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는 핑계와 변명이 통하지 않는다(눅21:14~18)
2012년 9월에 창설된 JC 아카데미의 슬로건은 ‘핑계대지 말고 방법을 찾아라’입니다. 2016-08-28이는 모든 것의 중심이 나이듯, 모든 원인 역시 나에게 있다는 것을 명시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여러분, 핑계와 변명은 살아남기 위한 조잡한 수단입니다. 핑계와 변명을 누가 댑니까? 실패자들이나 실수한 자들입니다. 그들이 살아보겠다고 ‘누구 때문에’, ‘뭣 때문에’ 하는 것이니 추잡한 것 아니겠습니까?
저는 핑계 대는 자, 변명하는 자를 아주 싫어합니다. 그래서 교역자들이나 직원들은 제 앞에서 일체 핑계나 변명을 하지 않습니다. 언젠가 장로들과 골프를 치는데, 한 장로가 공이 잘 안 맞으니까 “아휴, 옆에서 떠드니까 공이 잘 안 맞잖아요.” 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봐, 핑계대지 마. 실력이 없어서 안 맞는 거야.” 라고 했습니다. 그럼요, 자신을 탓해야지, 왜 남을 탓합니까? 이처럼 저에게도 핑계가 안 통하는데, 하나님 앞에서 핑계가 통하겠습니까?
처음 핑계를 댄 사람은 아담입니다. 하나님이 아담을 위해 에덴동산을 아름답고 풍성하게 지으셨고, 다만 에덴 중앙에 있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에만 손을 대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아담이 뱀의 유혹에 넘어간 하와의 말을 듣고 선악과를 먹고 말았습니다. 그 때 하나님이 아담에게 그 죄를 추궁하자 아담은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하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실과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창3:12)라고 했습니다. 결국 아내 탓이고, 더는 아내를 주신 하나님 탓이라고 말한 겁니다. 그런 그에게 자비란 있을 수 없습니다.
핑계와 변명의 대표주자는 누가 뭐래도 사울입니다. 하나님은 사울에게 아말렉을 쳐서 그들의 소유를 남기지 말고 진멸하되 모든 사람과 육축까지 죽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사울은 아각을 사로잡고 양과 소 가운데 좋은 것을 죽이지 않고 남겼습니다. 이를 알게 된 사무엘이 책망하자 사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말렉 왕 아각을 끌어 왔고 아말렉 사람을 진멸하였으나 다만 백성이 그 마땅히 멸할 것 중에서 가장 좋은 것으로 길갈에서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하려고 양과 소를 취하였나이다”(삼상15:20~21). 백성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 뿐이 아닙니다. 사무엘 제사장이 정한 기한에 오지 않자 사울이 직접 제사를 드리고 맙니다. 엄연히 제사장 직분을 침해한 것입니다. 이를 두고 사무엘이 어찜이냐고 묻자 그는 구구절절 변명하기 바쁩니다. “백성은 나에게서 흩어지고 당신은 정한 날 안에 오지 아니하고 블레셋 사람은 믹마스에 모였음을 내가 보았으므로 이에 내가 이르기를 블레셋 사람은 나를 치러 길갈로 내려오겠거늘 내가 여호와께 은혜를 간구치 못하였다 하고 부득이하여 번제를 드렸나이다”(삼상13:11~12). 하나님이 사울을 왕으로 세운 것을 후회할 만하지 않습니까(삼상15:11)?
아론의 경우도 볼까요? 모세가 시온산에 오르고 소식이 없자 아론이 백성들에게 금장식을 다 가져오라고 해서 금송아지를 만들고는 그것을 숭배했습니다. 하산한 모세가 이에 대해 진노하자 그는 핑계와 변명으로 일관합니다.
“내 주여 노하지 마소서 이 백성의 악함을 당신이 아나이다 그들이 내게 말하기를 우리를 위하여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라 이 모세 곧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사람은 어찌 되었는지 알 수 없노라 하기에 내가 그들에게 이르기를 금이 있는 자는 빼어내라 한즉 그들이 그것을 내게로 가져왔기로 내가 불에 던졌더니 이 송아지가 나왔나이다”(출32:22~24).
하나님 앞에 핑계나 변명은 절대 통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바로에게 가서 이스라엘 백성을 데리고 나가겠다고 말하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모세가 핑계 반, 변명 반 늘어놓습니다. “나는 본래 말에 능치 못한 자라 주께서 주의 종에게 명하신 후에도 그러하니 나는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 자니이다”(출4:10). 계속 모세가 변명하자 하나님이 노를 발하셨습니다. 그리고 핑계대지 못하게, 변명하지 못하게 입을 막으셨습니다. “이제 가라 내가 네 입과 함께 있어서 할 말을 가르치리라”(출4:12)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핑계와 변명한 자를 어떻게 대하시는지 볼까요? 마태복음 25장에는 다섯 달란트 받은 사람과 두 달란트,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주인이 종들에게 각각 돈을 맡기고 떠났습니다. 그러자 다섯 달란트 받은 사람은 “바로 가서 그것으로 장사하여”(마25:16) 다섯 달란트를 남겼습니다. 두 달란트 받은 자도 “그같이 하여”
(마25:17) 두 달란트를 남겼습니다. 그런데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은 땅을 파고 그것을 묻어뒀습니다. 그리고는 주인이 와서 회계하자 핑계를 댑니다. “주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었나이다”(마25:24~25). 그러자 주인이 어찌했습니까? “악하고 게으른 종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마25:26~30)고 했습니다. 누가복음 19장에는 므나로 같은 비유의 말씀이 있습니다. 거기에도 한 므나를 그대로 내놓은 자에게 “저 원수들을 이리로 끌어다가 내 앞에서 죽이라”(눅19:27)고 하셨습니다. 핑계와 변명하는 자를 ‘악한 자’, ‘원수’라고 하신 것입니다. ‘나에게는 핑계나 변명이 안 통한다’고 못 박으신 것입니다.
여러분, 인간의 속성 중의 하나가 핑계를 대는 것입니다. 변명하는 것입니다. ‘부모를 잘못 만나서’, ‘시대가 나빠서’, ‘배운 게 없어서’, ‘못 생겨서’, ‘가진 게 없어서’ 이렇게 핑계를 대는데요. 그렇다면 성공한 사람들은 조건을 다 갖춰서 성공한 걸까요? 아닙니다. 당대에 대기업을 일군 고(故) 정주영 회장의 학력은 초등학교 중퇴입니다. 세계적인 기업가인 일본의 마쓰시다 고노스케는 몸이 약했고, 지지리 가난했으며, 배우지도 못했습니다. 당신의 핑계가 무용하다는 것을 아시겠습니까? 고아라서 힘들다고요? 그럼 에스더는 누구입니까? 서자로 태어나서 안 된다고요? 그럼 입다는 누구이고, 과부라 안 된다면 룻은 누구입니까? 이초석 목사가 이단 소리를 들어서 지교회가 부흥을 못한다면 성공한 지교회는 뭡니까? 환경이 나빠서 안 된다면 두바이의 건설은 무엇입니까?
마가복음 2장에는 중풍병자를 예수께 데리고 온 네 친구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들이 병든 친구를 고치기 위해 예수님 곁에 가려하였으나 사람이 너무 많아 근처에도 갈 수가 없었습니다. 집에 돌아갈 충분한 핑계거리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지붕을 뚫어 방법을 찾았습니다. 이를 보신 예수님은 중풍병을 치료하셨습니다. 바로 이겁니다. 핑계대지 말고 방법을 찾고 노력하고 기도해야 하나님이 역사하십니다.
여러분, 핑계나 변명 뒤에는 ‘게으름’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게을러서 노력하지 않았고, 연구하지 않았고, 공부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래놓고 왜 하나님만 원망하고 탓합니까? 하나님을 왜 무능한 하나님으로 만듭니까? 내 가게가 안 되는 것, 내 교회가 부흥하지 못하는 것, 내가 가난한 것, 다 나 때문입니다. 내 탓입니다. 그걸 인정할 때 발전할 소지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10월 3일, 용산 전쟁기념관 평화의 광장에서 ‘평화통일 기도성회’를 갖습니다. 우리 모두 동참해야 하고, 적극적으로 힘을 합해야 합니다. 그런데 누가복음 14장에 쓰인 사람들처럼 ‘나는 밭을 사서’, ‘나는 결혼을 해서’, ‘나는 소 다섯 겨리를 시험해야 해서’ 라고 핑계대고 뒤로 빠지면 안 됩니다. 하나님께는 절대 안 통합니다. 하나님은 그런 자를 ‘악한 자’, ‘원수’라고 하실 것입니다. 핑계를 버리고 동참하겠다고 마음을 먹으면 하나님이 시간을, 물질을, 능력과 힘을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 지금 예수를 영접하고 열심히 주의 일을 해야 합니다. 훗날 주님 앞에 섰을 때, 핑계는 안 통합니다. ‘몰랐다’고 해서 정상참작이 되지 않습니다. ‘시간이 없었다’고 해도 안 통하니 지금 신앙생활을 잘해야 할 것입니다.
실패자의 주머니에는 핑계와 변명이 있고, 성공자의 주머니에는 방법이 있습니다. 당신의 주머니에는 무엇이 있습니까? “너희는 변명할 것을 미리 연구치 않기로 결심하라”(눅21:14). 할렐루야!
최고가 되기 원하면
매사 최선을 다하라
무슨 일에나 핑계와 변명은
살아남기 위한 조잡한 수단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