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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4호 목차 › Text 주일설교

다시 한 번 천국을 침노하라(마11:1~12)

934호 · 2018-01-20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마11:12).

이 말씀은 무슨 뜻일까요? 천국은 힘센 자들, 약탈자들이 들어가는 곳이라는 말씀일까요? 그럴 리 없습니다. 우리가 구원을 얻는 일은 힘이나 돈이나 심지어 선(善) 같은 어떤 행위에 대한 보상이 아닙니다.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요, 값없이 주시는 선물입니다. ‘천국은 침노하는 자가 빼앗으리라’는 이 말씀은 우리들이 이 땅에 살면서 천국의 복락을 맛보며 살려면 필사적인 각오로 은혜를 사모하며 추구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즉 하나님의 나라는 마음씨 좋은 호인들의 것이 아니라, 필사적으로 투쟁하는 자들의 것입니다.

물론 침노는 불법입니다. 남의 집에 무작정 들어가면 불법이요, 남의 나라를 쳐들어가도 불법이고, 남의 물건을 강탈해도 당연히 불법입니다. 그러나 천국을 침노하는 것만은 합법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사랑에는 불법이 없습니다. 어린 아이가 무작정 엄마 젖을 찾는 것이 정당하듯 말입니다. 또한 본질이 사랑이신 하나님의 소원은 우리가 실질적으로 천국에 오는 것은 물론이요, 사는 동안에도 천국생활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잘 살고, 건강하고, 행복하고, 만인의 머리가 되어 남에게 주며 멋지게 살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고, 우리 삶 자체가 산 위의 등불이 되어 세상을 비추기를 원하시기 때문에 천국을 침노하여 누리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침노라는 말을 잘 생각해보십시오. 이는 그냥 대강, 적당히 하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죽기 살기로, 무대포로 네가 필요로 하는 것을 구하라는 것입니다. 삶에 배수진을 치고 ‘못 받으면 죽는다’는 심정으로 달려들라는 말씀입니다. 마치 야곱이 환도뼈가 부러져도 하나님의 사자를 부여잡고 축복하기 전에는 놓아줄 수 없다고 한 것과 같은 심정으로 구하라는 것입니다.

성경은 침노하는 방법에 대해 이렇게 말씀합니다.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마7:7~8). 될 때까지 젖 먹은 힘까지 다해 구하면 천국을 침노하게 된다는 겁니다. 한밤중에 친구에게 보리떡을 강청했더니 결국 보리떡을 얻어낸 것처럼 말입니다(눅11:5~8).

결국 우리가 이 땅에서 천국 생활을 못하고 있는 것은 우리가 천국을 침노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결론에 이릅니다. 가난하고 병들고, 저주와 고통 속에 사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돌보아주시지 않은 것이 아니라 우리가 천국을 침노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딸을 고치겠다고 예수님이 식사하는 자리까지 쳐들어간 수로보니게 여인이나 눈을 뜨겠다고 고래고래 소리 질러 예수님을 부른 바디매오나 중풍병 걸린 친구를 치료하겠다고 남의 집 지붕을 뚫은 네 명의 친구들이나 하나 같이 천국을 침노한 자들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이들 모두에게 예수님은 ‘믿음이 있는 자’라고 칭찬하신 것을 아십니까? 곧 천국을 침노하는 자가 믿음 있는 자라는 것입니다. ‘믿음=침노’라는 관계가 성립되는 것입니다. 믿음은 문제가 있을 때 뒤로 물러나 침륜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문제해결을 위해 침노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침노는 어린아이와 같아야 할 수 있습니다. 아이들은 뭐가 갖고 싶거나 먹고 싶으면 사줄 때까지 울고, 그래도 안 사주면 아예 땅에 주저앉거나 심하게는 바닥에 뒹굴며 웁니다. 그런 마음으로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체면 따질 거 없습니다. 무슨 자존심입니까? 내가 살고 봐야 하는 거 아닙니까? 내가 응답받아야 되는 거 아닙니까? 예수님도 부끄러움을 개의치 않고 십자가를 지셨는데, 우리가 무슨 체면이고 자존심입니까? 욕 좀 먹으면 어떻습니까? 미쳤다는 소리 좀 들으면 어떻습니까? 열두 해 혈루증을 앓던 여인이 하혈하는 수치를 무릅쓰고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져 나음을 입었음을 기억합시다. 가끔 저 봐주느라 안수를 안 받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떻게 미안하게 매주일 안수를 받느냐는 겁니다. 그거 좋은 거 아닙니다. 침노해서 빨리 낫고, 빨리 응답받는 게 저도 좋습니다.

주님은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렘33:3)고 하셨습니다. 아이들처럼 구하라는 겁니다. ‘그래도 내가 배울 만큼 배웠는데, 내가 있을 만큼 있는 사람인데, 사회적인 체면이 있지 어떻게 부르짖나.’ 이런 사람은 어쩔 수 없습니다. 투구와 갑옷으로 멋지게 감쌌지만 그 안에서 고름이 줄줄 흐르는 나아만 장군처럼 비참하고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야 합니다. 투구와 갑옷이라는 자존심과 체통을 벗어야 천국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둘째, 침노하려면 인내와 집념이 필요합니다. 침노란 벨 누르면 문을 열어주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철옹성이라도 뚫고야 말겠다는 각오가 있지 않으면 안 됩니다. 가끔 조금 기도하다가 ‘이건 안 되나봐.’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서너 번 안수 받고

‘이건 못 고치나봐.’ 하는 사람이 있는데, 안 되는 게 아니라 아직 기도의 독이 덜 차고 때가 아직 이르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겁니다. 계속 해야 합니다. 그러면 됩니다. 떨어지는 물방울로도 바위를 뚫는데 왜 안 되겠습니까? 하나님도 두려워하지 않는 안하무인인 재판장을 찾아간 과부처럼 집념과 인내가 필요합니다. 희망은 여러분을 버린 적이 없습니다. 꿈도 여러분을 배신한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도 여러분을 떠난 적이 없습니다. 다만 여러분이 너무 빨리 포기하고 좌절해서 안 되는 겁니다.

가난합니까? 병들었습니까? 고난 중에 있습니까? 고통 중에 있습니까? 원하는 것이 있습니까? 기도제목이 있습니까? 침노해야 합니다. 목이 터져라 기도해야 합니다.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만이 천국열쇠입니다. 열쇠를 가지면 어떤 문도 열리는 것 아닙니까? 그래서 기도의 부족은 모든 것의 부족이요, 기도가 없는 자에게 미래가 없다고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실질적인 천국을 가기 위해서도 침노하는 신앙은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을 선물로 주셨지만, 마귀란 놈이 우리의 구원을 갈취하려고 늘 악한 궤계를 꾸미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떻게든 천국에 못 가도록 합니다. 하나님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셨지만, 그곳에 있는 가나안 일곱 족속을 쫓아내고 그 땅을 점령했던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신앙이 미지근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자아성찰이나 도를 터득해가는 것이 아니라 전투입니다. 늘 악한 것들과 싸우면서 하늘나라를 향해 가야하고 마침내 천국에 이르는 것입니다. 전투의 가장 큰 무기는 ‘성령충만’입니다. 마귀와 싸울 수 있는 공격형 무기입니다. ‘성령충만’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쉬지 않고 기도해야 하는 것이고요.

그래서 저는 이제 수요예배에 한 시간 이상 기도만 시키려고 합니다. 적당히 신앙생활해서는 천국에 갈 수도 없고, 이 땅에서 천국생활하기도 힘들기 때문입니다. 침노하는 신앙, 침노하는 믿음, 침노하는 정신으로 살 때 내세와 금세에 천국이 도래합니다.

여러분,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면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면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마7:9~11)고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 침노하는 신앙, 곧 믿음으로 소원하는 것들을 쟁취하십시오.

할렐루야!

문(門)은 열리라고 있고

문제는 해결되라고 있다

믿음이 있어야

도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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