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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929호 · 2017-12-16
청춘, 그 아름다운 이름

왜 우리는 몸을 관리해야 할까요? 인생 100세 시대니까? 건강하게 오래 살기 위해서? 내가 아프면 가족이 고생하니까? 전부 맞습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사도 바울의 말처럼 우리의 몸은 우리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고, 성령이 거하시는 성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몸을 돌보는 일은 곧 하나님의 성전을 돌보는 일이지요.

요한복음 2장을 보면 예수님을 몹시 화나게 하는 사건이 나옵니다. 얼마나 화가 나셨으면 상들을 다 엎어 버리셨지요. 유월절 가까울 때에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전에서 보신 것은 기도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소와 양, 비둘기를 사고파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노하신 예수님은 노끈으로 채찍을 만들어 동물들을 성전 밖으로 내쫓으시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상을 엎으시며 그들에게 말씀하시지요.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 되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도다.”

예수님을 노하게 하는 성전과 예수님을 기쁘게 하는 성전, 나는 지금 어떤 성전인지 반성해봅니다. 건강한 성전인지, 정결한 성전인지, 기도하는 성전인지 아니면 성전이 아니라 세상 것들로 가득 찬 강도의 소굴이 돼버린 것은 아닌지. 사도바울은 말합니다.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예전에 아는 선배에게 책을 빌려준 적이 있습니다. 그 선배는 제게 허락을 구하지 않고 그 책을 다른 사람에게 빌려주었고, 그런 식으로 돌고 돌아 몇 달 후 그 책이 제게 돌아왔을 땐 아주 너덜너덜해져 있었습니다. 아끼는 책이 전혀 아니었음에도 책 상태를 보자 무척 화가 났고, 그 다음부터는 그 선배의 마음가짐이 못미더워 보이더군요. 너덜해진 책의 이면에서 책 빌린 사람의 무책임을 보았고, 그 무책임의 이면에서 저를 가벼이 여기는 마음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하물며 하나님은 어떠실까요. 하나님이 예수님의 핏 값으로 산 우리입니다. 그 몸을 함부로 한다는 건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과 하나님 아버지를 업신여기는 것이지요. 우리는 최선을 다해 하나님의 성전을 관리해야 합니다. 건강해야 합니다. 깨끗해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6장의 기록대로 우리의 몸은 음란을 위해 있지 않고 오직 주를 위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사람이 범하는 죄들은 몸 밖에서 일어나지만 음행은 자기 몸에서 죄를 범하는 것이기에 더욱 힘써 관리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하나님께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전을 드리고 싶지 않으신가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성전, 그것을 잘 관리하는 귀한 사명을 다해봅시다. 성령님이 기쁘게 거하실 수 있도록.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전6:19~20).

신은혜

dopal0203@naver.com

동행하는 삶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한다는 것

몇 해 전,?우리 부부는 결혼식을 마치고 신랑의 학업을 마치기 위해 뉴질랜드로 떠났다.

우리가 모아둔 자금만으로 뉴질랜드 유학생활을 해야 했기에 약간의 걱정은 있었다. 하지만 어릴 적부터 우리 교회에서 목사님의 말씀으로 훈련받고 자라온 터라 나름의 자신이 있었다.

신랑은 학생비자, 나는 아르바이트를 할 수 있는 단기워크비자의 신분으로 설렘 반 긴장 반의 타향살이를 시작했다.

이제 막 결혼한 신혼 초기였고, 하나님이 함께하시니 둘이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으리란 믿음, 그리고 무엇보다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는 신랑이 있었기에 두려움보다는 설렘이 있었다.

하지만 부딪혀보니 현실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학비, 집세, 식비, 생활비 지출로 모아둔 돈이 점점 떨어져갔다. 나는 스시가게 아르바이트를, 신랑은 창고에서 물건을 옮기고 슈퍼마켓 아르바이트를 하는 등 학업과 일을 병행했다.

그렇게 한 학기를 마치고 두 번째 학기의 학비를 위해 기도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부부의 기도를 들으시고 학비를 채워주셔서 두 번째 학기 또한 잘 마칠 수 있었다.?두 학기를 마치고 다음 학비를 내야하는 시기에 하나님께 학비를 달라고 간절히 기도하며 매달렸다.

물질적으로 많이 힘들었던 그 시기에 마음 속 깊이 늘 생각하고 마음을 다잡은 것이 있었다.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자’였다.?하나님은 모든 것을 아시고,?모든 것을 할 수 있으신 전지전능하신 분이기에 그 분만 온전히 의지하면 우리의 모든 것을 해결해주시리라는 믿음이 있었다. 그런데 세 번째 학기가 시작되고 기도했던 학비가 원하던 시기까지 응답받지 못했을 때, 그 때 나는 내가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고 있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두려워하고 있었다. ‘학비를 안주시면 어떻게 하지?’ 라며 염려하고 있었던 것이다.

늘 기도해주시고 말씀해주시던 엄마가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향해 단 0.01%의 불신도 없이 온전히 내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100% 의지하는 것’이라고 말씀해주셨다. 어떠한 결과가 오든지 그 모든 것 또한 하나님께서 너희 부부를 인도해주시는 과정이라고 하셨다. 그 때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를 알게 되었다. 이제까지는 그냥 말로만, 생각으로만 하나님을 의지했었던 것이었다. 현실에 부딪혀보니 말만이 아닌 나의 모든 정신과 온 마음을 다해서 하나님을 믿는 것,?그 분을 신뢰하는 것, 그것이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사무엘하 12장 19절 이하에 보면 다윗 왕이 아들을 살려달라고 기도하는 장면이 나온다. 일주일동안 밤새도록 땅에 엎으려 금식하며 기도하였지만 하나님께서는 그의 아들을 데려가셨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이 기도한대로 아들을 살려주지 않으셨다. 하지만 다윗은 하나님께서 아들을 데려가셨다는 것을 알게 된 그 순간 바로 일어나 몸을 씻고 기름을 바르고 여호와의 전에 들어가 경배한 후 음식을 먹고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였다. 왜 아들을 데려가셨냐고 불평, 불만하지 않았다.?그 상황을 인정하고 받아들였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는 것이다.

원하던 기도의 응답이 아닐지라도 그것을 겸허히 편안한 마음으로, 감사히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야말로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는 것이다. 다윗은 아들을 잃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의 마음을 보시고 솔로몬이라는 위대한 아들을 주셨다.

그 일이 있은 후 귀국을 준비하면서 다시 물질적으로 어려운 상황이 찾아왔었지만 그러한 믿음으로 기도하며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였더니 주위에서 하나 둘 도움이 오기 시작했고, 한국에 돌아와서는 더욱 감사하고 행복한 생활을 할 수 있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늘 좋은 것을 허락하신다. 사람이 그 길을 계획할지라도 발걸음을 인도하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기도의 응답이 내가 원하는 대로 오지 않아 마음이 힘들 수도 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뒤돌아보면 분명히 깨닫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나를 인도하고 계셨다는 것을, 주님의 뜻을 말이다.

정효경

happy_holly@naver.com

오늘의 메시지

주홍글씨

‘주홍글씨’는 17세기 미국의 청교도 이민자들 사회에서 간음한 여자의 가슴에 붉은 글씨로 간통한 여자를 뜻하는 “A(Adultery)”가 새겨진 여인의 삶을 그린 소설이다. 지울 수 없는 낙인. 당시 미국의 목화 농장 흑인들에게는 등에 불에 달군 낙인을 찍었다. 이 주홍글씨나 낙인은 평생 지울 수 없는 것이다.

집 앞에 옷 수선을 맡기는 단골집이 있다. 주로 구제품을 구입하다 보니 단골이 됐다. 바느질하는 아주머니가 신실한 권사님이신데 항상 교회 집사, 권사님들이 들락거리는 집이다. 성경에 대해서도 얘기하고 신앙생활에 대해서도 얘기꽃을 피운다. 어쩌다 잘못 이해하고 있는 부분이 있어서 한번 거들었더니 “목사님이세요?” 묻길래 “아닙니다.” 했더니 자기들끼리 의논했는지 선교사님이라 부른다. “내가 왜 선교사예요?” 물으니 자기들은 다 안다며 웃는다. 선교지에서 돌아와 잠시 쉬고 있는 정도로 이해하고 있는 모양이다. 자기들끼리 이야기하다가도 내가 들어서면 질문하는 사람도 있고 하여 옹기종기 모여 내 얘기를 경청하는 경우가 있었다.

아주 은혜스럽게 내 말을 받아들였다. 전도사 발령 나기 전이라 어디 선교사냐고 물어도 그냥 넘기다가 전도사로 발령 받은 후에 다시 묻길래 “종로기도처에서 봉사하고 있습니다.” 하니 “목사님이 누구세요?” 물어 “이초석 목사님입니다.” 하고 보니 이미 얼굴이 굳었다. 하고 싶은 말은 많은데 손님이라 차마 말을 못하는 모양새다. 기껏 하는 말이 “아니 멀쩡한 교회 놔두고 왜 88체육관에서 해요? 차도 막히게 하고.” “교회가 없어서 그래요.” “아니 그 큰 교회가 왜 교회가 없어요?” “가난한 사람들이 많고 해외선교 하느라 교회를 못 지었어요.” “그건 핑계고 믿음이 없어서 그렇죠. 교회가 없는 건.” 거기까지 얘기 나누고 다음에 방문하니 조심스럽게 묻는다. “근데 이초석 목사님이 이단인건 아세요?” 이단이라고 소문이 났다고 하는 것도 아니고 이단인걸 다 아는데 당신만 모르고 있다는 취지다. 할 말은 많지만 닫힌 문이 열리려면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아서 “이단은 삶도 이단처럼 삽니다. 돈 문제 여자문제. 자기가 예수라는 놈. 나는 이초석 목사님을 50년 가까이 안 사람입니다. 난 그 분의 삶을 존경하는 사람입니다. 난 배울 만큼 배우고 정상적인 삶을 산 사람이에요.”하고 말았다.

오랜만에 만난 예전 직장 동료가 조심스럽게 묻는다. “근데 이사장. 그 목사님 소문이 안 좋던데. 알어?” 이건 그래도 양식 있는 사람이라 격이 좀 있다. 5년 전쯤, 다니던 교회 목사님께 신학교를 갈 예정이라고 말씀드리니 교단 목사님이 누구시냐고 물어 “이초석 목사님입니다.” 하니 듣기에도 민망한 말들에 어디서 들었는지 이상한 소리를 줄줄 읊는다.

더욱 우스운 것은 인터넷을 보니 예수중심교회는 목동에 있는데 이초석 목사는 나이가 많아 아들을 후계자로 삼고 모든 걸 넘겨주고 있다고 한다. 근데 가관인 건 그 아들 이름이 ‘이시대’란다.

한번 찍힌 주홍글씨, 그 낙인이 이렇듯 집요하다. TV에서 얼굴을 온통 문신한 미국인이 수많은 수술 끝에 정상적인 얼굴을 찾는 모습을 보았다. 이제 과학도 의학도 발달하여 주홍글씨를 지울 수도, 낙인을 지울 수도 있는 세상이다. 그러나 세상의 오해와 편견을 지우기는 쉽지 않다.

누가 부인하랴. 그 동안 환난과 핍박 속에서도 지금의 예수중심교단을 이루시고 전 세계를 복음화하신 업적을. 가시밭길 걸으시면서 이룬 값진 결실이고 하나님의 섭리임을.

목사님께서야 ‘모든 사람은 오해할 권리가 있고, 믿음엔 타협이 없다고 하시며, 평론가는 평론을 하고, 비평가는 비평을 해야 먹고 산다’며 그냥 넘기신다. 그러나 우리는 이 일을 바로 잡기 위해 뭔가 해야 한다. 그것은 바로 우리 성도들이 성령의 열매를 풍성히 맺고 샤론의 꽃처럼 삶의 향기를 날리는 것이다. 또한 각 분야에서 세계적인 인물이 나와 우리가 믿는 하나님을 높여야 한다.

목사님은 원하지 않는다고 하시더라도 우리가 이 일을 위해 나서야 한다. 그래서 낙인이 없어진 민낯을 보일 수 있어야 한다. 그 문을 누가 두드리고 있는가. 그 길을 누가 계속 찾고 있는가. 구하고 있는가. 나는 다만 내가 아는, 바로 그 주님께 아뢰고 강하게 개입하여 주시길 바랄 뿐이다.

이광주 전도사

leekjlkj@naver.com

From Internet

의견차이

어느 날 해와 달이 말씨름을 했다.

해가 말했다.

“나뭇잎은 초록색이야.”

달이 말했다.

“아니야, 나뭇잎은 은색이야.”

달이 또 말했다.

“사람들은 언제나 잠만 자더라.”

그러자 해가 반박했다.

“사람들은 언제나 바쁘게 움직여.”

달이 말했다.

“그럼 왜 땅이 그리 조용해?”

해가 다시 말했다.

“내가 보기엔 언제나 시끄럽던데 뭐가 조용해?”

그때 바람이 나타나 말했다.

“나는 하늘에 달이 떠 있을 때나 해가 떠 있을 때나 세상을 다녀봐서 잘 알아. 해가 세상을 비추는 낮에는 해가 말한 대로 세상은 시끄럽고, 사람들도 모두 움직이고, 나뭇잎은 초록색이야. 그러나 달이 세상을 비추는 밤이 오면 온 땅이 고요해지며 사람들은 잠을 자고, 나뭇잎은 은색으로 보인단다.”

가장 어리석은 자가 누구일까? 나만 옳다는 사람이다. 내 생각, 내 말은 다 옳고, 상대의 말이나 의견은 틀리다고 주장하는 자다.

나와 다르다고 무조건 틀린 것은 아니다. 나와 다름을 인정해야 한다. 그래야 분쟁이 사라진다.

자기에게 집착하고 자기를 내세우는 생각과 마음은 아집(我執)이다. 아집을 버려야 한다. 그래야 가정이, 교회가, 사회가 소통된다.

예수중심편집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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