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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아보자!

897호 · 2017-05-06

요즘 공사 차 기도원에 내려가 지낸다.

2주 전에 기도원 성전 위에 있는 뒷동산에 닭 수십 마리를 들여놓았다. 이를 본 어느 타교단 목사가 기러기 세 마리를 사들고 들어왔다. 나에게 은혜를 갚는다면서.

그런데 이 기러기가 날 줄을 모른다. 그저 뒤뚱뒤뚱 걸어 다닐 뿐이다. 본시 기러기는 따뜻한 곳과 먹이를 찾아 4만km를 날 정도로 비행실력이 대단하다. 어린 시절에 기러기가 V자를 그리며 창공을 나는 걸 자주 봤다. 그런데 기도원에 들어온 기러기는 아예 날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왜 그럴까? 가둬길러서 그렇다. 철조망 안에 가둬 길러서 자신이 날 수 있는 존재라는 것조차 모르고, 닭과 똑같이 주는 먹이나 쪼며 비대한 몸으로 사는 것이다.

나는 이 기러기를 보고 생각이 깊었다. 혹시 이것이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는 크리스천들의 모습은 아닐까? 우리 안에 있는 본성이 이 기러기처럼 사장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마귀의 자녀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는데도 여전히 우리는 마귀의 손에 길들여져 우리에게 잠재된 가능성조차 모르고 사는 것은 아닐까? 기러기를 풀어놔도 날아가지 못하는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자유가 왔음에도 스스로 착고에 차인 모습으로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예수 그리스도가 “넌 할 수 있어, 너에겐 불가능이 없어.” 라고 외치지만, 팔자와 주제라는 울타리를 뛰어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래서 세상 사람들과 동일한 모습으로 뒤뚱거리며 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울타리 안의 기러기 같은 생활에서 탈피하는 길은 기러기가 자신의 존재를 제대로 아는 것이듯, 우리도 우리의 신분을 알아야 세상 사람들과 다른 삶을 살 수 있다.

당신은 누구인가? 전지전능하신, 무소부재하신, 만물을 창조하시고 주관하시는,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을 하시는 하나님의 자녀다. 그러니 이제 하늘을 훨훨 날아봐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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