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세대
노벨은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하여 유럽의 거부가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노벨은 무심코 신문을 읽다 깜짝 놀랐다. 자신의 사망 기사가 프랑스의 한 신문에 실렸기 때문이다. 사실, 그의 형 루드비히 노벨이 죽은 것을 신문사가 잘못 보도했던 것인데, 이 사망기사도 당황스러운 것이었지만 노벨을 더 당혹스럽게 했던 것은 그 기사의 헤드라인이었다. 그 기사 제목인즉슨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한 죽음의 상인 노벨 사망하다.’
노벨은 사람들이 자기를 ‘죽음의 상인’이라 부르는데 큰 충격을 받았다. 이후 노벨은 자신의 삶에 대해서 심각하게 고민했고, 무언가 다음세대에 보람 있는 일을 하고자 자신이 모은 전 재산으로 인류의 발전을 위해 혁혁한 공헌을 세운 각 분야의 과학자들을 시상하는 노벨상을 만들었다. 오늘날 노벨을 떠올릴 때 그 누구도 그를 전쟁상인으로 기억하지 않는다. 노벨은 다음세대를 위해 분명 큰 몫을 한 것이다. 사망 오보 기사가 나간 8년 후인 1896년 노벨은 정말로 죽었다. 그때 노벨의 사망기사 제목은 이렇게 기록되었다. ‘세계 평화를 위해 살다간 믿음의 사람 노벨 사망하다.’
성경에 나오는 믿음의 선친들을 보면 아브라함의 다음세대는 이삭이, 다윗은 솔로몬이, 모세는 여호수아가, 엘리야 다음은 엘리사가, 사도 바울 다음엔 디모데가 있었다. 그런데 여호수아의 뒤를 이은 사람은 누구인가? 여호수아는 분명 최선을 다해서 살았지만 사람을 키우지 못했다. 여호수아 다음의 세대가 어떤 시대인가? 모든 사람들이 자기 소견대로 살아가는 지도자가 없는 사사시대였다. 사사기 2장 8~10절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여호와의 종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백십 세에 죽으매…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일도 알지 못하였더라.” 믿음이 계승되지 않으면 우리의 다음 세대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행하신 일을 알지 못하며, 하나님에 대해서도 알지 못하게 된다. 그래서 우리 교단은 매년 청소년수련회라는 집중교육을 통해 다음세대를 준비하기 위한 믿음의 계승을 지속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배설하신 수련회에 모두 참석하여 믿음을 계승하는 젊은이들이 되길 소원한다.
이정금 전도사
jungkm@nate.com
나는 하나님이 만드셨지!
어렸을 때 운동장 한쪽 스탠드에 앉아 깊은 생각에 빠지곤 하였다. 사람들은 왜 나와 따로 존재하는가? 내 밖에 존재하는 이 만물들은 뭔가? 언어에 익숙해졌을 때 만들어낸 표현이 ‘나는 왜 나일까?’였다.
사업할 때, 술이 취해 집에 돌아와 침대에 걸쳐 누었는데 여섯 살 막내딸이 배 위에 올라타더니 ‘아빠, 나는 왜 나일까?’ 묻기에 정신이 번쩍 들어 대답해주느라 애쓴 기억이 있다.
우리 인간은 자기 정체성에 관해 꾸준히 탐구하는 종교성이 있다.
어렸을 적 내가 제일 듣기 싫어하는 말이 ‘누가 나를 낳았다.’ 하는 말이었다. 동네 아주머니들이 재밌어서 “광주야, 니 엄마가 너 낳을 때….” 어쩌고 하면 “누가 나를 낳아?” 하고 소리 질렀다.
“그럼 누가 낳았니?” 하면 “나는 내가 낳았지.” 하고 소리 질렀다.
어렸을 때엔 영이 맑아서 진실을 말하기도 한다.
나는 내 애들을 내 소유, 내 자식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다. 하나님이 우리 부부를 통해서 생명을 보내신 것이기 때문이다. 다 각자 하나님의 예정 안에 태어난 것이다. 내가 자식 낳았다고 하지 마라. 하나님이 낳게 하신 것이다.
과학이 아무리 발전한들 생명체를 만들 수 있는가. 동물 복제 등 생명공학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이 만들어 놓은 진리에 숟가락 하나 얹어놓은 것뿐이다.
‘나는 누구인가?’ 하는 나의 정체성, 그것은 오직 내가 하나님의 피조물임을 인식할 때 바로 선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요, 그 분으로 인해 사는 자임을 깨닫는다면 삶은 물론이고 신앙도 정립될 것이다.
이광주 전도사
leekjlkj@naver.com
수련회를 기대하며
바야흐로 수련회의 계절입니다. 유아유치부부터 대학청년부까지 여름수련회 준비에 돌입하여 바삐 움직이는 모습을 보면, 올해도 변함없이 하나님이 부어주실 은혜에 기대가 앞섭니다.
저는 9살 유초등부 수련회를 시작으로 결혼 전 29살까지 20년간을 연합수련회에 참석했고, 지금은 아이와 함께 유치부 성경학교에 참석하고 있습니다. 어린 시절에는 친구와 함께 라서 수련회가 좋았고, 웃고 뛰느라 정신없었지만, 매 수련회마다 항상 나를 붙잡고 울며 기도해주는 전도사님과 선생님, 전심으로 안수하는 목사님의 모습이 가슴에 사무쳤습니다. 내가 무엇이기에 날 위해 울며 기도하고 수련회로 인도하는지 그때는 잘 몰랐었습니다. 하지만 스무 살이 넘어 대학부에서 신앙생활을 하고 친구를 위해 울며 기도하고 있는 제 모습을 문득 돌아보며, 어린 시절 수련회에서 나를 위해 간절히 기도해주었던 분들이 있었기에 내가 이렇게 기도할 수 있음을 고백합니다. 스무 살이 넘어 참석한 수련회는 매 회가 은혜의 연속이었습니다. 수련회에서 성령을 사모하여 눈물의 기도를 나눴던 친구들의 입에서 방언이 터지고, 아르바이트나 직장 때문에 참석이 여의치 않았던 친구들과 기도로 환경을 변화시켜 수련회에 참석하고, 세미나를 통해 회심하고 삶의 목표를 세워 결단하는 내 자신과 후배들을 보며 참으로 많이 울고 웃었습니다.
28살 여름에는 수련회를 앞두고 직장 내 인턴에서 일반직으로 전환하는 시험이 있었는데, 신경이 쓰여 수련회에 집중할 수 없어서 하나님께 결과를 맡기고 수련회 준비에 기도로 매진했더니 동료를 통해 합격소식을 전해 들었던 일도 있었습니다. 매해 여름을 수련회에 쏟았지만 돌아보면 그 어느 것 하나 후회되는 시간이 없었고, 최선을 다해 참석했다 여겼음에도 여전히 그립습니다.
수련회는 하나님이 은혜를 부어주시려 작정하신 자리입니다. 그리고 젊음에게 허락된 특권의 자리이기도 합니다. 이를 축복의 자리로 알고 사모하며 부르심에 순종한다면 참석한 교단 젊은이들의 영적 회복과 삶의 전환점으로 역사할 것입니다.
김고은
khjc77@hanmail.net
미국 뉴욕 금융계의 큰손인 독실한 크리스천이 군복무중인 병사들에게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간절한 소원이 있었지만 군대 규정상 금지되어 있었습니다. 어느 날 기도 중에 아이디어를 얻어서 광고 판촉물을 제작하는 공장으로 달려갔습니다. 병사들에게 나누어줄 지름이 3인치 정도 되는 거울의 뒷면에 요한복음 3장 16절의 말씀을 새겨 넣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는 구절 밑에 이러한 문구를 덧붙였습니다. “하나님의 그 놀라운 사랑을 지금 누가 받고 있는지 알고 싶은 사람은 이 뒷면을 보십시오!”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많은 병사들이 감동을 받아 예수님을 영접하고 회심했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를 위하여 이 땅에 오셔서 피와 물을 다 쏟으며 죽기까지 고난을 받았습니까?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나를 위하여 희생하신 것입니다. 이로써 하나님은 나를 향한 놀랍고도 위대한 사랑을 확증하신 것입니다. 세상에는 사랑하는 일에도 조건과 자격을 따지지만 하나님은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모든 죄를 사하시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만왕의 왕, 만주의 주,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주관하시는 하나님이 당신의 아버지가 되셔서 세상 끝날 까지 당신과 함께 하실 것입니다.
상화평 목사
sanghwapyung@hanmail.net
주님의 인도하심 따라 산다는 것
아주 오래전, 거의 이십 수년전 눈물의 기도로 주님께서 허락해주신 사업장이 지금의 학원이다. 지난 시간 동안 사업장에 찾아온 위기는 한두 번이 아니었다.
‘위기의 순간마다 이제는 끝이구나.’ 라는 절망감에 빠졌었고, 이제는 무엇으로 남은 삶을 살아야 할지 막막할 때가 많았다. 그래서 여기저기 다른 직업을 찾아서 다녀도 보고 다른 사업을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을 구체적으로 해보기도 했다. 그러나 주님께서 주신 기업은 쉽게 허물어지지 않았다. 어렵고 힘들 때마다 눈물 골짜기를 헤매고 다니며 주님의 손을 놓지 않으려고 애썼다. 학원가의 많은 사람들이 정부의 사교육 억제 정책과 인구 절벽의 초기 현상으로 인한 원생 수 감소에 결국 업종을 변경하며 학원가를 떠났다. 그러나 나는 사업을 시작했을 당시 목사님이 읽어주셨던 시편 91편의 말씀을 날마다 입에 달고 살았다.
2년 전, 고등학교 3학년을 졸업시킨 후에는 학원생 2명이 학원에 남게 되었다. ‘그래, 이제는 정리하자’ 생각하고 마무리를 하려는데, 상가의 관리인이 “원장님은 마음만 다시 먹으면 얼마든지 새로 시작할 수 있을 텐데요.” 라고 한마디 던지고 지나갔다. 문득, 주님께서 허락하셨던 나의 기업을 그렇게 허물어버릴 수는 없을 것 같았다.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간구했던 20일 작정 기도 후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다. 지금은 20여 년 학원 운영 이후 최고의 시절을 보내고 있다. 아침마다 기도 전에 부르는 복음송이 있다. ‘주님여, 이 손을 꼭 잡고 가소서. 폭풍우 흑암 속 헤치사 손잡고 나를 인도하소서.’ 라는 그 복음송을 기도처럼 읊조렸다. 그런 읊조림마저도 낱낱이 듣고 계셨던 주님이신지라,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했던 놀라운 길로 나를 예비하셨다.
얼마 전, 선교사 친구 부부 덕분에 쿠알라룸푸르를 다녀왔다. 주일날, 친구 부부는 멀리 원주민 마을로 선교활동을 하러 떠나며 근처 교회를 알려주었다. 그곳에 갔다가 현지에서 오랫동안 교육 사업을 하고 있는 분을 만나게 되었다. 늘 우리나라 영어교육에 문제점이 있다고 생각했던 나에게 새로운 기회가 찾아왔고, 그분과 여러 차례 오랫동안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말레이시아는 평소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교육과 경제적인 수준이 상당히 앞선 나라였다. 그 좋은 환경에서 한국에서는 평소 접하기 힘든 라이브 영어를 학생들이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6개월 여 간의 준비 끝에 이번 8월 초에 10명의 학생들이 쿠알라룸프르로 단기 어학연수를 떠난다.
주님의 인도하심 따라 살아간다는 것은 때로는 암흑 속에서 헤매는 것 같기도 하고 때로는 길이 없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주님께서는 나의 두 손을 잡으시고 한국에서의 교육 사업 이후 나에게 또 다른 길을 인도하고 예비하고 계셨음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내 생각과 주님의 생각은 다를 때가 더러 있다는 것을 이제는 확실히 알았다. 내 생각을 접어두고 전심을 다하여 기도로 주님을 찾으면 주님께서는 예비된 축복의 길로 인도해주신다. 오늘도 주님의 손을 잡고 천성까지 따라가려고 한다.
주님, 모든 영광 주님께 드립니다. 할렐루야!
오자유
lovelyactor@naver.com
주고 또 주기(Give&Give)
이스라엘에는 갈릴리와 사해 두 개의 큰 호수가 있는데, 두 호수는 똑같이 요단강을 통해 물을 공급받습니다. 갈릴리호수는 요단강의 물을 부지런히 받아 사해로 흘려보내줍니다. 그러기위해 항상 물이 움직여 흐르니 갈릴리호수는 생명력이 넘칩니다. 맑은 호수에는 고기 잡는 사람들로 북적대며 고기도 살고 사람도 살리니 이는 진정 살아있는 호수입니다.
그에 비해 사해는 물고기도 살 수 없는 이름 그대로 ‘사해(死海)’, 죽은 호수입니다. 강 주위에는 지독히 짠 해풍과 염분 때문에 아무런 식물도 살지 못 합니다. 왜 그럴까요? 사해는 물을 받기만하고 내보내지 않아 고인물이 계속 증발하여 염분량이 늘어나니 생물이 살 수 없는 죽은 호수가 된 것입니다. 받기만 하고 나누지 못하니 결국 죽음의 바다가 되어버린 것이지요.
신앙을 가진 사람으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느냐?’는 질문에 대한 최고의 답은 뭘까 생각해 봅니다. 나를 나보다 더 잘 아시는 주님을 믿고 모든 것에 감사하는 삶, 영적 성장과 성숙을 위해 훈련하는 삶, 그리고 받은 은혜를 베푸는 삶, 이 셋 중에 하나만을 선택해야한다면, 나는 ‘Grace’, 즉 은혜를 선택할 것입니다. 왜냐면 감사하는 삶과 영적 훈련을 하는 삶은 나를 위한 것이지만 그렇게 받은 은혜로 내가 무엇을 하느냐가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서로 나누되 풍성히 나눌 때 우리에겐 기쁨의 강물이 넘쳐흐릅니다.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눅6:38). 이 말씀은 인간 생존의 법칙과 영생의 법칙을 한 마디로 요약한 구절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법칙은 물질을 주면 물질을 안겨주시고, 사랑을 주면 사랑을 안겨주시며, 기쁨을 주면 몇 갑절의 기쁨을 우리에게 안겨주는 법입니다. 그러므로 은혜도, 사랑도, 능력도 항상 흘러 넘쳐야지 받기만하고 내보내지 않으면 사해가 됩니다. 주님의 은혜는 주고받는 Give&Take가 아니라 아낌없이 주고 또 주는 Give&Give니까요!
김정옥 전도사
jcc0115@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