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이상(理想)
이상과 현실은 항상 괴리(乖離)가 있다. 누구든지 이상은 원대하고 고상하지만 실제로 그 이상을 실현하고 있다는 자부심을 가진 자는 찾아보기 어렵다. 이상은 멀고 그보다 열악한 현실은 사람들에게 항상 타협할 것을 요구한다.
오늘날처럼 물질주의가 지배하고 있는 세상에서 소위 강대국이란 나라들은 한결같이 철저한 경제원칙에 입각한 합리주의정책을 고수해왔던 나라들이다.
모름지기 세상에서 잘 살려면 이상을 고수하기 보다는 현실에 더욱 잘 적응해야 하는 법이다.
그러나 성경은 절대불변의 진리를 말씀하고 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 그는 세상에서 나신 분이 아니라 우주밖에 하늘로부터 세상에 내려오신 분이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변함이 없으신 분이다. 우리는 믿음으로써 예수라는 이 불변의 진리를 소유할 수 있고, 또 절대불변의 진리를 소유한 이상 이를 두고 현실과 타협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신앙의 지조란 바로 이 믿음, 진리를 지키려는 순일(純一)한 정신이요, 고귀한 투쟁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귀신의 잔과 하나님의 잔을 같이 마실 수 없다. 현실과 적당히 타협하고 신앙을 양보한다는 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는 타락이다. 세상에서는 자기의 소신은 간곳없이 그때그때 시류에 적응 잘하는 약빠른 사람이 똑똑하다고 칭찬받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신앙에 있어서는 결코 양보가 있을 수 없다. 이것이 진리이기 때문이다. 신앙의 지조를 지닌 사람은 세상이 변하고 시류가 달라져도 눈 하나 깜짝 안한다. 온 세상이 뒤집어져 흔들릴지라도 나를 보호하는 피난처가 있어 우리는 예수의 반석위에 굳건히 서 있을 수 있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반석이시며 우리의 보장이 되신다.
문화는 시류에 따라 변한다. 학문도, 가치도, 인심도 변한다. 그러나 예수 믿는 신앙만은 어떠한 일이 있어도 변개치 말아야 한다. “한번 비침을 얻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예한 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케 할 수 없나니 이는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현저히 욕을 보임이라”(히6:4~6).
우리는 주님을 위해 미련하고 어리석을 수도 있어야 한다. 너무 약삭빠른 것은 종종 신앙을 저해한다. 신앙 때문에 지조를 지키며 손해를 감수하는 것은 그만큼 하늘에 상급을 쌓아놓는 일이다. 하나님 때문에 손해를 보는 자는 반드시 복을 받고야 만다는 믿음! 이 믿음이야 말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믿음이다.
그러면 오늘 우리에게 실현되어야 할 하나님의 이상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성령의 충만함을 받는 일이다. 나의 이상, 가치, 자랑 따위를 꺾어버리고 하나님의 이상을 따라 신앙의 지조를 지켜나가길 간절히 소원한다.
신기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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