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헤미야의 믿음과 지혜를 본받자(느1:1~11)
지금 우리나라에는 느헤미야 같은 지도자가 필요합니다. 우리나라 뿐 아니라 어느 단체든, 어느 기업이든, 어느 교회든 느헤미야 같은 영적 지도자, 지혜로운 지도자가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입니다.
오늘 우리는 느헤미야를 통해 믿음과 지혜를 배워봅시다. 성경 느헤미야서는 지금으로부터 2,450년 전의 역사입니다. 느헤미야는 이스라엘의 포로 2세로서 당시 대제국인 바사의 아닥사스다 왕의 신임을 받는 술 관원이라는 높은 관직에 있었습니다. 아닥사스다 왕은 여러분이 잘 아는 에스더의 남편인 아하수에로 왕의 아들입니다.
아닥사스다 왕 제 20년 기슬르월(11~12월) 어느 날, 느헤미야의 동생 하나니와 몇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돌아오자 느헤미야는 ‘예루살렘이 어떻더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하나니는 백성들은 큰 환난을 당하고 능욕을 받으며, 성벽은 훼파되었고, 성물들은 소화되었다는 참담한 소식을 전합니다. 스룹바벨을 통해서 1차 포로귀환이 있었고, 2차는 에스라를 통해서 포로귀환이 있었습니다만 아직도 예루살렘은 형편무인지경이었습니다. 이 말을 들은 느헤미야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고, 곧 금식하며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에 느헤미야의 위대함이 있습니다. 그의 믿음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왕의 신임을 받는 자였습니다. 술 관원이라 하면 왕이 정말 믿는 사람입니다. 고대의 군주들은 독살이 두려워 왕과 그 가족이 먹는 음식을 철저히 관리했습니다. 술 관원이나 떡 관원이 독을 넣어버리면 죽을 수밖에 없으니 이 자리에 있는 자들은 왕의 두터운 신임을 받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니 웬만한 사람 같으면 왕에게 달려가 도와 달라고 눈물을 흘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내가 이 말을 듣고 앉아서 울고 수일 동안 슬퍼하며 하늘의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하여”(느1:4). 느헤미야의 이 기도는 넉 달 동안 계속됩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닫은 문은 열 자는 없습니다. 하나님만이 여실 수 있습니다. 느헤미야는 예루살렘이 지금의 지경이 된 것은 “이스라엘 자손의 주 앞에 범죄함을 자복하오니 주는 귀를 기울이시며 눈을 여시사 종의 기도를 들으시옵소서 나와 나의 아비 집이 범죄하여 주를 향하여 심히 악을 행하여 주의 종 모세에게 주께서 명하신 계명과 율례와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였나이다”(느1:6~7) 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왕에게 구하지 않고 하나님께 구한 것입니다. 그랬더니 하나님이 아닥사스다 왕의 마음을 감동시켜 삼림감독 아삽에게 영문과 성곽 및 재목을 주라 명하고 군대장관과 마병까지 딸려 보내주었습니다. 어디 그 뿐입니까? 조서까지 내려주고 호위병까지 보내줘서 신변을 보호해주었습니다.
바로 이겁니다. 사람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하면 하나님이 만물과 만인을 진동시켜 도와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사람을 자랑하지 말라 만물이 다 너희 것임이라”(고전3:21). 이것이 믿음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이럴 때 어찌 합니까? 혹 권력자나 재력가를 의지하지는 않습니까? 몸이 좀 아프면 기도하기 전에 의사를 먼저 찾아가지 않습니까? 병원 가는 게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먼저 하나님을 의지하라는 것입니다. 의사의 손길도 하나님이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기도하십시오. 기도는 만사를 변화시키고 성사시키는 힘이며, 하나님을 움직이게 하는 힘입니다. 하나님이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해하겠고, 하나님이 손을 대시면 안 되는 게 무엇이겠습니까? 죽은 지 나흘 된 송장이요? 홍해 같은 문제나 여리고 같은 문제요? 하나님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부르시는 분이시며(롬4:17),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을 하시는 분입니다(눅18:27).
하나님은 우리가 고민하고 염려하는 문제의 크기를 보시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우리의 믿음을 보십니다. 상점에 가면 주인이 물건을 사러 온 사람의 인물이나 학벌이나 가문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돈만 보듯이 하나님은 문제가 무엇이든 관계하지 않습니다.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요11:40) 하시고 죽은 지 나흘이나 된 나사로를 살리신 예수님, 홍해를 보신 것이 아니라 모세의 믿음을 보신 하나님이 지금도 우리의 믿음을 보신다는 것입니다.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길 수 없는 것은 이 시대에 그런 기적이 불가능해서가 아니라 우리의 믿음이 적은 연고인 것입니다. 아벨, 에녹, 노아, 아브라함, 사라, 라합 등, 히브리서 11장에 기록된 인물들은 큰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고, 역사를 이룬 사람들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그들에게만 강력하게 역사하신 것일까요? 아닙니다. 이들 앞에 모두 공통적으로 붙은 말은 ‘믿음으로’입니다. 하나님이 이들에게 크게 역사하신 것은 이들의 믿음이 남달랐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예측할 수 없는 기적의 사건을 맛보아야 기도에 전념하게 됩니다. 제가 32년 기도의 일생을 산 것은 다 간증할 수 없는 놀라운 응답과 기적을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가 더욱 기도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믿음을 가지세요. 기도하세요. 하나님을 의지하세요. 돈을 많이 내면 값진 것을 살 수 있듯이, 흔들리지 않는 큰 믿음으로 입을 크게 벌리면 하나님이 분명히 채우십니다.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찌니라”(히11:6).
그 다음은 느헤미야의 지혜입니다. 느헤미야는 하나님께 ‘너는 예루살렘으로 가라. 가서 성벽을 재건하라. 그것이 네가 할 일이다.’ 라는 사명을 받습니다. 그리고 약 4개월 동안 기도를 했습니다. 이제 왕에게 허락 받는 일만 남았습니다. 물론 11절에 왕이 돕게 해달라고 기도는 했습니다만, 왕에게 예루살렘으로 가서 성곽을 재건한다는 말을 하기란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에스라 4장에 보면 아닥사스다 왕이 즉위했을 당시, 누군가 예루살렘 성벽재건에 대해 고소문을 올린 일이 있었습니다. 예루살렘 성벽재건은 자칫 이스라엘의 독립선언으로 번져 반란으로 커질 우려가 높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닥사스다 왕이 분노하며 성벽재건을 중단하라고 했었거든요. 그러니 예루살렘 성벽재건 얘기를 꺼내는 것은 두려운 일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자! 이제 느헤미야가 어떻게 했는지 볼까요? 느헤미야는 때를 기다렸습니다. 공공연한 장소가 아닌 왕과 왕후만 있는 사석에서 그는 수심에 가득한 얼굴로 왕에게 술을 따랐습니다. 그랬더니 왕이 “무슨 일이냐?” 하고 먼저 물었고, 그에 조심스레 일을 고합니다. 이것이 지혜입니다. 때를 아는 것, 타이밍을 맞추는 것이 지혜입니다. 이것은 에스더서에도 나옵니다. 에스더는 하만의 궤계를 공석에 알리지 않고 사석에서 아하수에로 왕에게 고합니다. 공석에서 그랬더라면 에스더는 많은 대신들의 공격을 받아서 쫓겨나거나 죽었을 것입니다. 이렇듯 때를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지혜가 제일이라고(잠4:7) 한 것입니다. 바람이 불 때 연을 날리는 것이고, 물이 들어올 때 고기를 낚는 것입니다. 때를 아는 지혜가 여러분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나라의 평화통일도 분명히 때가 있습니다. 가장 좋은 때를 하나님이 택하셔서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반드시 평화통일이 이루어질 것을 믿읍시다.
하나님을 믿고 때를 아는 지혜를 가진 느헤미야, 그는 52일 만에 대업을 이루게 됩니다. 여러분도 만사에 하나님을 의지하여 기도로 믿음을 보이면 하나님이 역사하셔서 대업을 이루게 될 것입니다. 어디서든 땅을 깊게 파면 물이 나오듯 깊은 기도는 인생의 샘이 터지게 할 것입니다. 그래서 2017년에는 하나님께 인정받고, 사람에게 인정받아 만사형통의 복을 누리기를 예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기도하지 못하는 영혼은
죽은 영혼이다
바람이 불 때
연을 날려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