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언은 비밀을 아는 만능 열쇠이다
목회 34년, 저는 물 없는 사막이요, 눈 덮인 산야 같은 길을 걸어왔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머리털 하나 상하지 않고 이렇게 건재하고 교회가 부흥할 수 있었던 것은 낙타무릎이 되도록 기도했기 때문입니다. 장담컨대 기도하지 않았으면 지금의 저와 예수중심교단은 없었을 겁니다. 저는 하루 4시간은 무슨 일이 있어도 기도하고, 집회가 있을 때는 하루 7시간가량 기도합니다. 제 기도의 대부분은 방언기도입니다.
사람들은 알아듣지도 못하는 방언기도를 왜 하냐고 하고, 방언기도는 가짜니 하지 말라고 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고린도전서 13장 8절 “방언도 그치고”라는 말씀을 붙들어 방언무용론을 주장합니다. 그러나 성경에는 “그런즉 내 형제들아 예언하기를 사모하며 방언 말하기를 금하지 말라”(고전14:39)고 했습니다.
여러분, 방언은 하나님이 주시는 은사입니다. 은사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로운 선물입니다. 고린도전서 12장에 보면 아홉 가지 은사에 대해 나오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방언입니다. 고린도전서 12장 7절에 성령의 은사는 ‘성령의 나타남’이라고 하셨습니다. 즉 은사는 성령을 받은 자들에게 나타나는 것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방언 역시 성령을 받았다는 외적 증표요, 성령강림의 표적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 2장에 보면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 120여 명의 제자들이 다락방에 모여 일심으로 기도할 때에 갑자기 방안에 큰 소리가 나면서 바람이 가득한 것 같더니 각 사람의 머리 위에 불길이 임했습니다. 그러자 그들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서로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또 사도행전 10장에도 베드로가 고넬료 집에서 말씀을 증거할 때에 성령이 임하니 모인 자들이 다 방언을 말했다고 했습니다(행10:46). 방언은 성령을 받았다는 증거입니다.
방언은 사람은 알아들을 수 없는 기도이며, 악한 것들도 알아들을 수 없는, 준 자와 받은 자만이 알 수 있는 비밀대화입니다. “방언을 말하는 자는 사람에게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하나니 이는 알아듣는 자가 없고 그 영으로 비밀을 말함이니라”(고전14:2). 우리의 기도를 엿듣고 전파를 방해하는 존재가 있습니다. 다니엘이 21일 작정기도를 할 때 바사국 군, 곧 악의 세력들이 기도의 응답을 막았다고 했습니다(단10:13). 공중 권세를 잡고 있는 것이 악한 마귀입니다. 그러나 방언기도는 이 악한 것들도 해독할 수 없는 하나님과의 암호입니다. 마치 군통신병들이 모스 부호로 ‘또또 또도또’ 치는 것과 같은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 외에는 이것을 해독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요즘 남북 간에 직통전화가 개설되었는데, 방언은 하나님과의 직통전화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또 방언은 성령께서 우리를 위하여 대신해서 기도해주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마음을 감찰하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롬8:26~27).
성령은 보혜사이십니다(요14: 26). 보혜사(保惠師)란 ‘도움을 베풀기 위해 곁으로 부름을 받은 자’란 뜻입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보냄을 받아 우리를 돕기 위해서 항상 곁에 계신 분이라는 말입니다. 이 보혜사 성령께서 우리를 위해서 직접 기도해주는 것이 방언기도입니다. 보혜사 성령은 우리의 변호사로, 우리의 위로자로, 우리의 중보자로, 우리의 상담자로, 우리의 탄원자가 되시기에 늘 우리를 위해 기도하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곤고할 때에, 우리가 아플 때에, 우리가 큰 고난이나 환난에 처했을 때,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슬픔에 사로잡힐 때, 방언으로 기도하면 이것이 성령이 나를 위해 기도하는 것이 됩니다.
언젠가 제가 순간 불안한 느낌이 들어 방언으로 기도했습니다. 뭔지 모르지만 불안이 엄습해서 방언으로 기도하고 나니 마음에 평강이 임했습니다. 늦게 안 사실이지만, 큰 아들 녀석이 사당동 지하철역에서 내리다가 지하철과 플랫폼 사이에 발이 빠져 끼었답니다. 지하철이 그대로 출발하면 이 아이는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아이의 말에 의하면 누군가가 자기를 번쩍 들어 올려서 살았다는 겁니다. 그래서 성령이 기도하게 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당장 1분 후에 무슨 일이 일어날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해서 기도해주는 것입니다. 그러니 방언기도를 늘, 많이 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요?
저는 몸이 피곤할 때나 심적으로 괴로울 때 방언기도를 합니다. 그러면 마음에 상쾌함이 옵니다. “그러므로 생소한 입술과 다른 방언으로 이 백성에게 말씀하시리라 전에 그들에게 이르시기를 이것이 너희 안식이요 이것이 너희 상쾌함이니 너희는 곤비한 자에게 안식을 주라 하셨으나 그들이 듣지 아니하였으므로”(사28:11~12). 물을 끓이면 그 안에 있던 유해성분이 다 끓어올라 넘쳐 나가듯, 방언으로 기도를 계속하면 내 안의 나쁜 것들이 다 넘쳐 몸 밖으로 빠져나가게 되니 내 몸이 상쾌해집니다. 현대인들은 마음속에 많은 스트레스나 염려, 근심, 불안, 초조, 절망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방언기도를 통해서 그것으로부터 해방되고 마음의 상쾌함을 얻게 될 것입니다.
고린도 교회는 방언기도를 많이 하던 교회였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그 교회의 모든 교인들보다 방언기도를 더 많이 했습니다. “내가 너희 모든 사람보다 방언을 더 말하므로 하나님께 감사하노라”(고전14:18).
성경에 쉬지 말라고 한 것은 오직 기도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사실 우리말로 기도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이럴 때 방언으로 기도하면 됩니다.
“그런즉 형제들아 어찌할꼬 너희가 모일 때에 각각 찬송시도 있으며 가르치는 말씀도 있으며 계시도 있으며 방언도 있으며 통역함도 있나니 모든 것을 덕을 세우기 위하여 하라”(고전14:26). 초대교회에는 예배 때에 찬송도 있고, 가르치는 말씀도 있고, 하나님의 계시도 받아서 증거했으며, 방언기도와 방언통역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요즘은 문화적인 교회가 대세입니다. 찬양도 하고 말씀도 좋은데 방언기도는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교회가 악한 것들에게 당하고 있는 겁니다. 21세기 교회의 부흥은 1세기 교회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야 교회가 힘이 있고, 교회가 맡겨진 사명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천국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성령 충만함을 받아야 하나님 나라에 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성령을 받은 표적으로 방언을 하게 되니 방언은 하늘나라의 비자와 같은 것입니다. 사도 바울의 표현대로라면 ‘하늘의 시민권’인 셈입니다(빌3:20). 이래도 방언을 금하고, 방언을 자제하시겠습니까?
주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찌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막16:17~18). 하나님을 믿으면,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면 표적이 있어야 하는데, 곧 귀신을 쫓아내고, 새 방언을 말하고, 병든 자에게 손을 얹으면 나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방언기도를 하십시오.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는 것(엡6:18)은 방언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악한 것들이 쫓겨나가고, 만사가 형통하며, 고통과 병과 가난이 물러갈 것입니다. 방언은 하나님의 은사, 곧 하나님의 선물이며(고전12:10), 인생의 마스터키입니다. 또한 방언기도는 바다에서는 어뢰탐지기요, 하늘에서는 레이더관측기요, 땅에서는 지질탐사기 같은 존재입니다. 왜요? 하늘과 땅과 땅 아래를 주관하시는 하나님과의 막힘없는 창구이기 때문입니다. 방언기도를 많이 하십시오. 그러면 당신의 영혼이 잘 될 것이고, 영혼이 잘 됨 같이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할 것입니다.
“내가 만일 방언으로 기도하면 나의 영이 기도하거니와 나의 마음은 열매를 맺히지 못하리라 그러면 어떻게 할꼬 내가 영으로 기도하고 또 마음으로 기도하며 내가 영으로 찬미하고 또 마음으로 찬미하리라”(고전14:14~15). 할렐루야!
무기 없이 승리할 수 없고
연장 없이 일할 수 없다
방언기도의 은사는
하늘나라 시민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