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자는 색깔이 분명해야 한다(왕상18:15~40)
우리 예수중심교단은 성령이 가장 강하게 역사하는 교단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현재성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게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복음을 전파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 교단의 분명한 색깔입니다. 이것 때문에 핍박을 받고 애매한 고난을 받지만, 그래도 우리 성도들은 이에 흔들리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신앙에는 타협이 없고, ‘병사는 죽어도 전쟁은 이겨야 하고 핍박과 순교가 온다 해도 예수는 증거 되어야 한다’는 제 목회철학이 확고하기 때문입니다.
색깔이 분명하지 않은 지도자가 거느리는 국가나 기업, 교회나 단체, 그리고 가정은 망망대해에서 나침반을 잃고 표류하는 배와 같아 침몰할 수밖에 없습니다. 적보다 무서운 것은 우유부단한 지도자입니다. 그런 지도자는 한 마디로 무능한 지도자입니다. 자고로 지도자는 색깔이 분명해야 하고, 따르는 무리에게 확실한 목표를 제시해줘야 합니다.
여호수아 24장은 여호수아가 자신의 최후가 이르렀음을 알고 이스라엘 지도자로서 마지막 유언을 하는 장면입니다.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예부터 우리 조상과 함께 하신 하나님을 언급한 후, 이스라엘 백성에게 단호한 어조로 결단을 촉구합니다. “이제는 여호와를 경외하며 성실과 진정으로 그를 섬길 것이라 너희의 열조가 강 저편과 애굽에서 섬기던 신들을 제하여 버리고 여호와만 섬기라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열조가 강 저편에서 섬기던 신이든지 혹 너희의 거하는 땅 아모리 사람의 신이든지 너희 섬길 자를 오늘날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수24:14~15).
여호수아는 자신의 신앙을 다시 한 번 고백하며,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께 대한 절대순종과 유일신앙을 결단하도록 했습니다. 지도자로서 확실하고 분명한 색깔을 보여줌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견고한 신앙을 제시해준 것입니다. 역시 위대한 지도자입니다. 이는 큰 효력을 발휘해서 백성들이 이렇게 고백합니다. “백성이 대답하여 가로되 여호와를 버리고 다른 신들 섬기는 일을 우리가 결단코 하지 아니하오리니 이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 그가 우리와 우리 열조를 인도하여 애굽땅 종 되었던 집에서 나오게 하시고 우리 목전에서 그 큰 이적들을 행하시고 우리가 행한 모든 길에서, 우리의 지난 모든 백성 중에서 우리를 보호하셨음이며 여호와께서 또 모든 백성 곧 이 땅에 거하던 아모리 사람을 우리 앞에서 쫓아내셨음이라 그러므로 우리도 여호와를 섬기리니 그는 우리 하나님이심이니이다”(수24:16~18).
맞습니다. 신앙세계에서 중간지대란 결코 있을 수 없습니다. 완전한 이분법만이 존재합니다. 즉 순종 아니면 불순종, 생명 아니면 죽음이 있을 뿐입니다.
오늘 본문말씀을 보겠습니다. 3년 6개월 동안 기근이 계속되던 어느 날, 하나님은 엘리야에게 이 가뭄으로 인한 기근이 끝나게 될 것을 아합에게 알리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이 극심한 가뭄이 아합이 바알을 숭배한 결과임을 알리라고 한 것입니다. 아합과 마주한 엘리야는 어느 신이 참 신인지 밝히자고 제의하자 아합도 이에 동의하고 갈멜산에서 만나기로 했습니다. 드디어 결전의 날이 되었습니다. 엘리야는 이제 바알 선지자 450명과 아세라 선지자 400명, 곧 850대 1의 정면대결을 펼치게 되었습니다. 이에 앞서 엘리야는 모여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합니다.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두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을찌니라”(왕상18:21). 겉으로는 하나님을 좇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우상을 섬기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회개하고 분명한 신앙을 가질 것을 촉구한 것입니다. 그리고 850대 1의 대결에 들어갑니다. 먼저 바알 선지자 450명과 아세라 선지자 400명은 자기들의 신에게 아침부터 열심히 기도를 드렸으나 그 신은 묵묵부답이었습니다. 그러자 이들은 자신들의 몸을 자해하는 등, 온갖 광란적인 방법을 동원하며 기도하였으나 그들의 바알 신은 침묵하였습니다. 이제 엘리야의 차례가 되었습니다. 그는 먼저 12지파의 수효대로 12돌을 취하여 여호와 앞에 제단을 쌓고 주위에 도랑을 판 후 송아지 제물 위에 물을 부었습니다. 엘리야가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하나님이 참 하나님이시고 백성들이 주께로 돌아올 수 있도록 해달라’고 간구하였습니다. 그러자 곧 하늘로부터 불이 임하여 제단은 물론이거니와 도랑의 물마저도 다 태워버렸습니다. 이를 본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왕상18:39)라고 외쳤습니다. 엘리야는 분명한 신앙노선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제시하고 보여줬던 것입니다. 역시 위대한 지도자입니다.
요즘 교회가 흔들리고 있습니다. 왜 그런 줄 압니까? 목사의 신앙노선이 불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성령충만이 아닌 지식충만의 신앙, 타종교와 타협하고 손을 잡는 뜨뜻미지근한 신앙으로 가기 때문에 양 떼들이 헤매고 있는 것입니다. 소경이 소경을 이끌면 다 구덩이에 빠지는 법 아닙니까?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더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더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계3:15~16). 신앙의 회색분자들, 즉 한 발은 세상에, 한 발은 교회에 넣은 채 기회를 노리는 자들을 토해버린다고 하신 것입니다. 음식이 미지근하면 맛도 없지만, 대장균이 득실거려서 그 음식을 먹었다가는 다 식중독에 걸립니다. 그런 음식이 갈 곳은 쓰레기통밖에 없습니다. 이렇듯 신앙이 미지근한 자들, 기회주의들이 갈 곳도 오직 한 곳, 지옥뿐입니다.
다니엘처럼 사자 굴에 들어가는 위험 앞에서도 신앙이 확실해야 합니다. 사드락과 아벳느고, 메삭처럼 풀무불에 던져질 상황 앞에서도 분명한 신앙을 갖춰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런 자들을 도우시고 높이시는 것입니다. 세상도 능력 있고 재능 있는 자를 가만 놔두지 않는데, 하물며 하나님이 이런 자를 그냥 버리시겠습니까?
돈과 명예, 권력 앞에서도 하나님이 우선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 방백을 의지하지 않고, “나 같으면 하나님께 구하고 내 일을 하나님께 의탁하리라.”(욥5:8)고 했던 욥 같은 자가 되어야 합니다. 느헤미야가 예루살렘 성벽이 무너졌다는 소식을 듣고 어떻게 했습니까? 사람을 의지한 것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께 의뢰했습니다(느1:3~4). 그랬더니 하나님이 아닥사스다 왕의 마음을 움직여 모든 필요한 것을 채워주는 역사가 일어났던 것입니다. 에스더도 그랬습니다. 그가 하만의 계략으로 이스라엘 백성이 전멸될 위기상황이 되자 그녀는 이 사실을 하나님께 금식하며 아뢰었습니다(에4:16). 그랬더니 하나님이 아하수에로의 마음을 주장하사 하만이 장대에 달리는 역전극이 펼쳐졌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되는 부림절을 맞이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신앙에는 타협이 없습니다. 중도도 없고, 적당히도 없습니다. 분명하고 확실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섬길 것이냐, 세상을 섬길 것이냐’ 결정해야 합니다. 돈과 하나님, 명예와 하나님, 권력과 하나님을 선택해야 할 상황에서 당신은 무엇을 택하시겠습니까? 둘 다요? 그런 법은 없습니다.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고 성경은 말씀하십니다(마6:24).
이런 이야기 들어보셨지요? 한 왕이 많은 처첩에게 한 가지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했더니, 어떤 자는 돈, 어떤 자는 명예를 구하였으나 가장 어린 첩은 보자기를 펼치며 ‘임금님만 이리 들어오시면 된다.’고 하자 그 어린 첩을 정비로 삼았다는 이야기 말입니다. 하나님만 확실히 붙잡으면 모든 게 가합니다. 분명한 신앙인이 됩시다. “우리가 시작할 때에 확실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참예한 자가 되리라”(히3:14). 할렐루야!
좋은 사람보다 분명한 사람이 되라
빛과 어두움은 공존할 수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