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과 동행하다
수년 전, 새롭게 직장에 갔을 때의 일이다. 모집공고를 보고는 딱 내 적성이란 생각에 이력서를 넣고 교육을 받은 것까지는 좋았다. 그런데 교육을 채 마치지 않은 상태에서 나에게만 즉시 업무지시가 내려왔다. ‘왜 유독 나만?’ 이쪽에 경험도 거의 없고 교육 중이니 좀 봐주시면 안 되겠냐고 부탁해봤지만 돌아오는 건 어쩔 수 없단 얘기뿐이었다. 게다가 내가 투입될 곳은 이전 직원이 십 년 넘게 근무한 베테랑직인지라 심리적 부담감이 가중됐다.
학부모 상담을 할 수 있을까, 아이들을 잘 가르칠 수 있을까, 별의별 걱정과 두려움에 기도조차 잘 나오지 않는 중에, 하나님은 로마서 4장과 히브리서 10장 말씀으로 걱정과 두려움에 갇혀있던 나를 강하게 끌어내셨다. 하나님이 나에게 원하신 건 믿음이었다.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은 아브라함의 믿음, 두려워 뒤로 물러나지 않고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여 담대하게 나아가는 그 믿음 말이다. 이 말씀을 매일 묵상하고 기도하고 출근하기를 한 주, 두 주… 한 달이 채 되지 않아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첫 수업에 만족했는지 한 학부모가 주변 엄마들에게 소개한 모양이었다. 계약이 잇따랐다. 기존 고객들도 대체로 만족해서 당초 우려와 달리 빠르게 업무에 적응할 수 있었다. 두려움과 걱정은 평강과 기쁨으로 바뀌었고, 별 기대하지 않았던 상사들도 놀라는 눈치였다. 물론 굉장히 까다로운 고객들, 정말 수업이 쉽지 않은 친구들도 있었고 체력 소모도 상당했지만, 하나님이 주시는 힘과 지혜가 나로 낙심치 않고 그 모든 것을 넉넉히 감당케 했다.
그 때 난 확실히 알았다. 믿음을 가지고 순종하며 힘을 다하면 내 자격과 조건, 환경과 상관없이 하나님이 책임지고 함께 일하신다는 것을, 그리고 그 모든 것을 통하여 하나님이 찬송과 영광을 받으신다는 것을. 살인자요, 백발노인에 혀까지 둔한 모세가 끝내 부르심에 순종하여 바로 왕 앞에 갔을 때 하나님께서 그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의 출애굽이라는 대역사를 이루신 것처럼 말이다. 그렇기에 ‘하나님은 나의 힘이요 구원이며, 생명의 능력이 되신다’는 다윗의 고백은 저 천국 향해 좁은 길을 걸으며 더욱 하나님을 바라보고, 그분의 뜻을 좇아 전심전력하는 우리 모두의 것이다.
이국진
joyful_jina@hanmail.net
경험엔 낭비가 없다
어린 시절 나는 중학교 때까지 키가 작아 늘 맨 앞자리에 앉았고 몸도 왜소해 활동에 자신감이 없었다. 기억력과 이해력이 부족해 성적도 바닥에 머물렀다. 또 어머니 뱃속에 있었을 때 영양결핍으로 가슴뼈가 제대로 자라지 못해 한쪽만 움푹 파인 기형적인 모습 때문에 한여름에도 내의를 여러 벌 껴입곤 했다. 그리 넉넉하지도 않았던 어린 시절의 끝이 없던 고난의 시간, 열등감과 열패감, 신체적 콤플렉스들은 그 순간의 나를 정의했고 내 소심한 성격을 결정해버렸다. 그랬던 나에게 주님이 찾아오사 나를 사랑해주시고 동행해주시고 고쳐주셨다. 더욱이 부족한 나를 교사로, 전도사로 불러주셨다. 그때 깨달았다. 내가 경험했던 그 모든 고통스런 순간들이 하나님의 날들을 위한 보배로운 재료였었음을.
기억력이 나빠 남들보다 4~5배 더 노력한 덕분에 끈기와 인내를 배웠다. 몸이 약하다 못해 폐결핵까지 걸려 뼈와 피부만 남게 된 덕분에 이를 악물고 운동하여 건강한 몸을 만들 수 있었다. 외모를 바꿀 수 없어 속사람을 가꿨더니 배려와 친절함과 유머가 자라나 나만의 매력을 만들었다. 움푹 패인 가슴뼈를 만질 때면 나의 부모님께서 ‘그렇게 어려운 시절에도 나를 포기하지 않고 낳아주시고 길러주셨구나’ 하는 생각에 감사의 마음이 끝없이 밀려온다.
내가 공부를 못했었기에 공부를 잘 못하는 아이들을 이해할 수 있었고, 머리가 좋지 않은 친구들을 포기하지 않고 지도해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었다. 몸이 약하고 마른 아이들에게 내 지난날의 사진을 보여주면 그 아이들도 소망을 품고 운동하여 더욱 건강해졌다. 외모에 콤플렉스가 있는 친구들을 보면 내 가슴뼈를 만지게 해주며 나도 그랬었음을 이야기하고, 집안 형편이 어려워 소망의 날개를 펴지 못하는 친구들을 보면 그 고통을 아는 아비의 심정으로 섬겨 세상을 이기는 믿음과 소망의 사람으로 세울 수 있었다. 그래서 이제 난 어제의 고난을 회상하며 고백한다. “주님께서 나의 아픔의 경험들을 사랑과 공감 목회의 귀한 자원으로 바꿔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모든 경험엔 낭비가 없다.
이은총 전도사
unjena7@hanmail.net
속옷을 달라면 겉옷까지
하루는 옛 직장 선배를 만났습니다. 평소에 자주 얻어먹었던 지라 그날 저녁은 제가 사야겠다고 속으로 생각하며 기쁘게 약속장소로 갔지요. 그런 의도를 전혀 몰랐던 선배는 워낙 먹는 걸 좋아해서 둘이서 먹기 힘들 정도의 음식을 잔뜩 시켰습니다. 제 입은 요리를 먹고 있었지만 머릿속은 ‘이걸 다 합치면 얼마지?’ 계산하기 시작했고, 급기야 선배가 디저트까지 이것저것 추가하자 조금 짜증도 났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오늘은 제가 살게요.” 라고 말하며 계산서를 들었을 땐 이미 처음의 기쁜 마음은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생각했던 것보다 음식 값이 훨씬 많이 나와서 속상했고, 맛있는 요리 또한 제대로 즐기지 못했지요.
근래에 또 다른 선배와 점심 약속이 있었습니다. 최근에 도움을 받은 일이 감사해 점심을 사야겠다고 속으로 생각했지요. 만나기로 한 식당이 꽤 비싼 곳이었지만 둘이서 서너 가지를 시킬 걸 염두에 두고 넉넉한 마음으로 갔습니다. 그래서인지 선배에게 요리를 더 시키라고 먼저 권하게 되고, 예상보다 음식 값이 적게 나오자 커피를 사려는 선배를 만류하고 제가 커피도 사게 되더라고요. 요리도, 만남도 좋았거니와 무엇보다도 마음이 기뻤습니다.
그날 집으로 돌아가면서 예수님의 한 가지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대며, 또 너희를 고발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 가지게 하며, 또 누구든지 너를 억지로 오 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 리를 동행하라”(마5:39~41).
처음의 좋은 마음을 끝까지 유지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좋은 마음으로 오 리까지 동행하려고 마음먹었는데 갑자기 상대방이 십 리까지 같이 가달라고 하면 그때부터는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합니다. 추워하는 친구에게 좋은 마음으로 재킷을 벗어주었는데 그 친구가 셔츠까지 벗어달라고 하면 화가 나지요. 3시간 봉사라고 해서 겨우 시간을 내서 갔는데 난데없이 6시간을 하라고 하면 마음이 상합니다. 어려운 이웃에게 식사하시라고 만원을 주었는데 만원을 더 달라고 하면 기분이 안 좋아지죠. 처음에 가졌던 좋은 마음은 금세 사라지고 맙니다.
반대로 오 리까지 동행하기로 약속했지만 처음부터 십 리까지 동행할 마음을 갖고 있다면 상대방이 돌연 십 리까지 함께 가달라고 할 때 기꺼이 동행할 수 있게 됩니다. 처음부터 셔츠까지 벗어줄 마음이 있다면 친구가 재킷에 셔츠까지 달라고 할 때 기분 좋게 내어줄 수 있지요. 3시간 걸리는 일이지만 처음부터 6시간을 일하겠다는 마음으로 봉사하러 간다면 갑작스레 늘어난 일에도 기쁜 마음으로 임할 수 있습니다. 처음부터 어려운 이웃을 위해 2만원을 준비한다면 상대방의 무리한 요구에게도 처음의 기쁜 마음을 가지고 대할 수 있게 되고요.
사람을 대접할 때, 부모님께 효도할 때, 교회에서 봉사할 때, 하나님을 위해 일할 때 어떤 마음으로 해야 하는지 새삼 두 번의 식사 약속을 통해 깨닫게 되었습니다. 처음부터 내가 평소 하려던 것보다 두 배는 더 하자고 마음을 먹으면 누군가 무리한 것을 요구했을 때 여전히 기쁜 마음으로 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을요. 하나님이 주신 좋은 마음을 끝까지 지키는 힘, 속옷을 달라면 겉옷까지 주려는 그 넉넉한 마음에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신은혜 자매
dopal0203@naver.com
사람들은 공짜를 좋아하면서도 막상 공짜라고 하면 자존심이 상하는 모양입니다. 실상은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와 호흡하고 있는 공기, 그리고 찬란하게 빛나는 태양과 철따라 내리는 비와 이슬은 모두가 공짜로 사용하고 있는데도 실감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정말로 중요한 것은 다 공짜입니다.
태초에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모든 것이 준비가 되었을 때 여섯째 날 사람을 만들었습니다. 그 사람은 아무 것도 한 일도 없었는데 일곱째 날 안식부터 시작했습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지극한 사랑의 표현이며 사람을 위한 배려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태초의 인간이 하나님과의 언약을 깨뜨리고 범죄 하였을 때에도 그들을 위하여 가죽옷을 준비하시어 수치와 부끄러움을 가려주었습니다. 그리고 창세기 3장 15절을 통하여 메시아가 이 땅에 오실 것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구약성경 전반에 걸쳐서 예언한 메시아가 오셔서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고난 받으시고 보혈의 피를 흘리시고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누구든지 그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은혜의 선물로 구원을 받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은혜란 받을 자격이 없는 자에게 공짜로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우리는 구원을 공짜로 받았지만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피 값으로 우리를 속량하신 것입니다. 당신은 그 놀랍고 위대한 사랑을 받은 자입니다.
상화평 목사
sanghwapyung@hanmail.net
위장병, 생활을 바꿔야 산다
한국인에게 가장 흔한 병이 위장병이다. ‘더부룩하다’, ‘속이 쓰리다’, ‘트림이 난다’ 등 증세도 다양하다. 어느 경우든 위장이 나쁜 이들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내시경 검사다. 암이나 궤양 등 원인을 찾아내기 위해서다. 위암은 조기발견의 경우 수술로 복부를 열지 않고 내시경이나 복강경만으로도 95%내지 완치를 기대할 수 있다. 궤양 역시 ‘아직도 속 쓰림으로 고생하십니까?’란 말이 나올 정도로 강력한 치료제가 속속 등장해 대부분 수주 이내 먹는 약만으로 완치가 가능하다.
문제는 내시경에도 잡히지 않는 위장병이다. 내시경 소견은 정상인데 환자는 아픈 경우를 말한다. 대부분의 위장병이 여기에 해당한다. 흔히 ‘신경성 위장장애’, 혹은 ‘기능성 위장장애’라 부른다. 이러한 위장병으로 고생하는 이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첫째, 내 병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해야 한다. 자신의 위장이 왜 탈이 났는지 깨닫는 것만으로도 증상이 좋아질 수 있다. 신경성 위장장애는 스트레스로 뇌와 위장을 연결하는 자율신경의 리듬이 깨져서 나타난다. ‘아, 내가 신경을 많이 썼구나. 좀 쉬어야겠네. 하지만 내 위장은 아무 문제가 없어’라는 자신감이 필요하다. 둘째, 주시하지 말자. 자신의 위장을 끊임없이 의식하지 말란 뜻이다. 위장이 나쁜 사람들이 흔히 저지르는 잘못은 항상 자신의 위장을 의식한다는 것이다. ‘이제 밥을 먹었으니 좀 있으면 속이 더부룩해지겠지’라는 식이다. 매사 이런 식이니 건강한 위장이라도 배겨날 리 있겠는가. 다소 아프더라도 다른 일에 몰두하며 잊어버리려고 노력하는 게 좋다. 셋째, 음식을 먹을 때 위장을 배려해야 한다. 오장육부 중 유일하게 이식수술이 불가능한 정교한 장기이다. 거친 섬유소가 많은 비빔밥이나 기름기가 많은 자장면은 좋지 않다. 대신 익힌 곡류나 살코기는 소화가 잘 된다. 쌀죽에 쇠고기 장조림을 곁들여 먹는 게 좋다. 넷째, 걷기가 보약이다. 걷게 되면 긴장이 누그러지면서 성난 위장의 자율신경을 달래주는 효과가 나타난다. 아울러 복근이 저절로 강화되면서 위장의 움직임도 원활해진다. 식후 1시간 정도 천천히 걷는 것은 매우 좋은 습관이다. 다섯째, 복식호흡을 해보자. 한 숨 자체가 교감신경의 톤을 떨어뜨려주며 동시에 위장 근처 횡경막 근육의 경직도 풀어주기 때문이다. 이때 복식호흡은 들숨보다 날숨을 길게 하는 것이 권장된다.
“마음의 즐거움은 얼굴을 빛나게 하여도 마음의 근심은 심령을 상하게 하느니라”(잠15:13).
Dr. 조희경 집사
pearl9230@naver.com
바보상자와의 전쟁
인간의 결단을 나약하게 만들고 작심삼일로 그치게 하는 아주 비밀스런 존재가 있다. 바로 늘 우리 곁에 있고, 너무나도 친숙한 텔레비전(TV)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TV의 비밀스런 역할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우리에게 유익한 뉴스를 전달하고 교양정보를 주며 웃음과 감동을 주는, 너무나도 유익하고 친숙한 존재로 포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스스로를 통제하고 잘 관리할 수 있는 사람에겐 TV의 이러한 역할이 충분히 도움이 된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는 내 소중한 시간을 빼앗아가며. 자기 개발하는데 걸림돌이 되는 무익한 존재일 뿐이다.
대부분의 직장인들은 알고 있다. 고된 업무 후 집에 돌아와서나 황금 같은 주말에 TV를 틀게 되면 얼마나 힘없이 내 의지를 빼앗기고 시간을 송두리째 바보상자 앞에서 보내게 되는지를….
책을 다시 읽기로 결단하고 함께 실행했던 일이 바로 TV 없이 살아보는 것이었다. 결단하고 TV를 과감히 끊고 나니 여유 시간이 생기고 비로소 책이 손에 잡히기 시작했다. 그동안 TV를 통해 얻어왔던 교양정보나 뉴스는 신문과 인터넷을 통해 충분히 아니, 오히려 더 많이 효율적으로 얻을 수 있었다.
TV와의 이러한 전쟁에서 이기고 1년이 넘어선 지금, 더 이상 TV에 대한 그리움은 없다. 전자제품 좋아하는 남자로서, 멋진 전자제품이 하나 없어졌다는 아쉬움 정도만 있을 뿐? 오히려 남아있는 건 한층 더 독서와 공부로 성숙하고 발전된 현재 내 모습이다.
개인적으로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라는 한자성어를 좋아한다. 사람이 할 일은 사람이 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기다리는, 늘 기도와 노력을 겸비한 성도가 되도록 노력해야 하겠다.
장명훈 집사
jjoshua@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