니 그것들을 향해 방아쇠를 당기세요. 방아쇠를 당기면 총알이 나가듯 예수 이름으로 명령하면 그것들이 떠나게 되어 있습니다. 돈이 주머니에 있을 때는 아무런 권세가 없습니다. 돈을 사용할 때 돈의 권세가 나타나듯, 예수 이름을 소유만 하는 것으로는 아무런 표적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예수 이름을 사용하여 명령하고, 예수 이름으로 귀신을 쫓고, 예수 이름으로 축복하고, 예수 이름으로 안수해야 예수 이름이 나가서 여러분이 구한 것을 얻게 하는 것입니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요14:13).
가난합니까? 예수 이름으로 가난을 쫓아버리십시오. 병들었습니까? 예수 이름으로 명하면 병들게 한 귀신이 떠나갑니다. 고통 중에 있습니까? 그것 역시 예수 이름이면 해결됩니다. 예수 이름으로 명하면 바울이 점하는 여인에게서 귀신을 내쫓은 것과 같이 당신도 할 수 있습니다. 예수 이름으로 명하면 베드로가 죽은 다비다를 살린 것처럼 당신도 할 수 있습니다. 예수 이름을 장식품으로 만들지 말고 예수 이름으로 안 되는 사업을 명령하세요. 다시 불 일 듯 일어날 겁니다. 예수 이름으로 자녀들을 축복하세요. 세상의 머리가 되는 자녀가 될 것입니다. 예수 이름으로 병든 가축에게 손을 얹고 기도하세요. 벌떡 일어날 것입니다. 식물이 시들시들할 때도 예수 이름으로 명령하면 파릇하게 살아날 것입니다.
조선시대에 암행어사라는 관리가 있었음은 다 아실 것입니다. 암행어사가 왜 권세가 있었습니까? 이는 왕의 이름으로 왕의 권세를 가지고 나갔기 때문입니다. 그가 내민 마패가 왕이 보냈음을, 왕의 권세를 지녔음을 입증했기에 지방 관리들이 암행어사를 보면 납작 엎드렸던 것입니다.
제가 행정목사를 기도원에 보냈다고 합시다. 그가 가서 이런저런 것을 지시하면 그들은 행정목사의 말을 듣게 되어 있습니다. 왜요? 제 이름을 가지고 갔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이름과 권세를 예수께 주시고 이 땅에 보내셨기에 예수 이름의 권세가 큰 것입니다. 이성계가 이방원에게 물려준 것이 이성계라는 이름이 아니라 왕(王)이라는 이름을 물려준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천상천하에 가장 좋은 이름은 예수의 이름인 것입니다. 그 이름 안에 당신이 원하는 것이 다 있습니다. 그 이름을 마음껏 사용하세요. 그 이름이 역사하실 것입니다. 할렐루야!
물 떠난 고기는
벌레 밥이 되고 만다
배움의 끝은 실천이다
예수의 이름을 사용하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