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악을 호흡하지 말라!
계속되는 작정기도를 마치고 귀가한 어느 날이었다. 저녁도 거르고 몇 시간을 부르짖은 터라 뱃속에서는 ‘꼬르륵 꼬르륵’, 연신 ‘뭘 좀 달라’며 아우성을 친다. 물 먹은 솜처럼 늘어지는 몸을 추스르며 찜기에 냉동 만두를 올려놓았다. 하지만 만두가 익어가는 그 짧은 사이에 그만 스르륵, 잠이 들고 말았다.
새벽기도 시간이 되자 저절로 눈이 떠졌다. 그런데 시야가 온통 뿌옇기만 하였다. ‘아직 잠이 덜 깼나?’ 싶은데 이거 연기와 냄새가 장난이 아니다. 뭔 일인가 싶어 두리번거리니, 이게 웬걸, 찜기 채 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허겁지겁 불길을 잡고, 벌겋게 달아오른 찜기를 내려 식히며, 그을음을 닦으랴 문을 열어 환기를 시키랴…. 정말 기도 시간이 아니었다면 어땠을까? 잠에 취해 잠자리를 고집했다면 어땠을까! 깊은 잠에 빠져 싱크대는 물론 집까지 홀랑 태워먹지 않았을까?
그런데 그런 일이 있은 후 며칠이 지나도 좀처럼 탄내가 가시질 않았다. 락스, 베이킹소다, 식초며 커피 할 것 없이 항간에 떠도는 탄내 제거하는 온갖 방법을 동원해보았으나 아무 소용이 없었다. 닦아도, 닦아도 벽지와 가구 틈새 구석구석 스며든 유해물질은 계속해서 악취와 가스를 내뿜고 있었다.
하지만 이게 웬일, 탄내가 집에서만 나는 게 아니었다. 집을 나와 심방을 갈 때도, 교회에 나와 있을 때도 지긋지긋한 탄내가 계속 나를 따라다니는 것이 아닌가! ‘어디 불이라도 난 것일까, 누가 나처럼 무엇을 태우기라도 한 것일까?’ 그러나 원인을 알고 나자 너무나 어처구니가 없었다, 누가 실수한 것도, 불이 난 것도 아니었다. 탄내가 진동하는 집에 들어앉아 잠을 자고 숨을 쉬는 동안 그것이(그을음이라고 해야 할까, 유해 가스라고 해야 할까) 내 콧속과 폐부에 자리 잡아 탄내가 난다고 느끼게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어디서건 탄내만 났던 것이다. 오히려 다른 모든 것은 다 정상이었건만….
죄악을 먹고 마시고 호흡하다 보면 결국엔 그것이 나를 지배하고 이끌어간다. 죄악을 호흡하다 그것이 일상화되는 순간엔 정상적인 모든 것이 비정상으로 보인다. 오히려 죄악을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 더 나아가 나와 조금 다를 뿐인 상대를 쉽게 정죄하고 비판하기까지 한다. 자신이 죄악의 프레임(틀)에 갇혀 지내고 있다는 사실을 잊은 채 말이다.
건강한 삶을 살려면 먼저 환경을 바꾸어야 한다. 영적인 삶에서도 마찬가지다. 죄악을 가까이 하고, 그것을 호흡하고, 그것이 아무 거리낌 없이 일상화된다면 당신은 결코 죄악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우리 가운데서 더 이상 죄가 기생할 수 없도록 환경을 바꾸자. 거짓과 탐욕, 교만과 분냄, 정욕과 온갖 더러운 수단과 방법을 이 시간 주의 이름으로 과감히 털어내자.
신현명 목사
yeddo1@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