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에 충실한 자는 망하지 않는다(막7:6~23)
서울에 효자동이란 동네가 있습니다. 이 동네가 ‘효자동’이라 불리게 된 유래는 다음과 같습니다.
이 동네 어느 집에 나이 많은 할아버지가 있었는데, 그 할아버지가 약주에 취해 그만 실수로 이불 밑에 어린 손자가 있는 줄 모르고 베고 자는 바람에 손자가 죽고 말았습니다. 이 할아버지는 자기가 손자를 죽였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쿨쿨 잤습니다. 아이의 엄마인 며느리가 방에 들어갔다가 놀라 아이를 안고 나와 숨죽여 울다가 뒤늦게 집으로 돌아온 남편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했습니다. 그러자 아이의 아버지는 “이 자식아, 너는 왜 죽어서 할아버지 마음을 아프게 하느냐? 너 때문에 이 아비가 네 할아버지께 씻을 수 없는 불효를 저질렀으니 이를 어떡하면 좋으냐?”고 죽은 아이를 털썩 털썩 손바닥으로 쳐대며 괴로워했습니다. 그러자 죽었던 아이가 울음을 터뜨리며 살아났습니다. 이 일이 동네에 퍼지고 임금님 귀에 까지 들어가 그 동네 이름이 ‘효자동(孝子洞)’이라 불리게 되었다고 합니다.
요즘 이런 이야기 들으면 다들 “말도 안 돼.” 할 겁니다. 디모데후서 3장 2절에 말세 현상 중에 하나가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눈 씻고 살펴봐도 효 없는 사회가 된다고 이미 말했습니다. 지금이 그렇습니다. 효는 고사하고 늙고 힘없는 부모를 때리고, 외국에 갖다 버리는 신종 고려장이 사회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노인들이 며느리 눈치 보느라 아침이면 정처도 없이 집을 나와 굶고 거리를 헤매고 있습니다. 참 어처구니없는 세상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효는 모든 덕의 근본이 됩니다. 효가 무너지면 다른 모든 도덕도 따라서 무너집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십계명 중의 인간과의 관계에서 제1계명으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출20:12)”고 하셨고, 효가 약속 있는 첫 계명(엡6:2)이라 말씀하시고는 덧붙여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엡6:3).
이 땅에서 잘되고 장수하는 게 모든 사람들의 소원일 겁니다. 그렇지요? 그런데 그 방법이 바로 부모를 공경하는 것, 곧 효도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니 억지로라도 효도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억지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맨 구레네 시몬이 복을 받은 것처럼, 억지로라도 효도하면 복이 임하지 않겠습니까? 정조 때 어머니를 업고 용안을 보러 나온 효자가 상을 받는 것을 보고 불효자로 소문난 망나니가 어머니를 업고 길에 엎드려 기다리자 임금이 모든 것을 알고도 똑같이 상을 준 것처럼 말입니다.
정말 효도를 하면 이 땅에서 잘 될까요? 성경에 보면 효성이 지극했던 사람들이 하나님의 귀한 복을 받은 사람들임을 알 수 있습니다. 룻은 과부된 시어머니, 변변히 먹을 것조차 없었던 시어머니를 따라가며 효도했습니다.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유숙하시는 곳에서 나도 유숙하겠나이다”(룻1:16).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에게 큰 상급을 주시니 만대의 아름다운 여성으로 보아스라는 사람을 만나 행복한 가정을 갖게 되고, 다윗의 증조모로 귀한 인물이 되었습니다.
요셉도 효자입니다. 그는 어린 시절 멀리서 양을 치고 있는 형들에게까지 심부름을 했습니다. 아직은 그것이 힘에 겨운 나이였지만 아버지 말씀에 순종한 것입니다. 또한 형들에 의해 팔려 어려운 세월을 살았지만 원수 같은 형제들을 용서한 것뿐 아니라 잘 공궤하고 조카들까지 챙김으로 아버지의 마음을 편하게 했습니다. 그런 요셉이 받은 복은 헤아릴 수 없지요. 다윗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린 다윗은 전쟁터에 있는 형들에게 음식을 가져다주기 위해 먼 길을 떠납니다. 사랑하는 아버지의 청이었기에 그는 순종한 것입니다. 요한은 마리아를 어머니로 모시고 여생을 살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예수의 제자 중 가장 오래 살았고, 밧모 섬에서 하나님의 계시를 받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이삭도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명령을 받잡고 이삭을 모리아 산에서 번제로 드리려 할 때, 충분히 도망갈 수 있는 힘과 기회가 있었지만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순종했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도 엄청난 효자입니다. 돌아가시면서도 요한에게 어머니를 부탁할 정도로 육신의 부모에게도 효성이 지극했지만, 하나님 아버지께 “아이고, 아버지! 너무 힘듭니다. 피할 수 있으면 피하게 해주십시오.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눅22:42)라고 말씀하시고 고통의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이렇듯 효란 순종입니다. 이해할 수 없을 때에도 순종하면 반드시 하나님이 축복을 주십니다.
미국 초대 대통령인 조지 워싱턴, 그는 어렸을 때 뱃사람이 되는 게 꿈이었습니다. 멋진 선장이 되어 바다를 헤쳐 다니고 싶었습니다. 드디어 결심을 하고 집을 떠나려할 때 어머니가 하염없이 울었습니다. 워싱턴은 그 때 생각을 바꾸었다고 합니다. ‘내 어머니 눈에 눈물을 흘리게 하면서까지 내 꿈을 좇을 수는 없다.’고 말입니다. 그랬더니 하나님이 그를 높여 대통령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불효자들은 어땠을까요? 노아의 아들 함은 포도주에 취해 하체를 드러내놓고 잠든 아버지를 보고 형과 아우를 불러놓고 손가락질하고 비웃었습니다. 그래서 저주를 받아 종의 종이 되었습니다(창9:25). 압살롬은 아버지 다윗을 몰아내고 자신이 왕이 되려고 쿠데타를 일으켰고, 아버지를 죽이려 쫓아다녔습니다. 그런 그의 말로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제대로 왕권도 누려보지 못하고 도망가다가 그 머리채가 상수리나무에 걸려서 병사들에 의해 창에 맞아 비참하게 죽었습니다(삼하18). 삼손도 이방여인과 사귀지 말라는 부모의 간곡한 말씀을 거역하다가 결국에는 이방여인에 의해 비참한 말로를 맞이했습니다(삿16).
제가 아는 분은 미국에 사는 아들이 들어오라고 해서 재산을 정리해 들어갔는데, 얼마 후 자살했습니다. 왜요? 의사인 자식이 병원 늘린다고 재산을 달라고 해서 줬더니 용돈을 조금씩 주더랍니다. 그래서 조금 더 올려달라고 했더니 아들 녀석이 “노인네가 무슨 돈이 그렇게 필요하냐?”고 화를 냈답니다. 그래서 며느리에게 얘기했더니만 며느리가 아들에게 쪼르르 얘기해서 난리가 난 모양입니다. 그 날 밤에 노인네 둘이서 술을 먹고 자살했답니다. 이게 실화입니다. 씁쓸합니다.
“그 부모를 경홀히 여기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신27:16), “그 아비나 어미를 저주하는 자는 반드시 죽일찌니라”(출21:17), “아비를 조롱하며 어미 순종하기를 싫어하는 자의 눈은 골짜기의 까마귀에게 쪼이고 독수리 새끼에게 먹히리라”(잠30:17)고 성경은 말씀함으로 불효자에게 임하는 하나님의 심판이 얼마나 큰가를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고르반’이란 것이 나옵니다. 예수님 당시 랍비들은 ‘고르반’이라는 명목으로 부모공양의 책임을 면제받았습니다. ‘고르반’은 하나님께 헌납을 서약한 것으로, 재산을 성전에 바치겠다고 서약하면 그 재산을 언제 바치든지 관계없이 부모 공양을 면제받았습니다. 이 유전을 미끼로 랍비들이 부모 공양에 소홀한 것을 예수님은 나무라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외식하는 자’라 칭하시고,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 도다’라고 통탄해 하셨습니다.
요즘 ‘신종 고르반’이 많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한답시고 부모를 나 몰라라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옳지 않은 처사입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보이는 부모도 공경 못하면서 어떻게 보이지 않는 나를 공경할 수 있느냐고 가르치셨습니다(요일4:20). 그러니 예수 믿는 자들이 더 효도해야 합니다. 그래야 안 믿는 자들도 보고 효도하고, 더 나아가 예수를 믿지 않겠습니까?
여러분, 부모는 효도할 때까지 기다리지 않습니다. ‘여유 좀 있을 때 효도하지.’ 하면 늦습니다. 효도는 마음입니다. 마음이 있으면 전화 드리게 되고, 자주 찾아뵙게 되고, 순종하게 되고, 작은 것이라도 드리게 됩니다. 자식이 귀하지요? 나 안 먹어도 자식에게 다 주고 싶지요? 당신 부모도 당신을 그렇게 키웠습니다. 자식이 봄이라면 부모는 이제 겨울입니다. 곧 해가 집니다. 그러니 자식에게 보다 좋은 걸로 드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더 잘해드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효란 대물림입니다. 보고 배우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효도하면 나중에 자식도 효도하고, 하나님이 복과 장수를 주실 것입니다. 나중에 후회 말고 지금 효도합시다. 할렐루야!
효자 집안에서
충신 나는 법이다
철들자 이미 백발이요
부모는 기다려주지 않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