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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5호 목차 › 객원컬럼

하나님의 의(義)

945호 · 2018-04-08

하나님은 부성(父性)을 반드시 이루시는 분이시다.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이시지만 하나님의 뜻을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는 일까지도 순종하셨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26:39)라고 하신 기도를 통해 우리는 예수께서 아버지의 뜻을 얼마나 존중하셨는지 알 수 있다.

아버지의 뜻은 그가 그리스도로서 죽임을 당하는 것이었다. 예수께서도 “내가 하늘로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요6:38~39)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뜻이 아들보다도 위에 계신 것은 하나님의 뜻이 의(義)를 기초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의(義)는 하나님의 영광과 하나님 자신을 나타낸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지시할 땅으로 가라’는 명령에 순종하였고, 독자 이삭을 제물로 드리는 순종으로 의롭다 인정받아 하나님으로부터 ‘나의 벗’이라 칭함을 받았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믿음을 의(義)의 표준으로 삼으셨다. 그러므로 온전한 믿음이란 아브라함이 하나님께로부터 인정받은 그 의(義)에 이르는 믿음을 말한다.

오늘날 우리가 의롭다 함을 받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존중했기 때문이다. 이는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고, 하나님의 사정을 아시는 성령께서 주시는 영감(靈感)으로 말미암는다(고전2:10~11).

바리새인들은 성결한 삶을 위해서 남다르게 노력하고, 어려서부터 율법대로 살려고 철저히 훈련받은 사람들이다. 사람의 눈으로 볼 때 바리새인들의 행실은 흠잡을 데가 없다. 그러나 그들의 믿음은 하나님께 인정받지 못했다. 이는 의(義)를 버렸기 때문이다.

믿음에는 의(義)가 나타나야 한다. 하나님의 의(義)가 나타나지 않는 믿음은 결코 하나님께 인정받을 수 없다. 교회에 다니다가 타락한 사람들을 주위에 많이 보는데, 이는 믿음의 의(義)를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다.

과수원에서는 수확한 과일의 상태를 일일이 검사하는데, 합격여부를 위해 먼저 일정한 기준을 정해놓고 그 기준에 따라 과일을 분류한다. 믿음에는 ‘의(義)’라는 기준이 있어서 하나님은 우리를 심판하시되 공의(公義)로 심판하신다고 하셨다. 사람이 아무리 자기 기준에 따라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 반론을 제기한다고 해도 그것은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다. 의(義)는 주의 보좌의 기초이기 때문이다(시89:14).

우리의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아브라함의 믿음과 일치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를 의지하는 까닭은 그로 말미암아서만 우리의 믿음이 아브라함의 믿음에 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창15:6).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을 존중하며 순종하는 것을 의(義)로 여기시고,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것을 불의(不義)로 여기신다.

신기류 목사

abba777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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