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양받기에 합당하신 주님
1972년 북한에서 고속도로를 공사하던 중 갑자기 땅이 무너지면서 땅굴 속에 숨어살던 김태용 목사님과 36명의 성도들이 발각되었다. 성도들은 1953년 북한의 공산당이 예수 믿는 기독교인들을 핍박하기 시작할 때에 땅굴로 들어가 19년 동안이나 숨어서 예배를 드렸다. 열 살도 채 되지 않은 어린 아이를 비롯한 성도 전원이 순교했고, 공사용 스팀롤러에 깔려 목숨이 끊어지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그들은 ‘내 구주 예수를 더욱 사랑’ 찬송가로 하나님을 찬양했다.
성경을 보면 곳곳에 하나님을 찬양하는 구절들이 나온다. 그 중에는 출애굽 이후 모세와 미리암처럼 하나님의 크신 능력을 환희에 차서 찬양한 이도 있지만, 반면 깊은 고난 가운데서 금보다도 귀한 감사 찬양을 올려드림으로 하나님에 대한 변치 않는 믿음을 입증한 이들도 있다. 욥은 하루아침에 자녀와 재산을 잃는 고통 가운데서도 입술로 범죄치 않고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시는 자도 여호와시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라고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인정하는 찬송을 올려드렸고, 다윗은 젊어서는 사울 왕에게 쫓기고 나이 들어서는 아들 압살롬에게 쫓기는 고난으로 점철된 삶 가운데서도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는 위대한 고백을 하나님께 드림으로 마침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라고 인정받았다.
우리를 비롯하여 세상 모든 만물은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해 지음 받았다(사43:21). 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인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창세전부터 우리를 택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녀 삼으신 하나님의 놀라우신 사랑과 은혜에 찬송과 영광을 돌렸고, 또 복음을 전하며 겪는 극심한 환난과 고통 가운데서도 위로하시는 하나님으로 인해 능히 환난 가운데 있는 다른 이들을 위로케 하신 하나님께 오히려 감사와 찬송을 올려드렸다.
하나님의 선하시며 인자하심은 언제, 어디서나, 어떤 상황에서나 변개치 아니하시고 영원하다. 온 우주의 왕이신 하나님의 이름은 내가 잘되고 순탄할 때 뿐 아니라 내 상황과 환경에 관계없이 감사와 찬송, 영광과 존귀만을 받기에 마땅하신 거룩하신 이름이다. 그 하나님을 찬양하자(시103:1).
이국진 사모
joyful_jina@hanmail.net
어린 아이와 같아야
결혼 후 10여 년 간 세 아이를 키워왔다. 사역자의 아내로서 아이 셋을 키우는 일이 녹록치는 않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아이들과의 관계 속에서 하나님의 본심(本心)을 조금씩 깨닫게 되었다.
나는 종종 “어린아이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마18:3) 하신 예수님의 말씀이 모호하게 느껴졌다. 아이처럼 순수한 믿음으로 받들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은 머리로 이해했다. 하지만 이미 커버린 나에게 어떻게 해야 늘 ‘어린아이 같이’ 살 수 있는지는 여전히 어려운 문제였다. 게다가 ‘결단코’라는 단어가 자꾸 마음에 걸렸다.
하나님은 아이들을 통해 답을 주셨다. 엄마가 부르면 아이들은 쪼르르 달려온다. 엄마가 지켜보고 있으면 다른 아이들 사이에서도 주눅 들지 않고 잘 논다. 그러다가 엄마한테 혼날 것 같은 행동을 할 땐 엄마를 쓱 쳐다보고는 허락해달라는 눈빛을 보낸다. 장난감 사달라고 바닥에 굴러도 보지만 혹여나 엄마가 두고 갈까봐 눈물을 머금고 터덜터덜 따라온다. 엄마가 웃으면 아이들은 행복하고 엄마가 슬프면 아이들도 슬프다. 엄마는 아이들에겐 곧 세상의 전부이다. 아이들은 엄마의 끊임없는 관여 속에 살면서 행복과 안정을 느낀다. 아직 자아(自我)가 형성되기 전 아이에겐 엄마가 자기 자신인 셈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이 바로 이것이 아닐까. 하나님의 ‘지속적인 관여’ 속에서 평안을 누리는 것. 말씀, 예배, 기도, 꿈과 이상을 통해 그분이 가라면 가고 멈추라면 멈추는 것. 나의 인생길을 함께 걸어가시는 하나님과 끊임없이 눈을 맞추며 나아가는 것. 우리에겐 하나님이 곧 세상의 전부이길 바라시는 것이다. 그 바람 자체가 하나님의 진한 사랑의 표현이다.
사춘기가 되면 아이들은 제일 먼저 방문을 잠근다고 한다. “Leave me alone.” ‘날 좀 혼자 내버려두라’는 메시지이다. 긴 인생길에서 혹시나 내가 사춘기 소녀마냥 하나님의 관여를 귀찮게 느끼게 될까 두렵다. 나이가 들어 할머니가 되어도 하나님 앞에서는 아장아장 걷는 어린아이 같기를 기도한다. 어떤 상황에도 어린아이 같이 하나님께 매달렸던 다윗과 같이….
이호은 사모
hoeun20@hotmail.com
목적이 이끄는 삶
작년에 저는 스스로 1년의 안식년을 주고 싶어서 회사를 그만두었습니다. 아무 연고도 없는 하와이에 가서 어학연수를 했고, 한국에 돌아와서는 개인적으로 하고 싶었던 것들을 하나씩 해나갔습니다. 목표했던 것보다 조금 더 긴 1년 3개월의 시간이 지났습니다. 사실 퇴사를 할 때 다시 취업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조금도 없었습니다. 대다수 회사에서 원하는 일하기 좋은 연차였고, 광고업계 특성상 1년 정도 쉬었다는 것이 별로 마이너스가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올봄부터 서서히 구직하기 시작했고, 감사하게도 좋은 자리를 많이 추천받았습니다.
생각지 못한 의외의 변수는 저의 마음이었습니다. 다시 일을 시작하려니 너무 심란했달까요. 1년 3개월간의 휴식은 제가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좋아서, 다시 경쟁하고 야근하고 자신을 소모해야하는 직장의 세계로 들어가야 한다는 게 꽤나 괴로웠습니다. 급기야는 굳이 광고 일을 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회의감이 찾아왔고, 적게 벌어도 되니 적게 일할 수 있는 편한 일이 없나 찾게 되더라고요. 그러다보니 합격하고도 입사를 거절하기도 했습니다. 제 마음을 저 자신도 어찌할 수 없어 괴로웠을 때, 수요예배 설교에서 응답을 받았습니다. 그날은 예배시간에 2016년도 추계산상집회를 보여주었습니다. “목적이 분명한 자는 포기하지 않는다.”라는 주제로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의 삶의 목적을 되짚어주었습니다. 우리 삶의 목적은 주님을 위해서지요. 내가 성공해야 하는 이유? 주님을 위해서. 내가 건강해야 하는 이유? 주님을 위해서. 내가 복을 받아야 하는 이유? 주님을 위해서. 내가 잘살아야 하는 이유? 주님을 위해서. 잠시 잊고 있었습니다. 제가 일을 하고 돈을 벌고 하는 모든 이유가 나를 위한 것이 아닌 주님을 위해서인 거지요. 주님께 영광을 돌리고, 주님이 명하신 일을 하고, 주님의 기쁨이 되고, 예수님처럼 남에게 베풀며 세상에 빛과 소금이 되기 위해서.
제가 괴로웠던 것은 제 삶의 목적이 주님이 아닌 나에게 두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제 몸 하나만 건사할 정도로만 최소한으로 일하고 싶었고, 나머지 시간은 제가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살고 싶었습니다. 일을 하고 돈을 버는 일에 따라오는 여러 문제로부터 피하고 도망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제 삶의 중심을 “나”에서 “예수님”으로 옮기니 그런 고민은 결국에는 부차적인 것들이더라고요. 제가 어려움으로 느끼는 것들이 어려움으로 느껴지지 않는 마음을 달라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기도를 하고 몇 달이 지나서 어느 광고대행사의 팀장님과 면접을 보게 되었습니다. 대화를 나누는 동안 마음이 편하고 함께 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팀장 면접, 임원 면접, 최종 면접을 거쳐 지금은 출근한 지 3주차가 되었습니다. 지난 몇 달간 했던 고민이 무색할 정도로 팀장님도, 팀 사람들도 너무 좋아서 잘 적응하고 있습니다. 저는 늘 제가 예수님 중심으로 살고 있고, 바른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고 여겨왔는데 자신도 모르는 사이 제 인생의 중심이 제가 되어 있었습니다. 마음의 어려움으로 인해 괴로운 것이 있나요? 삶의 중심을 나에서 주님으로 옮겨놓는 것만으로도 어쩌면 해결이 될지 모릅니다.
신은혜 자매
dopal0203@naver.com
어떤 목사님께서 탄광촌의 광부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깊은 갱도 밑에까지 내려갔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셨으니 누구든지 믿기만 하면 죄를 사함 받고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라고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그들 중에 감독이 나서며 항변하듯 따졌습니다. “예끼 여보쇼, 그런 법이 어디 있소? 사람이 아무런 노력도 안하고 믿기만 하면 된다는 말이 도무지 이해가 안 되오!” 목사님이 감독에게 물었습니다. “감독님은 이 갱도 밖으로 어떻게 나갑니까?”, “그야 간단합니다. 승강기를 타기만 하면 됩니다.”, “감독님은 아무런 노력도 안하고 올라갈 수 있다는 말씀이네요. 그렇지만 누군가가 그 승강기를 설치하느라 고생이 많았겠네요.” 감독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습니다. “비용도 많이 들고 엄청난 고생을 했습니다. 밖으로 나가는 길은 오직 이 승강기를 타는 방법 외에는 없습니다.” 목사님께서 말을 이어나갔습니다. “하나님의 구원도 그와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간편하고 쉽게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구원을 받지만, 예수님께서는 우리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매달려 고통당하시고 피와 물을 다 쏟으시며 죽으심으로 우리를 위한 구원의 길이 열리게 된 것입니다.”
구원에 이르는 다른 길은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 되십니다.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구원하시겠다는 것이 하나님의 법입니다.
상화평 목사
sanghwapyung@hanmail.net
약식동원 팥빙수의 계절
더운 여름철, 시원한 팥빙수 한 그릇이면 가슴속 안의 더위까지도 날려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시원한 팥빙수가 과연 우리 몸에 어떠한 영향을 주는지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첫째로 팥은 적소두라고 하는데, 독성이 없으며 달고, 약간 성질이 차가우며, 심장, 소장, 비장에 들어간다고 합니다. 효능은 몸의 열을 내려주고, 소변을 시원하게 하여 수분을 잘 배출시켜줍니다. 이뇨작용이 강하기 때문에 몸이 너무 마른 사람이나 소변을 너무 자주 보는 사람들은 적게 먹는 게 좋습니다. 더운 여름철 가슴의 답답함을 개선시켜주고, 몸의 수분 순환을 도와 소변을 잘보고 부기를 내려줍니다.
두 번째로 우유는 영양이 풍부하여 지방, 단백질, 탄수화물 및 비타민을 함유하고 있으며, 성질은 달고, 약간 서늘하며 독성이 없습니다. 심장, 폐, 위장으로 들어가며, 기운을 보충하고 혈액을 공급하며, 몸을 윤택하게 하는 효능이 있습니다. 특히 위장이 차가운 사람은 소화에 무리가 되지 않게 적게 먹는 편이 좋습니다.
세 번째로 수박은 달고 서늘한 성질로 독성이 없습니다. 심장, 위장, 방광으로 들어간다고 하며, 열을 낮추고 더위를 해소시켜주며, 답답함을 줄여주고 갈증을 줄여주며, 소변을 시원하게 하고 혈압을 낮추는 효능이 있습니다. 아프리카가 원산지이며 수분함량이 높고, 단맛이 강하며, 항산화기능을 가진 라이코펜이 다량 함유되어 있습니다. 수박의 껍질역시도 이뇨작용이 강하여 부종이 있을 때 효과가 있습니다.
네 번째로 현미, 보리, 콩, 율무, 찹쌀, 깨, 들깨가 들어간 미숫가루와 떡은 차가운 성질을 가진 얼음, 팥, 우유, 수박의 가슴속까지 시원한 효능을 보조하며 더운 여름 필요한 영양소들을 공급해주어 더위가 가시더라도 체력이 지치지 않도록 해줍니다.
한의학에서는 이러한 대비 작용을 이용한 배합을 치료에 있어서 중요시 여기는 편입니다. 즉 몸의 열을 내려주면 에너지가 떨어지기 때문에 당연히 몸이 피로해지게 되는데(추운데 오래 있으면 쉽게 피곤해지듯이), 그것을 막기 위해서 영양을 공급해주면 몸의 열은 내려가되 에너지는 떨어지지 않기에 오히려 피로가 가시게 되는 효능을 볼 수가 있게 됩니다. 팥빙수는 더운 여름이라는 상황과 그로 인해 쉽게 지칠 수 있는 상황을 같이 염두에 둔 음식입니다. 더위도 가시고 몸도 기운 나는, 이 두 가지의 효능을 기가 막히게 구현한 여름 음식입니다.
마지막으로 팥은 이뇨작용이 있기 때문에 팥빙수를 먹고 소변을 봄으로써 체내의 수분이 배출되면서 몸의 열이 한 번 더 내려가게 되니 다른 찬 음식을 먹는 것보다 더 오랜 기간 체내의 시원함을 유지시켜주게 됩니다.
시원한 팥빙수로 여름을 이기세요.
Dr. 설재현 집사
kseolmed@hanmail.net
은혜를 기억하라!
그리스도인에게 가장 위험한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하나님 은혜를 상실하고 베풀어주신 그 은총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명기에서 우리에게 주시는 강력한 메시지가 ‘기억하라’는 말씀입니다.
‘강한 손과 편 팔로 너를 인도하신 하나님을 너는 기억하라’(신5:15), ‘바로와 애굽에 행하신 일을 기억하라’(신7:18),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신8:2), ‘재물 얻을 능을 주신 네 하나님을 기억하라’(신8:18), ‘격노케 하던 일을 잊지 말고 기억하라’(신9:7), ‘너를 속하셨음을 기억하라’(신15:15), ‘너의 평생에 항상 네가 애굽 땅에서 나온 날을 기억하라’(신16:3), ‘우매무지한 백성아 여호와께 이같이 보답하느냐 그는 너를 얻으신 너의 아버지가 아니냐 너를 지으시고 세우신 옛날을 기억하라’(신32:7), ‘너희는 저희를 두려워하지 말고 지극히 크시고 두려우신 주를 기억하라’(느4:14), ‘너희는 옛적 일을 기억하라 나는 하나님이라 나 같은 이가 없느니라’(사46:9).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을 기억하라.’ 그리고 ‘나에게 복 주신 하나님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 하나님의 사람들은 살아있는 것도, 살아가는 것도 다 주님 은혜 아닙니까?
사도 바울은 “더 많이 수고하고 행한 것이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라”(고전15:10)고 합니다. 사실 지금 이 시대에도 은혜를 구하는 사람은 많습니다. 받아 누리는 사람 역시 많습니다. 그러나 받은 은혜를 잊지 않고 감사드리고 은혜에 보답하는 삶을 사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현재 내 모습은 하나님의 은혜로 만들어졌음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또한 받은 은혜를 넉넉히 베풀 줄 아는 성숙한 믿음의 사람이 되어서 그 은혜를 만분의 일이라도 갚아드릴 수 있을 뿐 아니라 더 큰 은혜와 복을 받아 받은 은혜에 더욱 보답하는 우리 모두가 되길 간절히 소망해봅니다.
김정옥 전도사
jcc0115@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