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식의 변화 없이 미래는 없다(민13:25~14:10)
인식(認識)이란 기본적으로 ‘사물을 분별하고 판단하여 아는 일’을 말합니다. 그런데 그 인식의 차이에 따라 결과나 미래가 뚜렷하게 달라집니다. 그래서 인식이 바로 서야 하는 것입니다. 만일 부정적인 인식에 사로잡혀 있으면 만사가 부정적이요, 미래 역시 부정적인 것이 되고 맙니다.
오늘 본문이 그렇습니다. 모세가 각 지파에서 한 사람씩 열둘을 택하여 가나안 땅에 정탐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똑같은 곳을 같은 시간에 똑같이 보고 온 사람들의 말이 두 가지로 나뉘었습니다. 열 사람은 ‘우리는 그들에 비하면 메뚜기에 불과하니 가나안 땅 입성은 불가능하다’였고, 여호수아와 갈렙 두 사람만은 ‘그들은 우리의 밥이니 두려워 말라’고 했습니다. 인식의 차이입니다. 앞의 열 사람은 부정적인 인식에 사로잡혀 있으나, 두 사람은 긍정적이요 희망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결과가 어떠했습니까? 전자의 10명은 자신들의 말대로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왜요? 인식하는 대로 삶이 전개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그 많은 사람들 중 유일하게 가나안 땅에 들어갔습니다. 모세를 통해 나타난 하나님의 능력, 즉 이적들을 보고도 그들의 부정적인 인식이 바뀌지 않았기에 결국 광야에서 다 죽은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이야기 하나 더 들어보시겠습니까? 알래스카에 냉장고를 팔라는 회사의 명을 받고 간 두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 사람은 “여긴 온통 얼음인데, 냉장고가 팔리겠어요?” 라고 한 반면, 다른 한 사람은 “냉장고 가진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무한대로 팔리겠는데요?” 라고 했습니다. 두 사람의 인식의 차이는 어마어마한 것입니다. 어떤 사람의 미래가 밝을까요?
여러분, 인식의 변화 없이는 미래가 박수를 치며 꽃다발을 안고 달려오지 않습니다. 어두운 먹구름만 덮일 뿐입니다. 한일관계도 그렇습니다. 한일관계가 우호적으로 변화하려면 선행되어야 할 것이 있는데, 바로 인식의 변화입니다. 경쟁의식이나 경계의식을 버리고 동반자 의식을 가질 때 한일관계가 개선될 것입니다. 또한 요즘 주택문제로 정부가 골머리를 앓고 있는데 이 문제를 해결하는데도 인식의 변화가 필요합니다. 주택이 투자가 아니라 거주하는 곳으로 인식될 때 주택문제도 자연스럽게 해결될 것입니다.
이제 저는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하나님에 대한 인식을 바꾸고자 합니다. 여러분 앞에 놓인 문제,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고민들은 하나님에 대한 인식이 올바를 때 해결될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여러분의 인식은 어떻습니까? 엄하신 하나님, 재앙을 내리시는 하나님, 분노하시는 하나님이라 여기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그래서 어려운 일을 당해도 다가가지 못하고, 혼날까봐 멀리 도망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가룟 유다나 사울처럼 말입니다. 그것을 바꾸어야 합니다.
우리 하나님은 사랑이 많으실 뿐만 아니라 전능자이시며, 우리의 피난처요, 우리의 요새요, 우리가 의뢰할 유일한 분이십니다(시91). 더욱이 그 분이 나의 아버지 되심을 확실하게 믿어야 합니다. 이런 인식이 있어야 우리 문제의 보따리를 하나님께 내어놓을 수 있고, 그 분 앞에서 하소연할 수 있고, 그 분 앞에서 땡깡도 부릴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인식이 있어야 우리의 믿음이 바로 서고, 우리의 믿음이 흔들리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그 분을 바로 인식하는 자체가 바로 믿음입니다.
소경 바디매오가 눈을 뜬 것이며, 12년 동안이나 혈루증을 앓던 여인이 나음을 입은 것, 수로보니게 여인이 딸을 고친 것 등 기적된 삶을 체험한 자들 모두는 능력의 하나님을 제대로 인식했기에 그런 축복과 은혜를 받은 것입니다. 다윗이 죄를 짓고도 하나님 앞에 나갈 수 있었던 것도, 베드로가 예수님을 배신하고도 사도로 거듭날 수 있었던 것도 용서하시는 하나님을 알았고, 바로 인식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오해하면 안 됩니다. 그 분은 스스로 공의라는 테두리 안에 당신을 가두셨지만, 일흔 번에 일곱 번도 우리를 용서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었던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하나 더, 다시 오시는 예수님은 구원자로 오시는 것이 아니라 심판자로 오신다는 것을 제대로 인식해야 우리의 신앙 자세가 달라지게 됩니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냉정하게 버리신다는 마태복음 24장 말씀을 인식할 때 미지근한 신앙을 버리고 열과 성을 다하게 될 것입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을 얼마나 오해하고 있는지 신명기 28장을 대하는 태도에서 알 수 있습니다. 신명기 28장 1절에서 14절까지 보면 온통 복 이야기입니다. 나가도 복, 들어가도 복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굳이 14절 이하만 보고는 저주하시는 하나님을 기억하고 인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것 잘못하면 저주하시는 거 아닌가?’ 하고 두려워합니다. 아니, 하나님이 쥐덫 놓고 걸리기만 기다리는 분입니까? ‘잘못 하기만 해라. 바로 저주다.’ 이러시는 분입니까? 아닙니다. 어떻게든 복을 주시려고, 어떻게든 잘 되게 하시려고 애쓰시고, 참으시고, 힘을 주시고, 위로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오해를 풀고, 하나님에 대한 인식이 바뀔 때 여러분이 축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고양이도 호랑이에게 훈련을 받으면 호랑이 같이 행동합니다. 그러나 호랑이도 고양이 밑에서 자라면 고양이처럼 사람이 주는 먹이나 의지하게 되고 재롱이나 피우며 살려고 합니다. 왜 그럴까요? 인식이 그렇게 박혀서 그런 겁니다. 닭 우리 속에 사는 독수리는 하늘을 날 수 없지만, 인식이 바뀔 때 독수리는 우리를 박차고 나가 창공을 날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우리 신분에 대한 인식 또한 바뀌어야 합니다. 우리는 사람의 자녀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사람에게 교육을 받으면 사람이지만, 하나님께 교육을 받은 자는 예수님과 같이 되어, 예수님의 하는 일을 할 뿐 아니라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게 되는 것입니다(요14:12). 제가 그 샘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세주로 영접하고 주의 종이 된 후로 저의 인식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주님이 주신 능력 안에서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인식으로 바뀌었고, 사람의 자녀로서는 할 수 없는 것들, 즉 예수 이름으로 귀신을 쫓고 병을 고치는 일을 하며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이런 인식의 변화는 일개 농사꾼의 아들을 세계 위에 명성이 높아지는 자로 만들었습니다.
당신도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호랑이 새끼가 호랑이인 것처럼,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은 될 수 없지만 하나님이 주시는 능력으로 일하고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이 세상을 지배하고 정복하고 머리가 되는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인식이란 생각입니다. 여러분의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의 생각으로 바꿀 때 인식은 자동적으로 바뀔 것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사55:8~9). 하나님의 생각에는 한계가 없습니다. 우리가 무한한 상상력을 펼칠 수 있는 이유가 그것입니다. 우물 안에서 보는 세상과 우물 밖의 세상이 다르듯, 사람의 초점에서 보는 것과 하나님의 초점으로 보는 만물은 다른 겁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생각을 가지고 사람이 꿈꿀 수 없는 것을 꿈꾸십시오. 능력의 하나님이 이를 이루실 것입니다.
다시 말합니다. 인식의 변화가 없이 미래는 없습니다. 그러니 인생의 걸림돌이 되는 인식이 있걸랑 과감히 바꾸십시오. 당신의 미래가 밝고 아름다울 것입니다. 할렐루야!
하나님을 오해하지 말라
하나님을 알라, 힘써 알라
인식(認識)의 변화는
긍정적인 마음에서 나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