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금
글씨 크기 보통16
889호 목차 › Text 주일설교

형통하려면 어디서든지 하나님을 시인하라(마10:32~42)

889호 · 2017-03-11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나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

이것은 누구나 아는 우리나라 애국가입니다. 이 애국가는 작사가가 미상인 노랫말에 안익태 선생님이 곡을 붙여 만들어졌습니다. 저는 이 애국가가 기도송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 어느 나라도 어느 민족도 이렇게 하나님을 시인한 나라는 없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분명히 귀에 들린 대로 행하시는 분입니다(민14:28). 그러니 하나님이 이 나라를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지키시지 않겠습니까?

지금 이 나라는 국내적으로나 국제적으로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힘든 상황에 놓여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믿습니다. 우리 민족이 이 애국가를 부르는 한 하나님은 이 나라를 지키실 뿐만 아니라 더욱 부강케 하실 것을요. 하나님이 위하시면 감히 누가 이 나라를 대적하겠습니까?

여러분, 우리 삶이 형통하려면 어디서든지 하나님을 시인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도 사람들과 천사들 앞에서 우리를 시인하시고, 책임지시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시인할 것이요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부인하리라”(마10:32~33).

창세기 22장에 보면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제물로 바치라고 명하십니다. 그 아들이 어떤 아들입니까? 하나님이 약속으로 준 기업이며, 백세에 얻은 귀하디귀한 아들입니다. 그런데도 아브라함은 그 명령에 순종하여 아내에게는 일체 함구하고 아들 이삭을 데리고 집을 나서 사흘 길을 갑니다. 자신과 싸우면서 갔겠지요. 왜 갈등이 없었겠습니까? 재산 다 내놓는 거야 대개 하겠지요. 명예도 버릴 수 있지요. 그러나 자식을 어떻게 제물로 드립니까? 그러나 아브라함은 겉으로 고심하는 내색 한 번 안 하고 사흘 길을 갔습니다. 그런데 모리아 산에 이르렀을 때 이삭이 아브라함에게 묻습니다. “아버지, 불과 나무는 있는데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어요?” 그러자 아브라함이 뭐라고 답했습니까?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실 거야. 걱정 마.”(창22:8).아브라함은 ‘여호와 이레’이신 하나님을 미리 시인했습니다. 이 말을 하나님이 들으셨을까요? 안 들으셨을까요? 당연히 들으셨지요. 그래서 아브라함이 시인한 대로 제물로 쓸 수양을 수풀에 미리 준비해 놓으셨습니다.

열왕기상 18장에도 하나님을 먼저 시인한 선지자가 있습니다. 바로 엘리야입니다. 엘리야가 갈멜산에서 바알 선지자 450명과 아세라 선지자 400명과 마주했을 때, 엘리야는 이렇게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이스라엘 중에서 하나님이 되심과 내가 주의 종이 됨과 내가 주의 말씀대로 이 모든 일을 행하는 것을 오늘날 알게 하옵소서”(왕상18:36). ‘하나님만이 참 하나님이십니다.’ 라고 시인한 겁니다. 그러자 하나님이 불을 내려 번제물과 나무와 돌과 흙을 태우고 도랑의 물까지 없애서 엘리야가 시인한 대로 당신이 하나님이심을 입증하셨습니다.

다윗도 그랬습니다. 어린 다윗이 골리앗과 마주할 때 “오늘 여호와께서 너를 내 손에 붙이시리니 내가 너를 쳐서 네 머리를 베고 블레셋 군대의 시체로 오늘날 공중의 새와 땅의 들짐승에게 주어 온 땅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 줄 알게 하겠고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로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붙이시리라”(삼상17:46~47) 라고 시인했습니다. 당연히 다윗이 시인한 대로 골리앗은 다윗의 물맷돌에 죽습니다. 또한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 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시23:1~2) 라고 시인합니다. 현실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고 있지만, 그래도 그는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안위하고 있음을 시인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그를 존귀케 하셨습니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룻1:16) 라고 시인한 이방 여인 룻. 그랬더니 하나님이 룻의 말을 들으시고 그를 당신의 자녀로 인정하사 그에게 보아스라는 좋은 남편을 주셨습니다.

우상 앞에 절하지 않았다는 죄로 사드락과 메삭, 아벳느고가 풀무불에 던져질 위기에 처했습니다. 그 상황에서 그들은 이렇게 시인합니다.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서 능히 건져 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단3:17). 그들은 전능하신 하나님을 입으로 시인했습니다. 하나님의 펴신 팔이 그런 그들을 구원함은 너무 당연한 일입니다.

오라비를 잃은 두 자매, 마르다와 마리아의 이야기도 요한복음 11장에 나옵니다. 그들은 주님이 늦게 오셨기 때문에 오라비가 죽었다고 예수님께 고합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그러자 두 자매는 “주여 그러하외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 라고 대답합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고 하시고, 하늘을 우러러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라고 기도하신 후

“나사로야, 나오라!” 명하셨습니다. 그러자 죽은 나사로가 무덤에서 걸어 나왔습니다. 예수님은 먼저 마르다와 마리아에게 시인하게 하신 후에 놀라운 일을 행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시인하는 것은 말로 하는 것이고, 그것은 상대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에 이르는 길이 어떠합니까?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롬10:9~10). 예수를 주라 입으로 시인해야 구원에 이를 수 있는 것입니다. 주님이 가르쳐주신 기도 첫 부분에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라고 시인하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하나님을 아버지로 인정하고 시인할 때 우리 아버지 되신 하나님이 적극적으로 우리 삶을 도우시고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몇 해 전에 우리 어머니가 암에 걸렸을 때, 저는 우리 집안에 경사가 났다고 단에서 말했습니다. 제 말에 다들 의아해했던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 일을 계기로 어머니의 믿음이 성장하고, 믿지 않는 형제들이나 친척들이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을 목도하게 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제가 이렇게 시인했더니 하나님은 어머니를 완치시켜주셨고, 정말 이 일로 인해 우리 어머니의 믿음이 부쩍 성장했으며, 의사인 조카들이 하나님을 모셔 들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시인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고로 비록 내 앞길 멀고 험해도 ‘하나님이 도와주신다’ 라고 시인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고쳐주신다’, ‘하나님이 내 기도에 응답하신다’, ‘하나님이 더 좋은 길로 인도하실 것이다’, 이렇게 시인해야 합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이 가나안 땅을 두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신다’(민14:9)고 시인한 것처럼 말입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고, 하나님은 믿음 위에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기업에, 가정에, 교회에, 국가에 어려운 일이 있습니까? 지금 당신이 해야 할 일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심을 시인하는 일이고, 전지전능하시고 무소부재하신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가 되심을 시인하는 것입니다. 분명히 하나님이 들으시고 더 좋은 길로, 협력하여 모든 일을 선하게 인도하실 것입니다.

만사형통하길 원하십니까? 먼저 하나님을 시인하십시오. 할렐루야!

대접받기 원하면

먼저 대접하라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라

889호 다른 글

커버스토리
지혜의 말씀
Cartoon
붕우칼럼
세상을 보는 창
교단소식
객원컬럼
특별기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