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앙을 막으려면 정보를 공유하라(행19:1~20)
전쟁에 이기려면 정보를 공유(共有)해야 합니다. 늘 북한의 위협을 받고 있는 상황에 한미(韓美)간 공조가 절실한 까닭도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영적 전쟁에서도 그렇습니다. 목사 혼자 정보를 가지고 있으면 악한 마귀와 바다의 모래알처럼 많은 귀신들을 대항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오셔서 제자 삼는 일을 가장 먼저 하셨고, 그의 제자들도 사람들을 불러 모아 정보를 공유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는 자들이 병들고 가난하고 흉악의 결박에 사로잡혀 있음은 정보를 공유하지 못한 연고입니다. 그 원인은 내 백성들이 지식이 없음이요, 이는 제사장이 지식을 버렸기 때문입니다(호4:6). 목사들이 하나님에 대한 정보를 성도들과 공유하는 것이 아니라 문화적인 지식이나 나열하고, 교양이나 쌓게 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사태가 난 것입니다. 다른 종교에는 적이 없습니다만, 기독교만은 악랄한 적이 있습니다. 바로 악한 영과 그의 추종자 귀신들입니다. 우리는 늘 그것들과 전쟁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목사들이 적에 대한 정보와 적을 진멸할 수 있는 무기를 지급하지 않고 지식의 말이나 신학적인 말로 성도들을 가르치고 있으니 전쟁에서 백전백패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귀신들이 하나님의 자녀들을 맘대로 가지고 노는 것입니다.
저는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최고의 정보를 나누고, 최고의 무기를 지급해왔습니다. 이 무기는 북한이 엊그제 쏘아올린 미사일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만큼 성능이 좋은 것입니다. 바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보내주신 성령을 소유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성령보다 좋은 것은 없습니다. 누가복음 11장에 “너희 중에 아비된 자 누가 아들이 생선을 달라 하면 생선 대신에 뱀을 주며 알을 달라 하면 전갈을 주겠느냐 너희가 악할찌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눅11:11~13)고 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은 언제나 성령을 공유하기 원하신다는 뜻이고, 마태복음 7장에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마7:11)고 하심으로 성령이 천상천하에 가장 좋은 것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도 우리가 성령에 대한 정보를 알기를 원한다고 했습니다(고전12:1).
신용사회에서 신용카드 하나면 무엇이든 가능하듯, 성령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는 성령을 받으면 다 받은 것입니다. 성령을 받으면 다 가진 것이요, 다 얻은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영인 성령을 소유한다는 것은 그리스도를 소유하는 것, 곧 하나님이 우리 안에 와 계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롬8:9~12). 성령을 소유하면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알게 하시니 우리가 죄를 깨달아 회개케 하시며(요16:8), 우리 장래의 일을 알게 하시고(요16:13), 우리를 진리의 영으로 가르치시니 가장 좋은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더욱이 성령은 하나님의 깊은 속도 알게 하시니 무엇을 더 바라겠습니까(고전2:10).
또한 성령이 임하시면 우리가 권능을 받게 되는데(행1:8), 그러면 우리가 능치 못할 일이 없게 되고
(막9:23), 우리가 예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음을 입으며(막16:17~18), 나아가 예수님이 하신 일을 우리도 하고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게 됩니다(요14:12). 왜 성령이 가장 좋은 것인지, 왜 꼭 성령을 받아야 하는지 아시겠습니까?
예수님도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 요단강에서 요한에게 물세례를 받으시자 성령이 임했습니다(마3:16~17). 그 후에 예수께서는 곧 성령에 이끌려 광야로 나가 40주야를 금식하시고 성령의 능력으로 마귀를 정복하신 것입니다. 이어진 예수님의 3년 반의 사역은 성령에 의한 것입니다. 성령을 통해서 말씀하시고, 기도하시고, 가르치시고, 병을 고치시고, 죽은 자를 살리신 역사를 일으키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셨다 다시 사신 후에 40일 동안 많은 증거로 친히 사심을 증거하시고 하늘로 올라가시기 전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 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행1:4). 왜요? 이는 성령이 강림하실 것을 약속하심이요, 그 성령이 임해야 권능을 받고 땅 끝까지 증인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행1:8). 그래서 120문도가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성령을 기다리다 체험하고 나가 복음을 전하고, 기사와 표적을 행했던 것입니다(행2). 무기 없이 전쟁에 나갈 수 없고, 연장이 없이 능률적으로 일할 수 없기에 그러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 모인 자들이 성령을 받을 때 가만 앉아서 기다린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열심을 다해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성령의 충만함은 기도로만 가능합니다.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막9:29)고 하신 것은 성령의 능력은 기도해야 나타난다는 말씀입니다. 총만 가지면 뭐 합니까? 총알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지갑이 명품이면 뭐합니까? 돈이 있어야지요. 목사면 뭐하고, 장로면 뭐한답니까? 성령의 능력이 있어야지요. 하나님 나라는 말에 있는 것이 아니라 능력에 있는 겁니다(고전4:20).
왜 성령을 상실하는지 압니까? 기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핸드폰을 썼으면 배터리를 충전해야 쓸 수 있는데 귀찮다고 충전하지 않으니 정작 전화해야 할 때 못 쓰듯, 기도하지 않기 때문에 귀신의 밥이 되어 가난과 병과 어둠 속에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늘 기도가 끝난 자에게는 기대할 것이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기도를 습관화하신 것은 배터리가 떨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런데 목사가 바쁘다고 기도하지 않습니다. 장로가, 조장, 구역장이 기도하지 않습니다. 100% 귀신의 밥이 되고 말지요. 불이 나가면 어두움이 들어오는 것은 당연한 것이니까요.
성경에 쉬지 말라고 한 것은 딱 하나, 기도입니다(살전5:17). 에베소서 6장 18절에는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성령 안에서 기도하는 것은 바로 방언기도입니다. 방언기도는 성령이 임재하심의 외적 증거요, 하나님과의 직통전화입니다. 방언기도는 사람에게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하는 것으로 이는 알아듣는 자가 없고 그 영으로 비밀을 말하는 것이기에 마귀의 방해공작을 받지 않습니다(고전14:2). 제 직통전화를 아는 사람은 급하면 저에게 바로 전화를 해서 도움을 받고, 기도도 받습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께 직통전화를 하지 않습니까?
예수님이 받으셨던 그 성령, 바울이 받아 능력을 행했던 그 성령, 제가 오늘날 세계를 다니며 능력을 행함으로 복음을 전파할 수 있게 하는 그 성령을 여러분도 사모해야 합니다. 분명히 하나님은 성령을 사모하고 회개하는 모든 자들에게 성령을 부어주실 것입니다. 또한 받은 성령을 소멸하지 말고(살전5:19), 늘 충만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성령 충만하다면 여러분은 여러분이 사는 것이 아니라 바로 여러분 속에 계신 하나님이 사는 것이 되어 불가능이 없고, 부족함이 없게 됩니다.
바빠서 기도하지 못합니까? 공부해야 해서 못합니까? 곧 배터리가 나가겠군요. 다시 기도의 불을 붙여야 성령이 떠나지 않습니다. 성령이 떠나심은 나뭇가지가 나무에서 떨어짐과 같아 결국 불구덩이에서 불쏘시개가 될 것입니다. 지옥으로 떨어진다는 것입니다. 천국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가는 곳이기 때문입니다(요3:5).
여러분, 술 취하지 말고, 세상 명예에 취하지 말고, 쾌락에 취하지 말고 오직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십시오(엡6:18). 성령으로 시작해서 육체로 마치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마십시오(갈3:3). 그러기 위해서는 기도를 습관화하십시오. 이것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최고의 정보입니다. 할렐루야!
무기 없이 승리할 수 없고
연장 없이 일할 수 없다
기름 없는 차가 무슨 소용이며
배터리 없는 핸드폰을 무엇하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