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른 자에게는 기대할 것이 없다(잠6:6~11)
아브라함은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 갈등하는 가운데서도 새벽에 일어나 모리아 산을 찾았습니다. 야곱 역시 외삼촌 집에 가서 일할 때 눈 붙일 겨를도 없이 일해서 거부가 되었습니다(창31:40). 엘리야도 하나님의 일에 부지런했음을 시인했고(왕상19:10), 엘리사도 부름을 받을 때에 부지런히 일하던 중이었습니다(왕상19:19). 다윗 역시 주의 말씀을 묵상하기 위해 이른 새벽에 일어났습니다(시119:148). 사도 바울의 사역도 기도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부지런함이 함께 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입니다(살전2:9).
성경의 위대한 인물들의 공통점은 바로 부지런입니다. 어찌 성경의 인물뿐이겠습니까? 그래서 옛 어른들은 “자고로 엉덩이가 가벼워야 성공한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공평하게 24시간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어떤 사람은 24시간을 48시간으로 살기도 하지만, 반면에 어떤 자는 채 12시간도 활용하지 못하기도 합니다. 어떤 차이일까요? 그것은 부지런하게 사느냐, 게으름을 피우느냐 입니다. 그 결과는 판이하게 다릅니다.
저는 게으른 사람을 정말 싫어합니다. 그런데 게으른 사람들을 보면 특성이 하나 있습니다. 그건 핑계를 대는 겁니다. 회의를 하거나 행사를 해도 꼭 늦는 사람이 있습니다. 늦었으면 조용이나 있지, 대개 이렇게 말을 합니다. ‘일찍 나왔는데 차가 막혀서’, ‘차가 고장이 나서’ 등등 말입니다. 하긴 마태복음 25장에도 그런 자가 있습디다. 어느 주인이 각자에게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한 달란트를 맡기고 떠났습니다. 그러자 다섯 달란트 받은 사람은 “바로 가서 그것으로 장사하여”(마25:16) 다섯 달란트를 남겼고, 두 달란트 받은 자도 “그같이 하여”(마25:17) 두 달란트를 남겼습니다. 둘 다 즉시 나가 장사를 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은 땅을 파고 그것을 묻어뒀습니다. 안 움직인 겁니다. 게으름 피운 거지요. 그리고는 주인이 와서 회계하자 핑계를 댑니다. “주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었나이다”(마25:24~25). 그 주인이 이에 분노해서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 하고 바깥 어둔 데로 내어 쫓으라고 했습니다(마25:30). 저라도 그렇게 했을 것입니다. 오죽하면 잠언 22장 13절에도 “게으른 자는 말하기를 사자가 밖에 있은즉 내가 나가면 거리에서 찢기겠다 하느니라”고 말씀하셨겠습니까?
저는 게으름의 정의를 ‘무책임’이라고 말합니다. 게으름의 원래 뜻은 ‘돌보지 않는다’ 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어머니는 7남매를 두었습니다. 우리 어머니는 정말이지 아플 시간도 없을 정도로 바쁘셨습니다. 체구도 자그마한 분이 집안의 대소사를 다 챙기시고 7남매를 입히고 먹이고 학교 보내는 일로 매일 분주하셨습니다. 농사일도 하시고, 또 틈틈이 나가 행상을 해서 가정경제에 보태시기도 했습니다. 우리 어머니가 왜 그렇게 부지런을 떨었을까요? 책임감 때문입니다. 내 자식을 책임지겠다는 의지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책임감은 곧 부지런함을 의미하는 것이요, 역으로 게으름은 무책임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저는 교회의 일을 부탁할 때 절대 한가하게 놀고 있는 자에게 부탁하지 않습니다. 시간이 많으면 잘할 거 같지요? 절대 아닙디다. 시간이 많다보니 ‘오늘 아니면 내일하지’ 해서 결국 시간 안에 못해옵디다. 대신 바쁘게 일하는 사람에게 부탁하면 그들은 바쁜 시간을 쪼개서 부지런히 찾고, 연구해옵니다. 뿌리가 썩은 자에게 기대할 것이 없듯, 게으른 자에게도 기대할 것이 없다는 것을 저는 깨달았습니다.
개미와 베짱이 이야기를 우리는 어릴 때 배웠습니다. 여름 내내 놀던 베짱이가 겨울이 오자 개미에게 가서 빌어먹으려다 망신만 당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럼요, 당연히 게으른 대가를 받아야지요. 어떤 대가냐? 게으른 자는 결국 가난하게 되고(잠10:4),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며(잠10:26), 남의 부림을 당할 것이고(잠12:24), 어려움이 많을 것이며(잠15:19), 구걸해도 얻지 못할 것이고(잠20:4), 패가망신 할 것이며(잠18:9), 굶주릴 것이고(잠19:15), 쇠퇴할 뿐더러(전10:18), 모든 것을 빼앗기게 된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마25:26~30).
대신 개미에게 가서 배우라고 가르칩니다. “게으른 자여 개미에게로 가서 그 하는 것을 보고 지혜를 얻으라 개미는 두령도 없고 간역자도 없고 주권자도 없으되 먹을 것을 여름 동안에 예비하며 추수 때에 양식을 모으느니라”(잠6:6~8).
‘나는 운이 없다’고 말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거 아십니까? 운도 부지런하고 노력하는 자와 동행한다는 것을요. 감나무 밑에서 입이나 벌리고 있는 자와 사다리를 가져다 감나무에 오르는 자 중에 누가 감을 먹을 확률이 높습니까? 입으로 감이 안 떨어지면 운이 없는 겁니까? 그렇게 게으름을 피우는데 무슨 행운이 따라옵니까? 행운이 눈멀었답니까?
여러분, 도둑놈 중에 최악은 인생을 도둑질하는 놈입니다. 시간을 도둑질하는 사람 말입니다. 성경은 “때를 아끼라”(엡5:16)고 했는데, 매일 빈둥빈둥 놀고, 해가 중천에 뜨도록 좀 더 눕자, 좀 더 자자 하고, 심지어 차려놓은 밥상에서 수저 올리기도 귀찮아하는 자에게 무엇을 기대하겠고, 그런 자에게 무슨 미래가 있겠습니까?
혹시 직원 중에, 제자 중에 게으른 자가 있습니까? 그런 자는 과감하게 잘라내야 합니다. 왜냐하면 ‘게으른 자는 그 부리는 사람에게 마치 이에 초 같고 눈에 연기 같기 때문’(잠10:26)입니다. 게으른 자를 쓰면 손해가 많다는 것입니다. 기업과 단체가 잘 될 리 없다는 것입니다. 고름은 절대 살 안 되기 때문입니다.
대업은 부지런한 자가 이룹니다. 느헤미야가 예루살렘 성벽을 52일 만에 재건할 수 있었던 것은 오직 부지런히 일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오로지 이 일에 몰두하여 그들의 원수조차도 놀랄만한 기간 내에 일을 마쳤습니다.
자본이 없습니까? 배운 게 없습니까?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것도 없습니까? 그러나 최고의 자산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부지런함입니다. 우리나라가 그렇지 않습니까? 변변한 지하자원 하나 없고, 우리 때는 많이 배우지도 못한 세대들이었습니다. 전쟁 직후라 성한 것 하나 없는 데서 이 정도 경제성장을 이룬 동력은 부지런함이었습니다. 부지런히 일했고, 부지런히 아이들을 가르쳤기에 대한민국이 세계에 번듯하게 이름을 날리게 된 것입니다. 성경도 말씀합니다. 부지런하면 부자가 되고(잠10:4), 사람을 다스리게 되며(잠12:24), 마음의 풍족함을 얻고(잠13:4), 소망의 풍성함에 이르게 될 것이라고요(히6:11).
부지런히 일하고, 부지런히 공부하고, 부지런히 운동하세요. 목자는 부지런히 양 떼를 돌보세요. 주님은 ‘찾으면 찾고, 구하면 얻고, 두드리면 열린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부지런한 자들이 찾고, 얻고, 열고 들어간다는 말입니다. 부지런한 자가 되십시오. 나태해진 정신을 가다듬고 게으름을 떨쳐버리세요. 그런 자가 성공의 주인공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 육체적인 장애를 가진 자가 장애인이 아닙니다. 정신적인 장애인이 진짜 장애인입니다. 게으른 자는 그 중에 제일 큰 장애인입니다. 게으름도 습관일진대, 그 습관을 고치지 않으면 그 습관 때문에 비참한 운명이 될 것입니다. 그러니 게으른 자신과 싸워 이겨내세요. ‘~ 때문에’라고 변명하지 말고, ‘게으른 나’와 싸워 이기세요. 그러면 행운도, 성공도 당신에게 달려올 것입니다. 할렐루야!
게으름은 악이요
인생의 독소다
핑계 없는 무덤은 없다
핑계대지 말고 방법을 찾아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