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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찬 속의 아첨을 조심하라

890호 · 2017-03-18

지난 10일 헌법재판소에서 대통령 탄핵이 결정되었습니다. 그동안 이 일에 관련해 의견이 분분하여 일부는 촛불집회를 하고, 일부는 태극기집회를 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이제 알아야 할 것은 우리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인정하고, 그동안 분분했던 생각들을 놓고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촛불집회든 태극기집회든 다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방법의 차이일 뿐 누가 틀리고 누가 맞고 하는 문제가 아닙니다. 생각이 다를 뿐입니다. 물론 그 안에 악한 세력도 도사리고 있음은 분명합니다. 이 틈을 타서 국론을 분열시키려는 마귀의 궤계가 분명히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더욱 하나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 이번 일로 갈등이 있고 심지어 싸움도 일어났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분명한 것은 교회는 세상과 구분된 곳입니다. 이념이나 사상이 신앙보다 앞서면 절대 안 됩니다.

하나님도 우리에게 자유의지를 주셔서 각기 생각이 다름을 인정하셨습니다. 그럼요, 다 생각이 같을 수는 없습니다. 서너 명 되는 가족 간의 생각도 다를진대 국민 전체가 생각이 같을 수는 없지요. 그러니 내 생각과 다르다고 해서 정죄하고, 싸우고 분열되면 안 됩니다. 헌법재판소가 가르마를 타주지 않았습니까? 이런 일이 아예 없었더라면 좋았겠지만, 어차피 일은 벌어졌고, 또한 마무리도 되었으니 이제 우리는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촛불도 태극기도 아닌 대한민국의 국민으로 손을 잡아야 합니다. 지금 우리나라를 보세요. 사드 문제로 중국과의 관계도 소원해졌고, 이로 인해 손해가 막대하며, 일본과도 위안부 문제와 독도 문제로 칼날이 선 상황입니다. 김정은은 하루가 멀다 하고 미사일을 쏴대고 있는데, 우리나라 안에서 싸우고 있으면 되겠습니까? 성경은 말씀합니다. “스스로 분쟁하는 나라마다 황폐하여질 것이요 스스로 분쟁하는 동네나 집마다 서지 못하리라”(마12:25), “다투는 시작은 방축에서 물이 새는 것 같은즉 싸움이 일어나기 전에 시비를 그칠 것이니라”(잠17:14).

저는 이 나라를 안정시키는 방법은 기도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기도만이 이 나라의 안정제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이여! 지금은 나라를 위해 기도해야 할 때입니다. 이 나라가 바로 설 수 있도록, 또한 앞으로 다가온 대선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느헤미야와 요셉 같은 현명한 지도자가 설 수 있도록, 이 대한민국이라는 항공모함을 잘 이끌 수 있는 자가 통치자가 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역사의 수레바퀴를 굴리시는 하나님이 이 나라를 긍휼히 여기시어 이 나라에 한량없는 자비를 베푸시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이 나라에 관여하시고, 일하시게 하는 방법은 기도밖에는 없습니다. 그래서 제가 예배 때마다 국가와 민족을 위해 기도시키는 것이고, 5월 3일에도 서울시청광장에서 국가와 민족을 위한 기도성회를 개최하는 것입니다.

저는 오늘 여러분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공인으로서의 삶을 사는 사람들, 크거나 작은 일에든 공적인 일에 종사하는 사람이 롱런하는 방법은 모든 일을 공적으로 시작해서 공적으로 끝내는 것입니다. 공과 사를 구분하는 것입니다. 많은 자들이 사적인 감정이나 사적인 일에 치우쳐 그것이 결국 올무가 되고 마는 것을 자주 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기 전, 베드로를 포함한 제자들에게 자신의 사명에 관해 설명하는 대목이 마태복음 16장에 나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던 베드로는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에게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하고 눈물을 흘리며 예수님께 말합니다. 그러자 예수님이 뭐라고 하셨습니까?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마16:23) 라고 하셨습니다. 솔직히 스승이 곧 흉악범들이나 지는 십자가를 지고 죽는다고 하는데, “그러세요?” 하고 가만히 있을 자가 누가 있겠습니까? “말도 안 됩니다. 제가 그걸 가만 보고 있겠습니까?” 라고 해야 옳은 것 아닙니까? 그러면 적어도 그런 제자를 향해 “그래, 내가 네 맘을 잘 안다. 네가 나를 많이 사랑하는구나.” 하고 위로의 말 정도는 하셔도 무방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단호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제자에게 ‘사단’이라 할 만큼 말입니다.

이래야 합니다. 공적인 사람은 예수님처럼 공과 사에 확실한 선을 그어야 합니다. 성령으로 시작해서 육체로 마치면 하나님께 버림받듯이 공적으로 시작해서 사적으로 끝나면 버림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공인이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칭찬 속에는 아첨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칭찬이란 자고로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하는 것인데, 역으로 윗사람에게 하는 것은 상당부분 아부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에 춤추다보면 정도를 벗어나게 되고, 눈이 가려져 안 보이고, 귀가 막혀 안 들리게 됨으로 잘못된 일을 저지르게 됩니다. 성경말씀입니다. “이웃에게 아첨하는 것은 그의 발 앞에 그물을 치는 것이니라”(잠29:5).

양약고구(良藥苦口)라고 했습니다. 칭찬은 달콤하지요, 허나 몸이 상합니다. 씁쓸하지만 자신을 향해 충언해주고, 진언해주는 사람을 곁에 둬야 합니다. 아람과 이스라엘이 길르앗라못을 놓고 싸움을 하려고 할 때입니다. 시드기야를 비롯한 400명의 예언자들이 이스라엘 왕 아합에게 전쟁을 하면 반드시 이길 것이라고 예언합니다. 아부를 떤 겁니다. 그러나 선지자 미가야만은 전쟁에 나가면 왕은 죽임을 당할 것이니 나가지 말라고 합니다. 충고요 진언이었지만, 아합은 달콤한 쪽을 택했습니다. 그래서 나갔다가 전쟁터에서 죽었습니다(왕상 22장).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도 같은 경우입니다. 그는 백성들이 그의 부친 솔로몬이 행한 무거운 세금과 강제 노역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자 솔로몬 생전에 그 앞에 섰던 노인들이 충언하기를 “왕이 만일 오늘날 이 백성의 종이 되어 저희를 섬기고 좋은 말로 대답하여 이르시면 저희가 영영히 왕의 종이 되리이다.” 라고 하였으나 “왕이 노인의 교도하는 것을 버리고”

(왕상12:8) 자기와 함께 자라난 소년들의 말을 따라 더욱 백성들의 멍에를 무겁게 하였습니다. 그 결과 나라가 두 조각나는 사태에 이릅니다. “훈계를 지키는 자는 생명 길로 행하여도 징계를 버리는 자는 그릇 가느니라”(잠10:17).

무력으로 중원을 평정한 고조 유방에게 육가가 한 말이 있습니다. ‘말 위에서 천하를 얻을 수는 있지만, 말 위에서 나라를 다스릴 수는 없다.’ 힘으로 백성을 제압할 수는 있지만, 통치는 어렵다고 충언한 것입니다. 이렇게 쓴소리를 할 줄 아는 사람이 곁에 있어야 합니다.

곰에게서 쓸개즙을 뺄 때 입에 달콤한 사탕을 물리고 빨대를 꽂아 쓸개즙을 빼냅니다. 곰은 사탕 먹느라고 아무 것도 모르지요. 귀에 달콤한 말만 하는 아첨꾼들은 당신의 재산을, 명예를, 신앙을 도적질하는 자들이니 조심해야 합니다. “사람을 경책하는 자는 아첨하는 자보다 나중에 더욱 사랑을 받느니라”(잠28:23).

사명자는 공인입니다. 주의 종으로 부름을 받은 자들은 더욱이 아첨, 아부에 조심해야 합니다. 사람들에게 칭찬받으려고 하면 화가 있습니다. 칭찬은 나중에 하나님께 받아야 합니다. 그 날에 면류관과 상을 기대하며 주의 길을 가야 합니다. “모든 사람이 너희를 칭찬하면 화가 있도다 저희 조상들이 거짓 선지자들에게 이와 같이 하였느니라”(눅6:26).

여러분, 금번 대한민국에서 일어난 일을 거울삼아 많은 것을 깨닫는 자들이 되었으면 합니다. 또한 서로 정죄하는 일일랑 그만 두고 우리 하나 되어 더 나은 대한민국, 더 부강한 대한민국을 만들도록 노력합시다. 할렐루야!

강을 건넜으면

뗏목을 버려라

귀명창이 명창이다

귀를 크게 열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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