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은 무지의 산물이다(삿7:1~7)
‘지피지기(知彼知己)면 백전백승(百戰百勝)’이란 말이 있습니다. 상대를 알면 전쟁에 이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생각해봅시다. 상대를 모르면 두려워하고 그 결과 전쟁에 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아는 게 없으면 두려워하게 됩니다. 알아야 자유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영어를 모르니까 외국인만 보면 도망가는 것 아니겠습니까?
제가 오늘 드리고 싶은 말씀은 이것입니다. 우리가 창조주이신 하나님을 모르기 때문에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분의 능력과 그 분의 사랑을 모르기 때문에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분을 알면 우리가 두려움 대신에 기쁨과 자신감으로 가득할 것입니다.
열왕기하 6장에 보면, 엘리사가 기거하고 있는 도단에 아람군대가 쳐들어와 완전 포위를 한 장면이 나옵니다. 이를 알게 된 엘리사의 사환이 두려워 떨었습니다. 그러자 엘리사가 기도하여 이 사환의 영안을 여니 거기에는 불말과 불병거가 산에 가득 진을 치고 있었습니다. 또 다시 엘리사가 기도하니 아람군사들의 눈이 어두워진 사건이 있습니다. 엘리사의 사환은 하나님의 능력과 임재하심을 몰랐기 때문에 두려워 떨었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이런 이야기입니다. 미디안 족속은 수시로 이스라엘을 공격하여 이스라엘 백성의 곡물과 각종 과실을 침탈해갔고, 양과 소와 나귀 등 모든 소유물들을 빼앗아갔습니다. 결국 이스라엘은 미디안 족속에 의해 자신들의 산업을 모조리 잃어버릴 지경이 되었고, 급기야 생명의 위협까지 느낀 이스라엘 백성들은 산으로 도망하여 굴을 파거나 산성을 쌓아 생명을 보존하기에 급급했습니다. 마침내 하나님이 미디안 군대와 싸우기 위해 기드온을 부르셨고, 군대를 조직하게 하십니다. 그 때 모인 사람이 3만 2천명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들 중 300명만을 차출하여 정예부대를 만들기 원하셨습니다. 그 기준이 무엇이었는가 하면 첫째, 먼저 두려워 떠는 자들은 돌려보내라고 하셨습니다. 두려워 떠는 자와는 하나님이 함께 하실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능력을 부인하는 자들이기에 그렇습니다. 기드온을 하나님이 세운 사사로 인정했다면 당연히 그와 함께 하신 하나님을 믿어야 했습니다. 하나님은 366번이나 말씀하셨습니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사41:10). 그래서 2만 2천명이 돌아가고, 만 명이 남았습니다(삿7:1~8). 하나님은 그들도 많다 하시며 감군명령을 내리십니다. 물가에서 물을 마실 때 무릎을 꿇고 물을 마시는 자들은 돌려보내라고 하셨습니다. 그들은 상황도 시국도 모르고 타성에 젖은 자들이었습니다. 역대상 12장 32절에는 ‘시세를 아는 자’라야 통솔자가 되고, 승리자가 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결국 개처럼 서서 물을 손으로 핥아먹는 3백 명만을 차출, 그들을 전쟁에 투입시켜 대승을 거두게 됩니다. 그들은 언제든 싸울 준비가 된 자들이었습니다. 기드온을 비롯한 300명의 군사들은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믿었습니다. 자신들의 힘은 미약하나 하나님이 이 전쟁에 관여하고 있음을 알았고, 승리가 하나님께 있음을 믿었습니다.
사실 기드온은 겁쟁이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그를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위해 사사로 세웠을 때 “어찌하여 이 모든 일이 우리에게 미쳤나이까… 나의 집은 므낫세 중에 극히 약하고 나는 내 아비 집에서 제일 작은 자니이다”(삿6:13~15)라고 손사래를 치며 두려워했던 것입니다. 오죽하면 양털로 두 번이나 하나님께 징표를 구했을까요? 하나님 말씀을 듣고 300명의 군대를 조직했을 때도 기드온은 과연 이 전쟁에 이길 수 있을까 두려웠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이 그에게 다른 사람들이 하는 꿈 이야기를 듣게 하심으로 두려움을 떨치게 하셨습니다.
기드온의 이야기를 하자니 모세의 얼굴이 떠오릅니다. 모세 역시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 시키라는 명령을 받았을 때 두려워 떨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보낼 사람을 보내라고, 입이 둔한 나 말고 유능한 사람을 택하라고 누누이 고사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합니다. 어떻게 그가 두려움을 없앨 수 있었습니까? 강심장제를 복용한 것이 아닙니다. 그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자신과 늘 함께 한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두려움을 떨쳐내고 출애굽을 시도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이 말씀을 좋아합니다.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요일4:18). 하나님의 사랑을 소유한 자는, 하나님의 사랑을 아는 자는 절대 두려움에 사로잡히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본체가 사랑이십니다.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셨는지 당신의 아들을 죽이면서까지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분이 무엇을 주시지 않을까봐 두려워합니까? 조금 어려운 일을 당하면 두려워 떠는 자들이 있습니다. 인생길이 좀 막히면 겁에 질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너무 모르는 겁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하는 생각이라”(렘29:11). 이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합력하여 선을 이뤄주시는 분, 그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걱정할 필요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인식의 변화가 있어야 하나님의 생각과 뜻을 올바로 알 수 있습니다. 인식은 알 인(認), 알 식(識)으로, 제대로 아는 것을 뜻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호6:3).
지금 우리나라의 현실은 참으로 암울한 상태입니다. 북한이 핵실험에 장거리미사일을 쏘고 있고, 미국에서는 선제공격을 운운하는 등 참으로 두려운 지경에 있습니다. 그러나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은 절대 죄와 함께 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죄를 미워하십니다. 그러니 우리가, 우리나라가, 교회가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 나와야 합니다. 예레미야 선지자 시대 유다 백성들의 모습이 우리 신앙의 현주소입니다. 예레미야가 그들에게 회개를 촉구했듯이 이 나라, 이 민족이 회개하는 것만이 살 길입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이스라엘아 네가 돌아오려거든 내게로 돌아오라 네가 만일 나의 목전에서 가증한 것을 버리고 네가 흔들리지 아니하며 진실과 정의와 공의로 여호와의 삶을 두고 맹세하면 나라들이 나로 말미암아 스스로 복을 빌며 나로 말미암아 자랑하리라”(렘4:1~2). 그래서 우리가 10월 2일 오후 3시, 서울시청광장에 모여 회개하며 기도하려고 합니다. 타락한 이 나라를 용서해달라고, 서로 사랑하지 못한 우리를 용서해달라고 기도하려고 우리 교단이 앞장서는 겁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여야 이 나라가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나라의 운명은 미국의 손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김정은이 손에 쥔 핵탄두 단추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그 분은 사랑이신지라 우리가 회개하면 용서하시고 우리의 피난처가 되시며 우리의 요새가 되실 것입니다.
10월 2일 오후 3시, 서울시청광장에서 우리 함께 모여 하나님의 뜻을 이룹시다. 이 나라와 민족의 평화를 위해 함께 기도합시다. 분명히 하나님이 그 자리에 함께 하실 것이며, 우리의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이 속히 그 뜻을 이루실 것입니다. 꿈꾸는 듯이 찾아올 벅찬 그 날을 기대합시다. 할렐루야!
인식(認識)의 변화는
긍정적인 마음에서 나온다
생각이 바뀌면 미래가 보인다
인식이 바뀌면 세상이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