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선
내가 한 번 설교할 때 소모되는 에너지는 노동자가 24시간 일한 것과 맞먹는다는 결과가 과학적으로 입증되었다. 사실 나는 설교 한 번 하고나면 거의 파김치가 된다. 전신이 땀에 젖는 것은 물론이고, 신체 마디마디가 녹는 듯하다.
나를 아끼는 많은 성도들은 제발 좀 살살하라고 한다. 그러나 나는 그럴 수 없다. 나는 설교할 때 ‘오늘이 마지막 설교다.’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자연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다. 하나님의 말씀은 장엄한 선포인데 어찌 대강할 수 있겠는가. 또한 내 체질상 대충이란 용납될 수 없다.
내가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면 나를 종으로 세우신 하나님을 무시하는 것이 아닐까. 세상도 ‘지성(至誠)이면 감천(感天)’이라고 말하고 있지 않은가.
사도 바울도 복음을 전파할 때 대충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 이를 위하여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골1:28~29)라고 말했다. ‘힘을 다하여 수고’했던 것이다. 이것이 최선이다. 그는 영적 아들 디모데에게 “이 모든 일에 전심전력하여 너의 진보를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하라”(딤전4:15)고 당부했다. 전심전력하여 최선을 다하라는 것이다.
요한계시록에는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계2:10)는 말씀이 있다. ‘죽을 만큼 최선을 다해 충성해야 생명의 면류관을 얻는다. 그냥 거저 얻는 것은 없다. 영·혼·육의 면류관을 얻기 위해서는 죽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대충하려는 생각이나 차선을 염두에 두고 있다면 절대 최선을 다할 수 없다. 인생의 배수진을 치고 죽기 살기로 할 때 성공하고, 목적한 바를 이룰 것이다. 절대 성공은 녹록한 것이 아니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