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이를 알 수 없는 목사님
만나보면 곧 바닥을 보이는 사람들이 있다. 욕심에, 돈에, 이권 앞에 노출되면 속절없이 바닥을 드러내는 사람들을 수없이 봐왔다. 백억 대 재산가인 친구가 단돈 만원에도 바닥을 드러내는 것을 보았다. ‘왜 그렇게 사느냐’고 주위에서 아무리 핀잔을 줘도 꺾이지 않는다. 그렇게 악착같이 사니 지금의 재산을 유지한다고 믿는다. 친구가 내게 1억을 꾸고나서 그 인격이 바닥나는 것을 봤다.
첫 직장에 참으로 대단한 엘리트 선배들이 많아서 산처럼 느끼곤 했다. 내가 작아질 수밖에 없었다. 한 3년 근무하다 보니 그 사람들이 다 보였다. 별 것 아닌 사람들인 것을 알게 되었다.
예전에 거의 예수님과 비견될 정도로 굉장한 학식과 영성을 지닌 목사님을 스승처럼 섬겼었다. 그러나 그 뛰어나신 분의 가슴에 사랑이 없음을 보게 되니 실망스러웠다.
목사님께 돌아온 지 7년이 됐지만 아직 그 깊이를 알 수 없으니 감사한다. 기도원 집회 상담하실 때 곁에서 보조하면서 몇 시간씩 상담하시는 목사님을 보게 되면, 그 끝 모를 지혜와 성령의 역사하심을 느끼며 그저 감탄에 감탄을 더하게 된다. 사랑과 지혜, 열정과 능력, 어느 것 하나 나와 견주어 볼 수 없으니 감사한다. 적어도 스승이라면, 목자라면 이 정도는 돼야 할 텐데 생각하며 내 자신을 돌이키며 부끄러움을 느낀다. 내가 부끄러움을 느끼며 배움을 지속할 수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가. 아무리 바닥을 보려 해도 그 깊이와 넓이를 가늠할 수 없는 목사님. ‘나보다 더 큰 자가 나와라.’ 기도하시는 목사님이 응답을 받으실 수 있을까? 나로선 언감생심이고 족탈불급(足脫不及)이다.
이광주 전도사
leekjlkj@naver.com
남편과 아내
드라마를 보면 사랑하는 연인에게 결혼은 늘 해피엔딩이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사도 바울은 쉽지 않은 결혼생활에 대해 일종의 결혼지침을 주었다. 남편은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 자신 같이,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같이 하고, 아내는 남편을 존경하라 했다. 남편은 목숨 바쳐 아내를 사랑하고, 아내는 남편에게 존경을 넘어 순종까지 하라고 말씀했다.
사실 옛날처럼 허구한 날 전쟁하는 시대도 아니고, 목숨 바칠 일도 없는 요즘 시대엔 남편들이 이렇게 생각한다면 어떨까? 이 땅에서의 목숨은 시간이다. 누구를 위해 시간을 쓰는 건 내 남은 생명을 할애해주는 것, 다시 말해 목숨을 바치는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아내에게 더 많은 시간을 써보자. 아내의 말이 지루하고, ‘빨리, 그래서 결론이 뭔데.’라고 말하고 싶어도 재촉하지 않고, 경청에 시간을 써보자. 살면서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해주는 대상은 바로 나 자신이다. 자신에게 관대하게 시간을 쓰듯 아내에게도 그렇게 하는 것이 바로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 자신 같이 한다는 말 아닐까? 또, 목숨을 바친다는 것은 죽을 각오를 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하루 종일 바깥일을 하고 집에 들어오면 피곤해 죽을 것 같을 때도 있겠지만 죽을 각오로 집안일 좀 도와주자. 결코 죽진 않는다.
그리고 요즘 시대에 남편을 존경할 수 있는 아내가 몇이나 될까? 남편이 목사님이라면 모를까 말이다. 그런데 이렇게 생각해보면 어떨까? ‘존경한다’는 말은 받들어 공경한다는 의미인데, 즉 ‘높인다’는 뜻과 비슷한 맥락이다. 남편을 치켜세워주자. 신혼의 콩깍지가 씌워졌을 때와 달리 지금은 별 볼일 없어 보여도 큰일 할 사람처럼, 왕처럼 치켜세워 주자. 무시하고 싶은 말이 나올 때 빈정거리는 말이 아니라 오히려 남편을 인정해주는 말을 하다보면 정말 그렇게 될 지 누가 아는가.
물론 하루아침에 부부생활이 확 달라지진 않겠지만, 하나님 말씀을 이렇게라도 실천해보려 노력한다면 그에 따른 좋은 열매가 열리지 않을까?
박찬영
post.naver.com/imsofriendly
가정
멋진 작품을 그리고 싶어하는 화가가 있었다.
어느 날 그는 결혼을 앞둔 예비 신부에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다.그러자 신부는 수줍어하며 대답했다. “사랑이지요. 사랑은 가난을 부유하게, 적은 것을 많게, 눈물도 달콤하게 만들지요. 사랑 없이는 아름다움도 없어요.” 화가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엔 목사에게 똑같은 질문을 던졌다. 목사는 “믿음이지요. 하나님을 믿는 간절한 믿음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습니다.” 하고 말했다. 그는 목사의 말에도 수긍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아름다운 무엇이 있을 것만 같았다. 때마침 지나가는 한 지친 병사에게 물었더니 병사는 “무엇보다도 평화가 가장 아름답고, 전쟁이 가장 추하지요.”라고 대답했다.
그래서 화가는 사랑과 믿음과 평화를 한데 모으면 멋진 작품이 될 것 같았다. 그 방법을 곰곰이 생각하며 집으로 돌아온 그는 매우 놀랐다. 집에 있는 아이들의 눈 속에서 믿음을 발견한 것이다. 또한 아내의 눈에서는 사랑을 보았으며, 사랑과 믿음으로 세워진 가정에 평화가 있음을 깨달았다.
얼마 뒤 화가는 세상에서 가장 멋진 작품을 완성했다. 그것은 다름 아닌 ‘가정’이었다.
주(主)는 나의 목자되시니
얼마 전 유아원 관련 일을 보기 위하여 호치민시티를 방문했었다. 새벽에 공항에 도착한 나와 일행은 숙소가 있는 푸미흥을 가야했다. 일행들은 호치민이 초행길이었다. 나는 항상 택시 대신 그랩(GRAB)을 이용하여 일을 보러 다녔는데 일행들을 편하게 모시기 위하여 공항 내에 있는 택시회사에 찾아가 택시를 예약했다. 공항 밖에 대기하던 회사 관리인으로 보이는 남자가 우리를 주차장으로 안내했다. 그러나 그 순간부터 우리 일행은 공항 부근에 모여 있던 사기꾼들의 먹잇감이 되었고, 세 번이나 차를 바꿔 타면서 모르는 사이에 약 삼백불의 돈을 털렸다. 다행히 주님께서 주신 담대함으로 ‘고어웨이(Go away)’를 외치면서 엄청난 위기의 순간을 극복한 후 일행들은 무조건 내가 하자는 대로 따를 것을 약속하였다.
하지만 이틀간 관광지와 쇼핑을 다니면서 호치민 지리를 파악한 일행들은 공항에서의 악몽을 잊어버리고는 자신들의 주장을 내세우기 시작했다. 호치민 택시 기사들의 비행은 악명이 높다. 그래서 호출한 후에 5~10분을 기다려도 그랩을 타야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갈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은 내 말을 듣지 않고 눈앞에 있는 택시를 타려고 했다. 하는 수 없이 그들 뜻대로 택시를 타고 노트르담 성당으로 데려다 달랬더니 택시 기사는 멀리 성당의 탑이 보이는 곳에서 내려준다. 이곳이 아니니 부근까지 데려다 달라고 택시 기사에게 설명을 하는 중에 일행들은 내 말을 듣지 않고 어느 순간 내려있었다. 결국에는 목적지인 성당까지 한 시간 이상을 물어물어 찾으며 걸어가게 되었다. 그들은 멀리 성당의 탑만 바라보며 고생을 잔뜩 한 후에 이후로는 내 말을 무조건 따르겠다고 했지만 비슷한 상황은 계속 이어졌다. 사람들은 왜 이럴까?
호치민에서 그들의 고집대로 힘든 시간을 보내고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출애굽 장면이 떠올랐다. 모세의 말에 순종하지 못하고 40년간 자기들의 뜻대로 이리저리 방황하며 힘든 시간을 보냈던 그 시절, 그들의 인간적인 속성이나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인간들의 속성이 하나도 다를 바가 없음을 느꼈다. 매주 교회의 강단에서 울려 퍼지는 목사님의 말씀을 듣지만, 바로 잊어버리고 각자의 갈 길을 찾는 우리들의 모습을 호치민 여행을 통해서 확실히 보았다. 성경을 읽으면서도 주님께서 주신 말씀이라고 소중히 받지만, 어느 순간 잊어버리고 목자 없이 방황하는 유약한 양의 모습을 떠올려본다. ‘주님여~ 이 손을 꼭 잡고 가소서~’라는 복음송을 수십 년 부르지만 어느 순간 주님의 손은 저 멀리 두고 목자 없는 양으로 헤매고 있는 나의 모습을 바라보며 실소를 금치 못한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는 진실의 고백이 우리들 삶 가운데 메아리치길 바란다.
오자유
lovelyactor@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