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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4호 목차 › Text 주일설교

자녀에게 남길 유산은 무엇인가?(살전5:15~18)

874호 · 2016-11-27

당신은 자녀에게 무엇을 유산으로 남기겠습니까? 돈? 빌딩? 주식? 다 좋습니다만, 더 좋은 것이 있습니다. 바로 ‘감사’입니다. 왜 감사가 최고의 유산일까요? 이는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5:18)는 말씀 때문입니다. ‘범사(凡事)’, 곧 ‘모든 일에’, ‘어떤 형편에서든지’, ‘무슨 일이 일어나든지’ 감사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그 뜻을 알고, 그 뜻대로만 산다면 절대 부족함이 없고, 인생에 장애물이 없기 때문입니다.

‘범사에 감사한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박국 선지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찌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합3:17~18). 없어도, 망해도, 아파도, 억울해도, 답답해도 감사하는 것, 그것이 범사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당신은 그럴 수 있습니까? 그럴 수 있다면, 그렇게 산다면 당신은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이고, 하나님이 기뻐하는 삶을 사는 자입니다.

다윗이 그랬습니다. 시편 116편에서 다윗은 환난과 고통 중에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그는 쫓기는 삶이었고, 병들었고,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놀라운 것은 그는 12절에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꼬”(시116:12) 라고 고백했다는 사실입니다. 아프고 고통스럽지만 그래도 감사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를 ‘마음이 합한 자’라 칭하신데는 다 이유가 있는 겁니다.

요셉의 경우도 그랬습니다. 험산준령을 넘나든 인생길에서도 요셉은 불평 대신 감사, 불만 대신 감사했습니다. 그 결과 종으로 팔려간 나라의 총리대신 자리에 올랐고, 이로 인해 자기를 판 형제들에게 악을 선으로 갚는 멋진 역전의 드라마를 쓰게 됩니다.

욥의 이야기도 해볼까요? 마귀가 하나님께 욥을 참소했습니다. 하나님이 축복을 많이 주셨으니까 감사하는 것이지 주신 것을 다 빼앗으면 그도 다른 사람이나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욕할 것이라고 말입니다(욥1:9~11). 감사할 조건이니까 감사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욥을 믿었기에 “그래, 정말 그런지 시험해봐라.” 하시고 마귀에게 붙이셨습니다. 그러자 욥의 재산이 날아가고, 자식이 죽고, 몸에 악창이 나 기왓장으로 긁는 비참한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불평 대신 감사했습니다.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가올찌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찌니이다”(욥1:21). 왜요? 그는 하나님 덕분에 지금까지 누리고 살았던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랬더니 하나님이 그에게 갑절의 축복을 주셨습니다.

여러분, 범사에 감사한다는 것은 ‘~덕분에’ 신앙으로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 때문에’ 라고 생각하면 불평이 나옵니다. 화가 납니다. 그러나 ‘~덕분에’ 라고 생각하면 깨닫게 되고, 감사하게 되지요. 작금에 대한민국에 일어나고 있는 일들에 대해서도 분노하기에 앞서, 불평하기 전에 감사해야 합니다. 이 사건 덕분에 썩은 부분을 도려내고, 암적 요소를 제거하지 않습니까? 얼마나 감사합니까? 우리가 이 일에 감사할 때 하나님이 이 나라를 다시 축복하실 것이고, 더 나아가 우리가 소원하는 평화통일의 길로도 인도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항상 모든 일에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분이니까요.

제가 목회 2년 만에 3천명의 성도를 모시게 되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제가 교만이 도가 넘었던 모양입니다. 어느 날 설교를 하고 당회장실에 들어갔는데 갑자기 사지가 마비되었습니다. 겨우 눈만 깜빡거릴 수 있었습니다. 그 때 저는 누워 울면서 회개했습니다. 목소리조차 나오지 않았지만 맘속으로 살려만 주시면 평생 주를 위해 살겠다고, 겸손히 섬기겠노라고, 정직하고 깨끗하게 살겠노라고 울면서 기도했습니다. 얼마나 기도했을까, 간신히 제 입에서 ‘예수’ 소리가 나왔습니다. 그리고 예수 이름으로 귀신을 쫓고 사지가 풀려 살아났습니다. 저는 감사했습니다. 교만이 하나님이 싫어하는 죄임을 깨닫고 감사했습니다. 그 일 덕분에 저는 이후로 낮아지려고, 깨끗하게 살려고, 정직하려고 평생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고난이나 실패가 다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그 고난을 통해 인내를 배우고 실패를 통해 경험을 터득하기 때문입니다. 누에고치에서 나방이 나올 때 힘들어한다고 칼로 옆의 고치를 뜯어주면 그 나방은 나와 곧 죽게 됩니다. 고난을 통과해야 하늘을 날 수 있는 힘이 생기게 되는 겁니다. 이것이 고난에도 감사, 실패에도 감사, 병들 때도 감사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여러분, 감사는 인생의, 기업의, 국가의, 교회의 성장촉진제요, 항암제요, 소독제입니다. 감사할 때 더욱 감사할 일이 생기고, 감사가 재앙을 막고, 모든 일을 순조롭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성도 중에는 늘 감사했더니 안 되던 포도농사가 잘 되고, 다른 돼지농장은 구제역 때문에 피해를 입었지만 우리 성도만 아무런 피해가 없었던 사례도 있습니다.

또한 감사는 영적 지표입니다. 누가복음 17장에 예수께서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로 가시다가 한 촌에 들어가셔서 문둥병자 열 명을 고쳐주십니다. 그런데 그 중에 한 명 만이 예수의 발아래 엎드리어 사례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있느냐?” 그리고 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눅17:19)고 하셨습니다. 아홉은 고침을 받고도 감사를 잊은 채 제 길로 갔지만, 이방인 한 사람만이 감사하여 사례했더니 감동하신 예수님이 그를 육신의 병에서 구원하신 것뿐 아니라 영적인 구원까지 더하신 것입니다. 열매가 맺힌 것입니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시50:23).

이 감사는 인간사 속에도 나타나야 합니다. 사실 사람들은 샘의 물이 마를 때까지 감사를 모릅니다. 샘의 물이 말라야 샘이 있었음에 감사합니다. 건강을 잃고 나서야, 직장을 잃고 나서야, 가정이 깨지고 나서야, 국가를 잃고 나서야 그것이 있었을 때 감사하지 못한 것을 안다는 겁니다. 마치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감사하지 못하고 불평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그 때는 너무 늦습니다. 지금 감사해야 합니다. 오늘 당장 해봅시다. 오늘 저녁 퇴근하는 남편에게 ‘돈 벌어오느라 애쓴다, 고맙다.’고 해보세요. 집안 살림 하느라 변변한 옷 하나 없는 아내에게 ‘미안하고 고맙다.’고 해보세요. 애들에게 공부 못한다, 말 안 듣는다 하지 말고 ‘별 탈 없이 지내줘서 고맙다.’고 해보세요. 그리고 여러분을 공부시키느라 허리가 휜 부모님께 머리 숙여 ‘감사합니다.’ 라고 하세요. 집안 분위기가 달라질 겁니다.

오늘 회사에서 점심을 먹을 때 서빙해주는 분께 ‘감사합니다.’ 라고 해보세요. 깍두기 하나라도 더 줍니다. 그리고 주신 직분에도 감사하세요.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딤전1:12). 주의 일이 신나고 힘들지 않을 것이고, 교회가 날로 부흥될 것입니다.

우리는 감사에 너무 인색합니다. 하긴 말세에는 감사하지 않는다고 성경은 이미 예언했습니다(딤후3:2). 그러나 나부터 감사하는 습관을 들이고, 내 자손에게 감사의 습관을 물려주어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고, 그것이 성공적인 삶의 비결이기 때문입니다. 흐르는 물 한 컵을 떠줘도 감사할 줄 아는 사람, 멋있지 않습니까? “감사함으로 그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 이름을 송축할찌어다”

(시100:4). 할렐루야!

행복(幸福)은

감사의 문을 열고 들어온다

지혜로운 자는 배우는 자이고

감사하는 자는 행복한 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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