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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9호 목차 › 세상을 보는 창

하나님이 다 하셨다!

869호 · 2016-10-22
평신도 묵상노트

전직 무당이었다가 기독교로 개종한 자매의 간증에 의하면, 귀신을 자신의 주인으로 모시겠다는 서약식인 내림굿을 받을 때, 그녀는 많은 정성과 돈을 들였다고 한다. 여러 벌의 비싼 옷, 다양한 음식을 준비하여서 주변의 무당들을 초대하여 몇 시간의 긴 의식을 치렀단다. 이런 성대한 의식을 통해 귀신을 받아들였는데, 정작 참신이신 예수님을 구주로 모시겠다는 영접기도는 너무나 간단하여 깜짝 놀랐다고 한다. 그냥 마음을 준비하여, 예수님을 구주로 받아들이겠다고 말만 하면 된다는 것에 ‘정말 그것이면 되냐?’고 몇 번이나 물었다고 한다. 일개 미천하고 하찮은 악령을 주인으로 모시겠다는 서약식도 그렇게 복잡하고 돈이 많이 필요한데, 전지전능 절대자 참신이신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겠다는 의식에는 아무것도 필요 없다는 사실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렇다. 우리가 구원 받는 일에는 아무 것도 필요한 것이 없다! 왜냐면 우리 인간들의 구원에 필요한 모든 것은 하나님 당신께서 손수 다 준비해 놓으셨기 때문이다. 그 어렵고 복잡하고 힘든 준비는, 당신께서 외아들의 목숨을 희생시키면서까지 다 이루어놓으셨다. 그래서 우리의 아주 작은 겨자씨만한 믿음만으로도 구원의 역사는 시작되는 것이다.

이 자매의 간증을 들으면서, 반성이 많이 되었다. 나는 거저 구원을 받았고, 지금 이 순간까지도 그 사랑 가운데 살고 있는데, 그 놀라운 은혜를 깊이 인지하지 못하고 엉뚱한 착각을 하고 있었다. 바로 내가 너보다는 조금 더 낫다고 생각하는 교만한 마음이다. 쥐꼬리보다 못한 지성과 도덕성으로 타인을 얕보고, 쉽게 질타했다. 그것은 지성과 도덕성이라는 그럴 듯한 모습으로 고상한 척, 아름다운 척, 깨끗한 척 자리하고 내 안 깊이 숨어 자기의, 자기애, 교만, 비판, 정죄하는 마음을 주면서 각종 악한 짓을 했다. 이제 그 단단한 요새를 부숴보리라.

하나님 당신께서 손수 우리를 위해 희생적 죽음, 완성된 제사를 치러주신 것에 대해서 참으로 감사하다. 아무것도 한 일이 없는 우리에게 부활의 생명을 주시고, 당신의 친구를 삼아주신 것에 대해서 감사하다는 말밖에 할 말이 없다. 우리에게 아무것도 요구하시지 않는 하나님, 그 분께 넘치는 마음 주체할 길이 없이 덩실 덩실 춤을 추면서 찬양한다. 할렐루야!

박소향

bp650624@naver.com

생명의 말씀

당신은 행복합니까?

한 부부가 숱한 고생을 하면서 돈을 모아 80여 평의 아파트를 장만했다. 먹을 것 안 먹고, 입을 것 안 입으면서 온갖 고생 끝에 장만한 아파트였다. 거기다 최고급 오디오세트와 최고급 커피머신을 사서 베란다를 테라스 카페로 멋지게 꾸몄다. 그들은 행복했다. 그러나 이 부부는 이 시설을 즐길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하루는 남편이 회사에 출근 후 집에 무엇을 놓고 온 것을 뒤늦게 알게 됐다. 그래서 놓고 온 물건을 가지러 집으로 갔는데 이게 웬일인가! 가정부가 음악을 틀어놓고 커피 한잔을 뽑아 마시며 베란다 테라스 카페에서 집안의 온 시설을 향유하며 즐기고 있는 것이 아닌가. 정작 자신들은 누리지 못하는 것을….

이들은 과연 행복한 삶을 살고 있을까? 이들은 더 큰 평수의 아파트, 더 좋은 오디오, 더 멋진 테라스 카페, 더 근사한 커피머신을 사기위해 밤낮으로 열심히 일한다. 그렇게 살다 언제 죽을지 모른다.

지금 당신도 이렇게 살고 있는지 모른다. 그러나 행복은 목적지에 있지 않고 목적지로 가는 여정에 있다. 그러나 우리는 항상 ‘나중에’ 한다. 좀 더 벌어서 누리고, 조금 있다 더 큰 행복을 누리겠다 한다. 아니다. 지금 즐겁고 재미있게 살아야 한다. 지금 행복해야 한다.

또한 행복은 얼마나 많이 소유했느냐에 달린 것이 아니라, 얼마나 감사하느냐에 달려있는데, 그 감사는 배워야 한다. 행복해지고 싶으면 감사를 배워야 하고, 우리의 체질을 감사의 체질로 개선해야 한다. 당신의 손에 얼마나 많은 것을 쥐었느냐 하는 것은 사실 당신의 행복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 당신의 마음속에 감사한 생각이 없다면 그것들은 되레 파멸의 노를 젓는 셈이 된다. 다른 어떤 공부보다 먼저 감사할 줄 아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감사의 기술을 배울 때 당신은 비로소 행복해질 수 있다.

무슨 일을 만나든지 감사하면 감사하는 만큼 그의 삶은 풍성해지고 행복해지는 법, 그래서 성경은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 뜻이니라”(살전5:16~18) 라고 말씀하신다. 우리 모두 다 지금 행복했으면 한다.

임택함 목사

cjcc1004@hanmail.net

오늘의 메시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신앙

옛날 한 마을에 17년 동안 홀로된 아버지를 모시고 사는 효자가 있었다. 그는 마을의 자랑거리가 되어 사또가 새로 부임되어 올 때마다 관아의 부름을 받고 칭찬과 포상을 받았다. 또 다시 사또가 새로 부임해왔을 때 여지없이 그 효자는 부름을 받았다. 당연히 칭찬과 포상을 받으리라 기대하고 관아에 갔던 효자는 심한 책망과 함께 곤장 열대를 맞고 돌아왔다. 깜짝 놀란 아비가 이것이 어찌된 일이냐고 묻는다. 아들이 대답하기를 사또가 어찌 효자가 됐느냐 묻길래 홀로된 아비를 17년간 지극정성으로 모셨다고 했더니 “이런 불효자식이 있는가? 17년간이나 아비를 홀로 두었다는 것이냐? 진정한 효도는 재혼을 시켜드리는 것이 아니더냐! 라며 곤장을 치더이다.” 그랬더니 아비가 손뼉을 치며 “이제야 제대로 된 사또가 왔구나.” 하시더란다.

하나님을 믿는 우리들도 같은 실수를 할 수 있다. 하나님이 원하는 신앙이 되어야 할 텐데 그렇지 못하고 나름대로의 신앙으로 잘 믿는다 착각한다. 아버지를 자기 뜻대로 모신 아들처럼.

언젠가 어떤 목사님이 자신은 목회를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총회장 목사님의 생각은 다르더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내 생각이 아니라 윗분이 인정하는 것이 옳다고 하는 말이다. 성경에도 자신의 생각에 ‘선지자 노릇하고, 귀신도 쫓고, 권능도 행했으니 잘하고 있다’고 했던 자에게 ‘불법을 행한 자야 너를 도무지 모른다’고 주님은 말씀하신다(마7:21~23). 하나님의 생각과 우리의 생각은 다르다. 그래서 성경은 ‘근심조차도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것은 후회함이 없는 구원을 이루게 하신다’고 말씀하신다(고후7:10).

우리 이제 자아적인 착각의 신앙을 벗고 기록한 말씀대로 하나님의 뜻하신 신앙으로 약속하신 복을 받으며 그분께 영광을 돌리자!

김상욱 목사

ksw9669@hanmail.net

세상을 보는 창

하나님은 나를 보고 계신다

끓는 물주전자를 관심 있게 바라보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러나 와트는 거기서 짐을 끌고 가는 증기기관차를 보았다. 번개를 보고 무서워하는 사람은 많다. 그러나 프랭클린은 그 속에서 어둠을 밝힐 전기를 보았다. 어느 날 조각가 로댕은 한 바위 앞에 섰다. 로댕에게 그 바위는 인생을 깊이 생각하며 고민하는 한 젊은이로 보였다. 얼마 후 이 바위는 인류의 마음을 울리는 명작 ‘생각하는 사람, Le Penseur’이 되었다.

다 본다고 똑같이 보는 것이 아니다. 평범한 현실 속에서 화려한 미래를 볼 뿐 아니라, 그 바라보는 것을 현실화시키는 능력이 중요하다. 시선을 사실로 만드는 것이 이 세상 성공자들의 특징이듯이 말이다.

하물며, 우리를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시선은 어떠하시겠는가? 하나님은 다윗의 미래 모습을 보시고 기름을 부으셨다. 지금은 초라하고 작은 목동이지만 왕처럼 기름을 부으셨다. 새월은 무심히 흘러서 여전히 다윗은 양을 쳤고, 형들은 건장하게 자신의 우월성을 입증하듯 다윗에게 심부름을 시키며 지냈다. 그러나 하나님의 기름 부으심, 그 약속의 말씀은 살아있었다. 유효했다. 온 세상은 죽은 듯 하나님의 움직임을 눈치 채지 못했지만, 하나님은 평범한 일상 속에서 계획하신대로 역동적으로 일하고 계셨다. 그 분이 바라본 그 시선대로 세상과 다윗을 이끌어 가시고 변화시키고 계셨던 것이다. 하나님의 시선은 이처럼 역동적인 힘이 있고,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다. 말씀이 사건이 되고 역사가 되듯이, 하나님의 시선은 반드시 사실로 이루어진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1452~1519)의 작품 ‘모나리자’는 신비의 미소로 유명한 그림이지만, 특이한 화법으로 그려서 어느 방향에서 봐도 시선이 관람자와 마주친다. 즉 내가 어디로 가든지 모나리자의 시선이 나를 향하는 느낌을 갖는다. 아마도 하나님의 시선이 이와 같아 내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하든 나를 향해 보고 계실 것이다. 그렇다! 우리 하나님은 오늘도 불꽃같은 눈동자로 당신의 시선에 우리의 눈을 고정시키는 사람들을 찾고 계신다.

“여호와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의 귀는 그들의 부르짖음에 기울이시는도다”(시34:15).

이정금 전도사

jungkm@nate.com

참된 깨달음

하나님을 위하여

‘보톨도 지오바니.’

그는 유명한 미켈란젤로의 선생님입니다. 미켈란젤로가 14살이 되던 해, 보톨도의 문하생이 되기 위해 찾아갔을 때, 보톨도는 그의 재능을 알아보고 이렇게 물었습니다. “위대한 조각가가 되려면 무엇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느냐?”,

“기술과 재능을 더 닦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기술만으로는 안 된다. 네 재능을 무엇을 위하여 쓸 것인가를 먼저 결정해야한다.”

그리고 문하생이 된 그날 스승은 미켈란젤로를 데리고 나가 두 군데를 보여 주었습니다. 첫 번째로 보여준 곳은 바로 술집이었습니다. “스승님, 술집 입구에 아름다운 조각이 있어요.”, “이 조각은 아름답지만 조각가는 술집을 위해서 자신의 재능을 사용했단다.”

스승은 다시 미켈란젤로를 데리고 아주 거대한 성당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성당입구에 세워진 아름다운 조각상을 보여주었습니다. “너는 이 아름다운 천사의 조각상이 마음에 드느냐? 똑같은 조각이지만 하나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쓰였고, 또 하나는 술 마시는 흥행과 쾌락을 위해서 세워졌단다. 너는 네 기술과 재능을 무엇을 위하여 쓰기를 원하느냐?” 스승의 물음에 어린 미켈란젤로는 세 번씩이나 대답을 했다고 합니다. “하나님을 위하여, 하나님을 위하여, 하나님을 위하여 쓰겠습니다.”

히틀러가 청중을 향해 외친 주장입니다. “나라를 사랑하라, 지도자에게 충성하라, 국가의 법을 준수하라, 강인한 용기를 가져라.” 그의 주장에는 하자가 없습니다. 그러나 이 충성과 사랑과 용기가 어디에 쓰였습니까? 독재의 수단으로 사용되었습니다. 탁월한 재능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디에 쓰이느냐 입니다.

나는 과연! 내게 주신 몸, 재능, 물질을 하나님을 위하여, 하나님을 위하여 쓰고 있습니까(고전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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