엎드려 자는 것은 나쁘다
돌이 안 된 영아는 엎드려 잘 경우 영아돌연사증후군 가능성이 높아진다. 처음부터 엎드려 잘 경우, 바로 누워 자는 경우보다 영아돌연사증후군 가능성이 15배 높아지고, 옆으로 자다가 엎드려 자는 경우엔 45배나 높아진다. 따라서 어린 아기는 반드시 바로 눕혀 재워야 한다. 그 밖에도 부모와 같은 침대에서 잘 때 또한 돌연사 위험성이 27배나 높아지기 때문에 한 침대에서 어른과 아기가 함께 자는 것은 반드시 피해야 한다. ‘1992년 미국소아청소년과학회가 아기를 엎드려 재우지 말도록 권고한 이후 영아돌연사증후군이 감소했다.’는 보고가 있다. 이 보고에서 알 수 있듯이 영아돌연사증후군의 가장 큰 원인은 아이를 엎드려 재우는 것이다. 또한 엎드려 잘 경우 척추의 정상 곡선을 해치는 결과를 초래해 목과 척추가 비뚤어져 안면 비대칭을 유발할 수 있다.
성장기에 지속적으로 엎드려 자면 턱관절 장애를 포함한 측두하악관절장애가 생기고 심할 경우 부정교합이나 턱관절 디스크의 변위에 의한 하악골 좌우 비대칭, 안면 비대칭이 생길 수 있다. 사람들에게 잘 알려진 구안와사(안면 신경마비)증상도 올 수 있다. 또한 엎드려 자면 가슴이 압박되고 코와 입 등의 호흡 통로가 눌리고 변형되며 폐활량도 적어지기 때문에 심장과 폐에도 무리가 된다. 오랫동안 이런 자세로 자면, 중심을 잡는 균형 감각에도 영향을 받는다. 그뿐 아니라 입을 벌리고 자는 구강 호흡을 하게 되어 구강 염증이나 호흡기 염증 등을 일으킬 수 있고, 잘 때에 코에서 자연스럽게 분비물이 목으로 넘어가 삼킴 작용이 이루어져야 하는데 엎드려 자면 사레가 걸리거나 기침 등을 유발해 잠이 깨게 되고 충분한 수면을 방해받아 건강에 해롭다.
엎드려 자는 자세는 목이 앞으로 꺾일 수 있어 경추 및 요추 건강에도 좋지 않다.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남성 성기능에 가장 좋은 자세는 천장을 보며 다리를 벌리고 자는 자세라고 한다. 그런데 엎드려 자면 내부 장기를 압박할 뿐만 아니라 고환 및 생식기를 압박해 건강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한다.
따라서 올바른 수면 자세란 적절한 높이(6~8cm)의 베개를 베고 바로 누워 자는 자세이다. 인생의 3분의 1은 잠으로 채워진다. 건강한 수면습관으로 건강을 지키자.
Dr. 조희경
pearl9230@naver.com
나는 누군가의 거울이다
중고등부 교사를 하면서 학생들과 생활하다보면 많은 것들을 느낍니다.
가르치는 것도 있지만, 학생들을 통해 많은 것들을 배우기도 합니다. 함께 지내다보면 깜짝 놀랄 때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학생들의 모습 속에서 나의 모습을 발견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좋은 모습도 있지만 나의 부족한 모습이 보이기도 합니다. 함께 있다 보니 나도 모르는 사이 영향력을 끼치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도록 나 자신을 돌아보고 학생들의 모습을 통해 나의 상태를 점검하곤 합니다.
총회장 목사님의 교육을 통해 배웠던 것들을 나도 모르는 사이 똑같이 말하고 행동할 때가 있습니다. 조금씩, 조금씩 총회장 목사님을 닮아가는 것을 느낍니다.
‘자식을 보면 부모를 알 수 있다’는 말처럼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을 닮아야 하고, 하나님과 같은 성품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나타내는 거울과 같은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그들은 나를 통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 알게 되기에 더더욱 말과 행동을 조심해야 합니다.
우리는 산 위의 동네, 세상의 빛과 소금입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전도를 통해 하나님을 전할 수 있지만, 가장 좋은 방법은 우리의 말과 행동, 그리고 우리의 삶을 통해 하나님을 비춰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 궁금해 하게 만드는 것이고, 그것이 가장 이상적인 전도 방법입니다.
지금도 누군가 당신의 일거수일투족에서 하나님을 보고 있습니다.
이은성
es2563@naver.com
스스로 할 수 없다면 ‘억지로’라도
‘눈물의 운동회’라는 한편의 아름다운 이야기가 있다. 어느 해 가을, 지방의 한 교도소에서 재소자 체육대회가 열렸다. 20년 이상 복역한 수인(囚人)들은 물론 모범수의 가족들까지 초청된 특별행사였다. 운동회 시작을 알리는 소리가 운동장 가득 울려 퍼졌다. 오랫동안 가족과 격리됐던 재소자들에게도, 무덤보다 더 깊은 마음의 감옥에 갇혀 살아온 가족들에게도 그날 잔치는 가슴 설레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이미 지난 며칠간 예선을 치른 구기 종목의 결승전을 시작으로 각 작업장별 각축전과 열띤 응원전이 벌어졌다. 달리기할 때도, 줄다리기를 할 때도 얼마나 열심인지 마치 초등학교 운동회를 방불케 했다. 여기저기서 응원하는 소리가 들렸다. ‘잘한다. 내 아들… 이겨라! 이겨라! 여보, 힘내요… 힘내!’ 뭐니 뭐니 해도 이날의 하이라이트는 부모님을 등에 업고 운동장을 한 바퀴 도는 효도관광 달리기 대회였다.그런데 참가자들이 하나둘 출발선에 모이면서 한껏 고조됐던 분위기가 갑자기 숙연해지기 시작했다. 푸른 수의를 입은 선수들이 그 쓸쓸한 등을 부모님 앞에 내밀었고 마침내 출발신호가 떨어졌다. 하지만 온 힘을 다해 달리는 주자는 아무도 없었다. 아들의 눈물을 훔쳐 주느라 당신 눈가의 눈물을 닦지 못하는 어머니, 아들의 축 처진 등이 안쓰러워 차마 업히지 못하는 아버지…. 교도소 운동장은 이내 울음바다로 변해 버렸다. 그것은 결코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감동의 레이스였으며, 그들이 원한 것은 1등이 아니었다. 그들은 그렇게 해서 부모님과 함께 있는 시간을 단 1초라도 연장해보고 싶었던 것이다.
이는 교도소의 교도관들이 만들어놓은 하나의 작품이었다. 이들이 언제 부모님을 등에 업고 뛰어 보았겠는가? 이름이 운동회지 수십 년을 감옥에서 보낸 이들에게 얼마큼의 동심이 남아 있었겠는가? 자신의 등을 내미는 것도, 그 등에 업히는 것도 참으로 쑥스러운 일이었지만 그 등을 돌려대는 순간, 등에 업히는 순간 감격이 만들어졌던 것이다.
이 드라마는 자발적이라기보다는 진행자의 의도에 따라 만들어진 것이다. 가족, 그리고 이웃과의 화목을 위해 스스로 할 수 없다면 ‘억지로’라도 등(손)을 내밀라고.
임택함 목사
목사님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
성인(聖人)의 척도는 천진상을 가진다. 어린아이와 같다. 또한 상대방과 공감하는 정도가 성인을 가늠하는 척도이다. 이 말들은 내가 공감하는 말들이다. 이번 기도원 집회 때 설교 도중 설레임 아이스크림을 나눠주시고 당신도 강대상 밑 계단에 걸터앉아 설레임을 쪽쪽 맛있게 빨아 드시며, ‘세상에 나 같은 목사 없을 거야’ 하시면서 껄껄, 킥킥 웃으신다. 천진상의 최고 경지다. 그럴 겁니다. 없을 겁니다. 끄덕였다. 기도원 셋째 주 첫날 밤, 목사님 설교를 처음 들으신 타교회 권사님이 내게 말했다. “내 65살 평생 남자한테 반한 건 처음입니다.” 그리고 자기 건물의 2층, 3층을 지교회를 위해 내놓겠다며 목사님께 상담을 청했다.
다음날 상담을 위해 사택에 가니 수많은 사람들이 줄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상담을 시작하시며 아예 사택 문을 열어놓으라 지시하셨다. 사람들이 계속 들락거리니 무질서했다. 그래서 내가 안내역을 맡아 질서를 유지토록 했다. 문이 열려있으니 지나가던 사람들이 구경 겸 들어왔다가 상담실로 들어오니 도저히 모두 상담할 수 없을 것 같아서 “목사님, 지금 문으로 들어오는 사람들은 구경하다 들어오니 갈급한 사람이 아닌 것 같습니다. 사택 문을 잠그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건의하니 “놔둬라. 다 오게 해라. 밖에 플라스틱 의자 내놓아 앉아서 기다리게 해라. 4시에는 기도해야 하니 그때까지 상담하겠다.”고 말씀하셨다. 계속 밀려오는 수많은 사람과 상담하시면서 때로는 장애인의 모습으로 때론 박사의 모습으로 완전히 공감하시는 모습이 바로 성인의 모습 아닌가.
얼마나 많은 사람이 기다리고 있는지 모른 채 오로지 상담에 몰두하셨다. 가지 않고 자꾸 문제를 상담하면 다 들어주셨다. 모든 말을 다 들어주시고 마지막 한명 상담 마치신 후 벽시계를 보니 3시 59분이다. 이런 놀라울 때가 있나? 성령이 하시지 않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세상만사를 뛰어넘은 천진상을 갖추시고 일백프로 성도와 공감하시며 성령이 함께 하시는 이, 곧 성인(聖人) 아닌가? 성 도마. 성 베드로. 난 누가 뭐래도 목사님 이름 앞에 꼭 붙여주고 싶다. 성(聖) 이초석. 같이 갈 수 있으니 이 어찌 은혜 아닌가. 할렐루야!
이광주 전도사
leekjlkj@naver.com
지혜를 먹으라
‘쉰들러 리스트’ 라는 영화에 이런 장면이 나옵니다. 잔인하기 그지없는 독일군 장교가 아침에 잠에서 깨어나 기지개를 켜면서 창밖을 내다보고 있을 때, 저 멀리 아래쪽에 유대인 여자 한 사람이 짐을 운반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독일군 장교는 갑자기 장총을 들고 나와 이유 없이 그 여인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습니다. 그저 심심풀이로 한 사람의 무고한 생명을 빼앗은 것입니다.
이렇게 참혹하기 그지없는 포로수용소에 어느 날 작은 사건이 하나 발생했습니다. 독일군이 키우고 있는 닭 한 마리가 갑자기 사라진 것입니다. 독일군은 범인을 색출하겠다며 수용소 마당에 유대인들을 모아놓고는 “누구야? 빨리나와. 안 그러면 범인이 나올 때까지 한 사람씩 차례로 쏴 죽이겠다.” 라고 했습니다. 모두 공포에 질려 고개만 숙이고 있자 독일군은 “아무도 못 봤단 말이지?” 하면서 한 사람을 쏴 죽였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사람에게 총을 겨누려 할 때 한 어린 소년이 자기가 알고 있다며 나섰습니다. 독일군은 “누구야? 네가 훔쳤어?” 라고 호통을 치자 단호하게 “아닙니다.”, “그럼 누가 훔쳤는지 네가 보았느냐?”고 묻자 “예, 알고 있습니다.”, “그게 누구야?” 소년은 떨리는 손으로 가리키면서 “바로 저 사람입니다.” 그 소년이 가리킨 사람은 이미 총에 맞아 죽은 사람이었습니다. 이 얼마나 지혜로운 답변입니까? ‘지혜는 지혜 얻은 자의 생명을 보존한다’(전8:12)고 합니다. 이 어린 소년의 지혜로운 말 한마디가 그 자리에 있는 무수한 유대인을 살려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참된 지혜를 받아 나도 살고 남도 살리는 우리 모두가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내 아들아 꿀을 먹으라 이것이 좋으니라 송이 꿀을 먹으라 이것이 네 입에 다니라 지혜가 네 영혼에 이와 같은 줄을 알라”(잠24:13~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