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복이 우리를 삼키려 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축복을 간구해야 합니다. 우리가 영혼육의 축복을 받을 때 하나님의 영광이 세상 위에 드러나고, 그것은 다시 복음을 전하는 통로가 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주신 큰 축복이 오히려 우리를 삼키려 할 때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물질과 명예의 축복을 허락하셨을 때 우리는 일정시간 하나님께 감사하며 감격하지만 조금씩 시간이 지나면서 목표가 사라진 공허함을 느끼거나 자칫 교만이 틈타므로 하나님을 떠나거나 나태해지는 실수를 하는 것입니다.
성경의 시작도 그랬습니다. 하나님께서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시고 아담에게 선악과 이외에 모든 것을 누릴 축복을 주셨고, 만물의 이름을 지을 만큼 지혜의 축복을 주셨으며, 외로움이 없도록 배필의 축복까지 허락하셨습니다. 하지만 아담은 그것을 누리기는 했으나 지키지는 못했고 결국 영생을 잃고 에덴에서 쫓겨나게 됩니다.
사사로 부름 받은 기드온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거듭되는 계시에 힘을 얻고 몇몇 친구들과 바알 제단을 뒤엎고 아세라 상을 찍어버리는 용맹한 자였습니다. 또한, 300명의 군사를 선별해 미디안 군대를 초토화시키며 이스라엘의 영토를 요단강까지 확장하는 큰 축복과 명예를 누렸습니다. 물론 처음에는 이러한 축복을 잘 지켜낼 듯 백성들이 왕이 되어달라는 요청도 겸손히 거절합니다.
하지만 그 이후 말과는 다르게 자신의 자녀의 이름을 ‘나의 아버지는 왕이시다’는 뜻의 아비멜렉이라 지으며 스스로를 왕처럼 여기고, 전쟁에서 탈취한 금귀고리를 모아 에봇을 만들어 물질적 욕구를 충족하며 축복을 저주로 바꾸는 실수를 합니다. 그 결과 아비멜렉은 기드온이 세상을 떠나자 요담을 제외한 70명의 형제를 모두 몰살시키는 비참한 결과를 낳았고, 그의 에봇으로 인해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시 우상을 섬기며 기드온의 가문에서 돌아섰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삿6~9장).
축복은 하나님께서 주시지만 그 축복이 복이 될지 화가 될지 결정하는 것은 우리의 몫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축복을 구할 때는 반드시 우리가 그 축복을 다룰 수 있을 때 주시기를, 그리고 주실 수 있을 만큼 우리의 영혼이 먼저 성장하길 갈망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주신 축복’이 아닌 ‘축복을 주신 그 분’, 하나님 한 분께 집중할 수 있고 변함없이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려 노리는 것은 환란, 기근, 적신뿐만이 아닙니다. 때로는 과분한 물질과 명예, 감당 못할 능력의 가면을 쓰고 사단은 속삭입니다. “이것을 취하고 이것에 경배하라!”고 말입니다. 하지만 광야에서 예수님이 그러하셨듯이 우리는 하나님과 세상의 것을 저울질 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으로, 하나님만 섬기겠다’고 과감하게 선포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주신 축복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오롯이 헌신할 때 사단은 우리를 포기하고 천사가 우리를 수종 드는 권능의 그리스도인으로 거듭나게 될 것입니다(마4:1~11).
하인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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