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
2008년 우크라이나 키예프 집회 때, 필립 목사는 단에 올라 목사님을 이렇게 소개했다.
“오늘 여러분에게 소개할 목사님은 21세기의 사도며, 하나님의 종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이십니다. 또한 그분은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는 분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분을 이해하는데 1%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분은 오히려 예수님의 친구이십니다. 이제 예수님의 친구 되시는 이초석 목사님이 나오시겠습니다!”
그가 목사님을 만난 것은 지난 2003년 한국의 영성세미나 때이다. 물론 그 전에 목사님의 여러 해외집회 영상을 통해 목사님을 알게 되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 짧은 만남을 통해 어떻게 목사님을 저리도 잘 알 수 있을까 의아했다.
‘예수님의 친구’라는 말은 목사님의 설교를 통해서 배워 알게 되었을 것이라 이해했다. 그런데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는 분이다’ 라는 분석은 좀 놀라웠다. 보통 목사님을 이야기할 때, 기성 교단이나 기독교 언론들이 18번처럼 떠들어대는 말들을 떠올려보면 더욱 그러하다.
‘귀신만 쫓네, 기복신앙이네’ 하며 공격하지 않던가? 필립 목사가 그 짧은 만남으로도 파악 해내는 것을 왜 그들은 보지 못하는 것일까? 혹시 보지 않으려는 것은 아닐까?
목사님의 메시지는 믿음과 지혜에 관한 말씀이 주를 이룬다. 당신 스스로도 ‘나에게 배울 것은 믿음과 지혜뿐’이라고 단언하신다. 믿음만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고(히11:6), 그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잠9:10)이기 때문이다. 믿음으로 구원 받고, 믿음으로 고침 받고, 믿음으로 하나님의 역사를 만나고 체험하게 되기 때문이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기 때문이다(롬1:17). 또한 지혜가 제일이니 지혜를 얻으라(잠4:7)고 하셨고, 지혜는 그 얻은 자에게 생명나무라 지혜를 가진 자는 복되다(잠3:18)고 하셨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한 뜻의 궁극적인 바는 물론 우리 모두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지만, 그에 더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가 이 땅에서 영혼이 잘됨 같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하기를 또한 간절히 바라신다(요삼1:2).
기독교에는 그 정수가 되는 핵심적인 메시지가 있고, 아울러 이 땅의 삶을 규정하고 교훈하고 인도하는 지혜의 메시지가 있다. 성경을 종합적으로 보아야 하고, 하나님의 광대하심을 인간의 잣대로 재단해서도 안 된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을 만드신 분이다. 성경은 우리를 만드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인생지침서이다. 우리 인간이 어디로부터 와서 어디로 가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어떻게 구원을 받는지, 무엇이 가장 가치 있는 삶인지, 너무나도 상세하고 자상하게 기록해주신 설명서이다. 그런데 사람들이 듣고 싶은 거만 듣고, 보고 싶은 거만 본다. 그래서 서로 정죄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사분오열시킨다. 지극히 지엽말단적인 문제들을 가지고 정죄하고 편을 가르려 한다. 예수님조차도 추수 때까지 가라지를 그냥 두라고 하셨건만, 왜 스스로 예수님보다 위에 서서 뽑아내려 난리고 아우성인지 모르겠다. 하나님의 말씀은 나를 돌아보고, 나를 점검하고, 나를 가르치라는 말씀이지, 남을 정죄하라고 주신 말씀이 아닌데 말이다.
기도하고 말씀 보고 전도하고 구제하는 삶은 그리스도인의 향기가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세상을 지배하고 정복하고 다스리라고 주신 이 땅의 삶 또한 믿음과 지혜를 가지고 누리는 것이 마땅하다. 잘못하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주신 자유를 스스로 만든 율법의 틀 안에 가두어 자유자가 아닌 종의 삶에 자족하며 사는 어리석음을 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소유한 부자들이다. 천국시민으로 영원한 복을 받은 자들이다. 그래서 어떤 환경이나 조건에서도 감사하고 기뻐하며 이해하고 양보할 수 있는 것이다. 더 큰 것을 바라보기 때문이다. 우리 목사님을 본받아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자.
한은택 전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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