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의 변호사
누구나 살다보면 죄를 짓는다. 보는 것이 죄요, 듣는 것이 죄인 세상에 죄를 짓지 않고 살기란 정말 쉽지 않다. 사도 바울도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고 죄에 대해 통탄하며, 죄와 투쟁하는 모습을 보였었다. 하물며 우리는 어떻겠는가?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죄에 대해 변호사 역할을 하고 있다. 변호사가 무엇인가? 죄를 대변해주는 것 아닌가. 죄를 대변하다보면 핑계와 변명이 따르기 마련이다. 어쩔 수 없었다, 상황이 그랬다 등등.
대표적인 인물이 사울이다. 하나님은 사울에게 아말렉을 쳐서 그들의 소유를 남기지 말고 진멸하되 모든 사람과 육축까지 죽이라고 하셨다. 그런데 사울은 아각을 사로잡고 양과 소 가운데 좋은 것을 죽이지 않았다. 이를 알게 된 사무엘이 책망하자 사울은 하나님께 제사하려고 좋은 양과 소를 가져왔다고 변명했다. 또 사무엘 제사장이 정한 기한에 오지 않자 자신이 직접 제사를 드리고 하는 말, “백성은 나에게서 흩어지고 당신은 정한 날 안에 오지 아니하고 블레셋 사람은 믹마스에 모였음을 내가 보았으므로 이에 내가 이르기를 블레셋 사람은 나를 치러 길갈로 내려오겠거늘 내가 여호와께 은혜를 간구치 못하였다 하고 부득이하여 번제를 드렸나이다”
(삼상13:11~12).
죄에 대해 변호사가 되지 말라. 그것이 죄보다 더 큰 죄요, 그것으로 인해 죄를 사함 받지 못하게 된다. 죄는 짓지 않은 것이 좋으나 지었거든 무조건 회개해야 한다. 우리아의 처를 범함 다윗이 나단 선지자의 말을 듣고 그 앞에서 부복하고 눈물로 회개한 것처럼, 탕자가 돌아와 아버지 앞에서 변명하지 않은 것처럼.
회개, 하나님이 주신 가장 큰 축복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