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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4호 목차 › 내가 매일 기쁘게

함께하는 기쁨의 감사

874호 · 2016-11-27

얼마 전, 부모님 생신이었다. 우리 부모님의 생일은 같은 날이다. 시집가서 맞은 첫 번째 부모님 생신 파티는 신혼집에서 내가 직접 만든 미역국과 나물 반찬으로 대신하였다. 일 년 중에 364일을 내가 먹을 밥을 차려 주시는 엄마지만, 매번 생일상을 차려 놓으면 세상에 없는 맛난 음식을 본 것처럼 즐거워하신다. 이번에도 내가 만든 미역국은 싱겁고 밍밍했지만 아버지는 정말 맛있다며 밥 두 그릇을 다 비우셨다. ‘시집가도 되겠네~’라던 칭찬은 더 이상 듣지 못하지만, 새로 생긴 아들(사위)과 함께 넷이서 먹는 생일 밥상은 꽤 즐거운 자리였다.

퇴근이 늦어 자정이 넘은 시각에 음식을 만들면서, 또 부모님이 깨끗이 비운 그릇들을 설거지하면서 부모님에 대한 고마움을 표현하는 방법은 의외로 쉽고 간단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끔 부모님께 미안해서 미처 하지 못한 말들을 “엄마, 내가 꼭 성공해서 자랑스러운 딸이 될게요.” 라고 했었는데, 기약 없는 미래의 약속보다 지금 당장 서투른 반찬 한 가지가 엄마를 더 기쁘게 하는 것 같다. 비록 시금치 반찬이 너무 싱거워 소금과 간장이 필요했지만, 그럼에도 엄마의 얼굴에 미소가 떠나지 않았던 것을 생각하면 ‘뭣이 중헌지’를 알게 된 것 같다.

먹고 사는 일에 쫓겨, 꿈을 향해 내달리느라 정신이 팔려 있는 동안 올해의 추수감사절이 지났다. 지난 한 해동안 내가 얼마만큼 나에게 정직하고 남에게 진실했는지를 생각해보기에는 적당한 시점인 것 같다. 그리고 오늘은 남이 아닌 하나님께 내가 얼마나 진실했는지, 그리고 진실한 감사를 했었는지를 생각해보고 싶다.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에 하루하루를 살지만, 내가 걷는 이 길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생각에 감사기도는 점점 멀어졌던 것 같다. 하나님께 내뱉었던 서원들과 결심들은 항상 지금보다 더 나아져야 가능하고, 더 높아져야 가능한 것들이기 때문이다. 더 큰 성공을 위해 지금의 기쁨과 감사는 연기되고 만다. 하지만 그것은 하나님을 향한 진실한 모습이 아니다.

부모님이 나를 보며 무장해제 상태로 크게 웃으시는 이유는 내가 박사 학위를 받거나, 일류 쉐프 수준의 요리를 해서가 아니다. 지금의 내 노력이 그저 부모님을 기쁘게 한 것뿐이다. 단지 부모님의 생신을 함께 축하하는 기쁨 그 자체를 표현하는 것으로도 부모님은 즐거워하셨다.

우리 크리스천의 삶도 그와 같을 것이다. 하나님과 함께하는 일상의 기쁨, 그 자체에 대한 감사가 중요하다. 하나님의 궤를 앞세우고 가면서 온 몸으로 뛰놀며 춤추었던 다윗처럼(삼하6장), 내가 받은 축복의 크기와 상관없이 하나님과 함께 있다는 사실 그 하나만으로도 기쁨과 감사를 표현해야 한다. 그럼, 우리 주님도 부모님처럼 무장해제한 표정으로 웃으시지 않을까?

전훈지

ppje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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