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탕자를 맞이한 아버지의 기쁨을 알라 (눅15:22~32)
누가복음 15장에는 양의 비유, 잃었던 드라크마의 비유, 그리고 잃었던 아들의 비유에 대해 나옵니다. 이 세 가지 비유의 공통점은 잃어버린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기보다는 잃어버린 것을 찾았을 때 주인의 주체할 수 없는 기쁨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오늘은 이중에서 잃었던 아들에 대해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우리는 잃었던 아들을 ‘탕자’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그 아버지는 탕자라고 부른 적이 없습니다. 아버지에게는 아직 철없고 안타까운 아들일 뿐, 탕자는 아니었습니다. 그것이 아버지의 사랑입니다.
아버지에게 두 아들이 있었는데, 둘째 아들이 아버지에게 자기 분깃을 달라고 하여 집을 나갑니다. 아버지로부터 자기 재산을 받은 둘째 아들은 곧 먼 나라로 떠납니다. 그는 그곳에서 허랑방탕하여 재산을 다 탕진하고 돼지들이나 먹는 쥐엄 열매로 배를 채울 정도로 처참한 상황에 놓이게 됩니다. 그때서야 자신의 죄를 깨닫고 아버지 집으로 향합니다.
이제 아버지 쪽의 상황을 보겠습니다. 아버지는 거부였습니다. 사람을 풀어 아들을 찾을 수도 있었지만 아버지는 그가 깨닫고 돌아오기를 기다렸습니다. 가지고 나간 재산을 다 탕진하면 돌아온다는 것을 아버지는 처음부터 알았습니다. 그래서 아버지는 문이 닫혀있으면 행여 돌아설세라 항상 문을 열어놓았고, 매일 문 앞을 서성거렸습니다. ‘상거가 먼데’라는 말은 매일같이 아들이 돌아올 것을 기대하며 동네 어귀까지 살펴보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마침내 아들이 돌아왔습니다. 흡사 거지행색을 하고 나타났습니다. 아들을 발견한 아버지는 달려가 아들에 입 맞추고,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겼습니다.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잡아 잔치를 배설했습니다. 너무 기뻐서 그 기쁨을 주체하지 못하는 모습입니다.
그런데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 한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첫째아들입니다. 탕자의 형 말입니다. 그는 기쁨에 겨워있는 아버지께 “내가 여러 해 아버지를 섬겨 명을 어김이 없거늘 내게는 염소 새끼라도 주어 나와 내 벗으로 즐기게 하신 일이 없더니 아버지의 살림을 창기와 함께 먹어버린 이 아들이 돌아오매 이를 위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나이다”(눅15:29~30)라며 화를 냅니다. 이때 아버지가 말합니다. “이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았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로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눅15:32).
그렇습니다. 함께 기뻐해야 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아버지, 송아지 한 마리 더 잡읍시다. 매일 문 밖에서 동생 기다리는 모습에 마음이 아팠습니다. 이제 즐겁게 사세요.” 해야 옳습니다.
이는 죄인인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올 때 하나님이 얼마나 기뻐하시는 지를 비유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한 영혼을 사랑하시는 하나님, 어서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바라시는 아버지의 마음이 이해됩니다.
4월 27일, 이는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기쁜 날이었습니다. 늘 핵무기로 우리를 위협하던 북한이 비핵화를 선언하고 협상테이블로 나왔기 때문입니다.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리실 때에 우리가 꿈꾸는 것 같았도다 그 때에 우리 입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우리 혀에는 찬양이 찼었도다 열방 중에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저희를 위하여 대사를 행하셨다 하였도다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대사를 행하셨으니 우리는 기쁘도다”(시126:1~3)라는 말씀이 우리에게 실제 이루어졌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좋은 일에 초를 치는 자들이 있습니다. ‘한두 번 속았냐?’, ‘쇼 하는 거다.’ 이러면서 혹자들은 비난과 비판의 소리를 높이는데, 그러면 안 됩니다. 동생이 돌아왔으면 형제로서 무조건 얼싸안아야 옳습니다. 돈보다 동생이 더 귀한 것 아닙니까? 그동안 북한의 소행이 괘씸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일단 그들이 손을 내밀었으니 손을 잡아줘야 합니다. 이번 사건을 하나님의 입장에서 보면 심통 낼 일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남쪽에 있는 영혼만 귀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북쪽에 있는 영혼도 귀하게 여기십니다. 어쩌면 더욱 안타까운 마음일 것입니다. 아버지가 늘 둘째 아들을 애타게 기다렸듯이 말입니다. 그러려면 먼저 남북의 물꼬가 터져야 그 물꼬를 타고 복음이 흘러들어갈 수 있기에 하나님이 그 길을 여신 것입니다. 처음부터 물줄기가 강할 수는 없지요. 그러나 점차 물줄기가 굵어질 것입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이 일을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이 물줄기를 타고 우리는 북쪽에 복음을 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둘째 아들이 갔던 나라에 흉년이 들었듯 북한이 심히 곤핍합니다. 그들이 지금 돼지가 먹는 쥐엄 열매를 먹는 위기까지 간 겁니다. 그래서 살겠다고 살 길을 찾아온 것입니다. 그런 자를 발로 차면 하나님이 좋아하시겠습니까? 힘세서 버티는 소를 외양간에서 끌어내려면 외양간에 불을 지르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북한을 협상테이블로 끌어내려고 유엔제재 등 강수를 두신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으로 인해 쥐엄 열매를 먹는 북의 주민을 보시고 마음인들 편하셨겠습니까? 그 분의 마음을 헤아려야 합니다.
대결의 구도로 가면 승자는 없고 오직 패자만 있을 뿐입니다. 너 죽고 나 죽고 이판사판이 되기 때문입니다. 제가 누누이 말씀드리지 않습니까? 잃을 것이 없는 자와 싸우면 안 된다고 말입니다. 막판에 몰린 자에게 단 하나 남은 자존심을 발로 밟으면 감정만 사나워지고, 그 결과는 서로가 비참하게 되는 것입니다. 뱀도 자기네끼리 싸울 때는 독을 품지 않는다는데, 한 민족끼리 왜 싸워야 합니까? 우리가 서로 싸우고 분쟁하고 대결하면 남 좋은 일만 시키는 것 아닙니까?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또 만일 나라가 스스로 분쟁하면 그 나라가 설 수 없고 만일 집이 스스로 분쟁하면 그 집이 설 수 없고”(막3:24~25).
이제 우리는 협력의 구도로 가야 합니다. 하나님이 길을 여셨으니 우리가 노력해야 합니다. 협력의 다른 말이 ‘사랑’입니다. 우리가 먼저 사랑으로 그들을 용서하고 받아줘야 합니다. 아무리 차가운 방도 계속 불을 때면 언젠가 따뜻해집니다. 얼음물도 뜨거운 물을 붓다보면 미지근해지고, 더 부으면 결국 따뜻한 물이 됩니다.
여러분, 곳간에서 인심 나는 법입니다. 있어야 베풀 수 있는 것입니다. 반대로 없으면 자격지심이 발동하고, 없으면 괜히 심통 나고, 괜히 곡해하게 됩니다. 북한이 딱 그 짝 아니었습니까? 그래서 사랑은 가진 자, 힘 있는 자, 여유 있는 자가 먼저 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정부가 더욱 사랑으로 일을 처리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내 것이 다 네 것이다. 고맙다.”라고 하지 않으시겠습니까?
어느 부모에게 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한 아들은 우산 장수고, 한 아들은 얼음 장수였습니다. 이 부모는 늘 걱정이 많았습니다. 날이 좋으면 안 팔릴 우산 장수 아들이 걱정이었고, 날이 흐리면 얼음이 안 팔릴 아들이 걱정이었습니다. 두 아들은 늘 자신들을 걱정하는 부모님을 생각하다 지혜를 발휘했습니다. 날이 좋은 날은 둘이 합해 얼음을 팔았고, 비 오는 날은 함께 우산을 팔았습니다. 그랬더니 수입도 늘었고, 무엇보다 부모님이 기뻐하셨습니다. 협력하면 시너지 효과가 있고, 외줄보다 삼 겹줄이 강한 겁니다. 남과 북이 하나가 되면 이 나라를 두고 줄다리기 하던 자들이 다시는 덤비지 못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나라에게 넘치게 주심은 없는 북한과 나누고, 그들을 도우라고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큰 뜻, 큰 계획, 큰 그림을 우리가 이해해야 합니다. 머지않아 우리는 김일성광장을 평화의 광장이라 부를 것이고, 거기서 복음을 전하는 기도성회를 갖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제 믿음입니다. 그러니 계속 이 나라를 위해 기도해주시고, 특히 곧 있을 북미정상회담을 위해서도 지속적으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기도로 하나님을 움직이는 자가 가장 위대한 자입니다. 이 나라를 위해 계속 기도하는 당신이 최고의 애국자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잘 이해하고 헤아리는 진정한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우리 모두 이 일을 서로 축하하고, 하나님께 감사합시다. 할렐루야!
대결은 멸망과 불행이요
협력은 성장과 행복이다
제일 값진 것은 사랑이요
가장 아름다운 것은 용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