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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5호 목차 › Text 주일설교

도적맞은 네 꿈을 부활시켜라 (고전15:12~19)

945호 · 2018-04-08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아멘”

이것은 우리가 예배 때마다 암송하는 ‘사도신경’의 마지막 말씀입니다. ‘몸이 다시 사는 것’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다는 말씀입니다. 즉 부활을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기독교의 핵심은 부활의 신앙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셔서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습니다. 그리고 약속하신 대로 사흘 후에 부활하셨고, 다시 하늘로 오르셨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이 없었다면 우리에게 대속은 없었고, 그 분의 부활이 없었다면 우리의 믿음은 다 헛것이고, 우리에게 더 이상의 소망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사 그를 믿는 백성들도 ‘몸이 다시 사는’ 부활을 얻게 되었습니다(고전15:13).

부활이 없다면 우리는 더욱 불쌍한 자입니다. 우리는 정말 망한 자입니다(고전15:19). 그러나 우리는 부활을 믿기에, 다시 살아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는 꿈이 있기에 좁은 길을 마다하지 않고 가는 것입니다.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롬8:18).

이 부활의 신앙이 없으면 뿌리 없는 나무처럼 믿음이 흔들리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조그마한 핍박에 넘어지고, 세상 것에 현혹되는 것은 이 부활의 신앙을 상실했기 때문입니다.

부활절을 기하여 저의 소망이 있다면 여러분들이 부활의 신앙을 되찾기 바랍니다. 왜냐하면 이 부활의 신앙이 확고할 때 신앙이 부활되고 더불어 삶도 부활하기 때문입니다(요삼1:2).

신앙이 부활하려면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유정란을 품어야 병아리가 나오듯, 예수의 영인 성령이 내 안에 계셔야 신앙이 부활하게 됩니다.

예수님이 부활 후 승천하시면서 우리에게 보내주시겠다고 약속하신 예수님의 영이 바로 성령입니다. 그 성령이 우리 안에 거하셔야 우리의 심령이 부활하는 것이며, 부활의 심령이 될 때 우리 삶에도 부활의 역사가 일어나게 됩니다.

왜 여러분에게 꿈이 없는지 압니까? 이는 힘든 세상이나 환경 때문이 아니라 심령이 죽었기 때문이고, 이로 인해 삶도 죽었기 때문입니다. 신앙이 부활하면 삶이 부활하고, 삶이 부활하면 꿈도 부활합니다.

당신의 꿈은 무엇입니까? 아니 당신의 꿈은 무엇이었습니까? 건강하게 되는 것이었습니까? 잘 사는 것이었습니까? 당신의 기업이 불일 듯 일어나는 것이었습니까? 교회가 부흥하는 것이었습니까? 심령이 부활된 자들이여, 이제 버렸던 꿈을 다시 부활시키십시오. 마음껏 꿈을 꾸십시오. 당신 안에 생명이신 예수가 성령으로 거하시면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막9:23)는 말씀이 이루어져 무엇이든 가능합니다.

바디매오, 혈루증 앓던 여인, 수로보니게 여인…, 이들처럼 꿈을 이룰 수 있습니다. 이 사람들의 환경이나 상황도 그리 좋지는 않았습니다. 도저히 꿈조차 꿀 수 없었던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원대한 꿈을 꿨고 이뤘습니다. 날 때부터 소경이었던 자가 눈을 떴고, 12년 동안 앓던 병들었던 자가 나음을 입었고, 자녀의 병 때문에 고통 하던 자가 고침을 받았습니다. 어떻게요? 예수를 만나 그들의 신앙이 부활했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그들에게 신앙의 부활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그 예수님이 우리 안에 성령으로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비록 새우잠을 자더라도 고래 꿈을 꿀 수 있습니다. 비록 지금은 병들었을지라도, 비록 지금은 가진 것이 없을지라도, 비록 배운 것이 없어서 내세울 것이 없을지라도, 비록 폭삭 망했을지라도 큰 꿈을 꿀 수 있습니다.

그런 우리를 향해 세상 사람들은 비아냥거릴 것입니다. “네 주제에 그 꿈이 가능하겠냐?”, “네 팔자대로 살아라.”, “기도한다고 다 되면 아픈 사람 없고 가난한 사람 없게?” 라고 말할 겁니다. 원래 개는 개소리 하는 겁니다. 괘념치 말고 꿈을 꾸고 도전하여 결과로 말해주면 됩니다.

제 얘기를 할까요? 젊은 사업가로 잘 나가던 제가 목사가 되고 나니까 다들 그랬습니다. 대풍산업 이 사장이 망했다고 말입니다. 제가 동네에 나타나면 혹시 돈이라도 빌려달라고 할까봐 다들 숨었습니다. 또 ‘예수 안 믿고 죽은 영혼이 귀신’이라고 주장하다 교계에서 제명되었을 때 저는 남들 눈에는 가능성이 전혀 없는 패자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저는 꿈이 있었습니다. 세계를 교구화 하고, 주님이 꿈에 주신대로 명성을 얻을 거라는 꿈 말입니다. 그 꿈을 품고 늘 성령으로 기도하고, 성령이 주신 능력으로 열심히 일했더니 그들 보란 듯이 꿈을 이뤘습니다. 지금은 그들이 제발 만나달라고, 좀 도와달라고 난리입니다. 전세가 역전된 겁니다. 마치 9회 말 투 아웃 상황에서 만루 홈런으로 대역전을 일으키는 극적인 상황이 전개되었습니다. 죽은 다음에도 이런 극적인 드라마가 연출될 것입니다. 우리에게 손가락질하던 자들, 우리에게 미쳤다 하던 자들이 입을 딱 벌릴 것입니다.

인류의 역사 가운데 최고의 역전승은 예수님의 부활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을 때 그를 십자가로 몰아갔던 종교 지도자들은 축배의 잔을 높이 들었고, 흑암의 권세를 잡은 어두움의 세력들과 사단의 왕국에서는 승리의 자축연이 열렸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패자로 여겨졌습니다. 그러나 그 기쁨도 잠시, 예수님은 사흘 만에 부활하사 승리하셨습니다.

이렇게 역전의 명수이신 예수님은 미련한 우리를 택하사 역전시켜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고, 약한 우리를 택하사 역전시켜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시며, 천하고 멸시 받고 없는 우리를 택하사 역전시켜 있는 것들을 폐하게 하십니다.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는 패자처럼 보이는 우리를 들어 머리가 되게 하시고, 남에게 꾸어주게 하시며, 세계 만민 위에 뛰어난 이름으로 만들어 역전의 드라마를 쓰십니다. 거지 나사로가 그랬듯이, 한나와 모르드개와 에스더가 그랬듯이, 입다가 그랬듯이 말입니다. 여러분도 꿈을 꾸세요. 삶의 부활이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 우리는 이 부활의 소식을 전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부탁하셨습니다.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마28:19~20)고 하셨습니다.

왜 사도 바울은 그런 고통을 당하면서도 복음을 전했을까요? 그 답은 고린도전서 15장 32절에 있습니다. “내가 범인처럼 에베소에서 맹수로 더불어 싸웠으면 내게 무슨 유익이 있느뇨 죽은 자가 다시 살지 못할 것이면 내일 죽을 터이니 먹고 마시자 하리라.” 무슨 말인가 하면 ‘만일 우리에게 부활이 없다면 다른 사람들처럼 먹고 마시고 놀지, 무엇하러 이런 일을 하겠느냐? 그러나 부활의 소망과 확신 때문에 그런 온갖 위험과 고난도 다 무릅쓰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부활의 확신이 있는 우리도 사도 바울처럼 복음을 전파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요11:25~26)고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부활이시며 생명이신 예수님은 내세적 부활은 물론이고, 이 땅에서의 삶 속에도 부활이 되시고, 생명이 되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 예수를 의지하여 도적맞은 꿈을 부활시킵시다. 할렐루야!

패자부활의 감격과 기쁨을 누리자

빛이 오면 어둠은 물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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