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의 축복을 받자(고전2:9~16)
마태복음 22장을 보면 한 율법사가 “선생님이여, 율법 중에서 어느 계명이 큽니까?” 라고 묻습니다.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한 것입니다. 이에 예수님이 이렇게 응대하십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마22:37~40).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많은 계명 중 으뜸은 ‘나 외에 다른 신을 위하지 말라’, 즉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나기 전부터 하나님이 우리를 택하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를 구원하신 이유는 다른 게 아닙니다. “곧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엡1:4~6). 곧 하나님을 찬양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이는 우리 인생은 전적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기 위해 존재한다고 해도 전혀 지나침이 없다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마음과 목숨과 뜻을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해야 함이 마땅합니다. 예수님도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다”(마10:37)고 말씀하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함이 어떤 것보다 으뜸이 되어야함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면 하나님도 우리를 그만큼, 아니 그보다 훨씬 더 많이 사랑해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잠8:17). ‘그냥 예쁘다. 사랑한다.’ 하고 입발림만 하시는 것이 아니라 엄청난 축복으로 우리에게 안겨주신다는 것입니다. 그 축복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합니다. 성경에는 이렇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기록된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고전2:9). 어디 그 뿐입니까?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8:28)고도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떤 축복인지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시편 91편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저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저를 건지리라 저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저를 높이리라 저가 내게 간구하리니 내가 응답하리라 저희 환난 때에 내가 저와 함께하여 저를 건지고 영화롭게 하리라 내가 장수함으로 저를 만족케 하며 나의 구원으로 보이리라 하시도다”(시91:14~16). 즉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에게 구원을 이루시고, 존귀를 허락하시며, 기도하는 것에 응답하시며 건강과 장수를 허락하신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한 마디로 요약해놓은 성경구절이 있습니다. 바로 요한삼서 1장 2절의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세상에 필요한 것들을 하나님이 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말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사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일까요?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요14:15). 더욱 자세히는 이렇습니다.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저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저에게 와서 거처를 저와 함께 하리라 나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내 말을 지키지 아니하나니 너희의 듣는 말은 내 말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말씀이니라”(요14:23~24).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자가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그럼요, ‘사랑’이 뭐냐고 물으신다면 눈물의 씨앗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이 하지 말라는 것은 안하고, 하라는 것은 하는 것’이라 말하겠습니다. 아주 쉽지요. 아내를 사랑한다고 하면서 아내가 싫어하는 짓만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술 먹고, 외박하고, 놀음을 계속 하면서 아내에게 ‘당신 사랑해.’ 하면 가증된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하나님의 말씀에 토 달지 말고, 쥐꼬리만 한 인간의 지식이나 잣대를 대지 말고 그저 ‘예’ 하는 것이 그 분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것, 하나님이 감동하실 일을 하는 것이 사랑입니다. “제가 하나님을 사랑하기는 하는데요, 아무리 그래도 이건 좀 아닌 건 같아요.” 이렇게 말한다면 그건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백세에 얻은 아들을 제물로 드리라는 하나님 말씀에 그저 순종한 아브라함이 진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런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은 축복을 붓고 또 부어서 넘치게 하셨습니다.
신명기 28장을 우리는 ‘축복장’이라고 부릅니다. 손대는 것마다 복이요, 하는 일마다 복이요, 나로 인해 가족이 복을 받고, 짐승까지 복을 받는다는 말씀입니다. 세계 제일 가는 자가 된다고 하십니다. 어떻게 할 때 그렇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삼가 듣고 하나님이 오늘날 우리에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이런 복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요셉이 그랬습니다. 요셉은 하나님을 사랑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싫어하는 죄를 짓지 않기 위해 누명을 쓰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이 그를 축복하셔서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마음으로 생각하지 못한 사람을 들어 애굽의 바로 앞에 세우셨으며, 총리대신이 되는 자리에 오르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은 조건부입니다. ‘나를 사랑하면’이 전제된 것입니다. 거기에 우리는 ‘무조건’ 순종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억울할 것이 없음은 아무리 우리가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해도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는 것이 이보다 훨씬 크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해드려야 얼마나 해드리겠습니까?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은 하나님을 위한 것이 아니라 곧 나 자신을 위함이 아니겠습니까?
여러분, 하나님을 사랑하세요. 하나님이 주신 계명을 지키세요. 부귀와 장구한 재물과 의가 다 그 분의 주머니에 있는데(잠8:18), 그 주머니가 누구에게 열리겠습니까?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자,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에게 열리지 않겠습니까?
젊은 나이에 과부가 된 여자가 있습니다. 룻입니다. 그가 보아스라는 재벌과 결혼할 수 있었던 것,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 오를 수 있는 대복을 받은 것은 다른 이유가 아닙니다. 바로 하나님을 사랑했기에 그런 것입니다. 그는 이방여인이었지만 시어미인 나오미의 하나님을 인정하고, 하나님을 사랑했습니다. “나로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유숙하시는 곳에서 나도 유숙하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룻1:16).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를 위해 예비하신 복을 받읍시다.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을 버리세요. 다 우상입니다. 나무를 깎고 돌을 깎아 형상을 만든 것만이 우상이 아닙니다. 돈을 더 사랑하여 주일에도 돈 벌러 가는 것은 우상을 섬기는 것이요, 권력을 얻기 위해 상사 눈치 보며 돼지머리에 절하는 것도 우상을 섬기는 것입니다. 건강을 챙기느라 주일에 등산하고 골프하는 분들, 하나님이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러지 말고 우리를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 있게도 하시고 없게도 하시며, 높이기도 하시고 낮추기도 하시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분의 계명대로 살아보세요. 그분이 다 주십니다.
그렇다고 하나님을 수단 삼으시면 안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폐부까지 다 뚫어보시는 분이신지라 당신을 이용해서 돈이나 벌고 권력이나 얻으려는 자에게는 절대 역사하지 않으십니다. 진실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노력하는 자에게 하나님이 예비하신 축복을 아낌없이 주실 것입니다. 우리,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합시다. 할렐루야!
나무에서 떨어진 가지는
말라 죽을 수밖에 없다
아무리 큰 물고기라도
물 떠나면 죽는 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