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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1호 목차 › 붕우칼럼

고집은 불통이다

901호 · 2017-06-03

한 고을에 무식하며 고집 센 사람과 배운 사람 사이에 다툼이 일어났다. 무식하고 고집 센 사람이 9×9=99라 주장하고, 배운 사람은 9×9=81이라며 다툼이 일어난 것이다. 이 둘은 원님을 찾아가 시비를 가려줄 것을 청했다. 원님이 사연을 다 듣고 난 후에 고집 센 사람에게 “정말 9×9=99란 말이냐?” 라고 물었다. 그 사람은 씩씩 거리며 “당연하죠.” 라고 답했다. 그러자 원님은 다음과 같이 선고했다. “9×9=99라 말한 자는 풀어주고, 9×9=81이라 말한 자는 곤장 열 대를 쳐라.”

졸지에 배운 사람은 열 대의 곤장을 맞았다. 당연히 억울했지요. 그래서 원님에게 억울함을 호소하자 원님 왈, “9×9=99라는 무식하고 고집 센 놈이랑 싸운 어리석음을 알렸다.”

고집은 불통(不通)이다. 안 통한다는 것이다. 똥고집, 옹고집, 황소고집…. 안 통하는 사람들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래서 나는 고집 센 사람과의 싸움은 애당초 하지 않는 게 좋다고 늘 말한다. 그건 계란으로 바위치기인지라 그것이야 말로 에너지 낭비요, 시간낭비요, 돈 낭비가 된다.

나는 고집이 아닌 소신 있는 사람이 좋다. 고집과 소신은 자기 뜻을 주장하는 것에는 유사한 듯하나 확실히 다르다. 고집은 자기의 뜻이나 주장에 집착하는 것이고, 소신은 확실한 믿음에 근거하며, 생각이 미래를 향해 열려있는 것이다. 그래서 고집쟁이는 자기주장이 틀려도 끝까지 우기지만, 소신 있는 사람은 완고하다가도 자기의 주장이 틀렸다는 것이 확실해지면 뜻을 굽히는 용기를 가진다.

고집을 버리고 소신을 가져라. 이 사회는 소신 있는 지도자를 원한다. 진리는 다수결에 의한 것이 아닐 때가 많기 때문이다. 그럴 때 사회 가치관이 바로 정립되고, 정의가 구현될 것이다.

“지혜로운 자와 미련한 자가 다투면 지혜로운 자가 노하든지 웃든지 그 다툼이 그침이 없느니라”(잠2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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