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예수의 이름을 가르치지 말라 했나?(행4:12~21)
예수의 부활을 전하던 베드로와 요한이 제사장들과 사두개인에게 잡혀 옥에 갇히는 장면이 사도행전 4장에 나옵니다. 이 일로 산헤드린 공회가 소집되었는데, 이날 대제사장을 포함한 그들 문중이 내린 결론은 이것입니다. “도무지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행4:18).
왜 그들은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고 했을까요? 도대체 예수의 이름이 무엇이고, 어떤 능력이 있기에 그랬을까요?
처녀 마리아가 성령으로 잉태되었을 때 주의 사자가 나타나 아들의 이름을 ‘예수’라 하라고 했습니다(마1:21). 그런데 성경은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저희를 보전하사”
(요17:11)라고 말씀합니다. 무슨 말이냐,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이 ‘예수’라는 것입니다. 곧 예수의 이름이 하나님의 이름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당신의 이름과 권세를 이 땅에 오신 예수께 주셨습니다. 전권이양을 하신 것입니다.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마28:18). 그래서 예수 이름 앞에 하늘의 것과 땅의 것, 그리고 땅 아래의 것들이 복종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빌2:9~10).
그런데 예수께서 죽은 지 사흘 만에 부활 승천하셨고, 그 이름으로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셨습니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요14:26). 이는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의 이름도 예수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삼위일체(三位一體) 하나님의 이름이 ‘예수’인 것입니다.
대제사장이나 사두개인, 서기관들은 사도들이 이 예수의 이름으로 많은 기사와 표적을 나타낸 것을 직접 봤고 들었습니다. “이 사람들을 어떻게 할꼬 저희로 인하여 유명한 표적 나타난 것이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알려졌으니 우리도 부인할 수 없는지라”(행4:16). 그들은 ‘유명한 표적’, 즉 베드로가 예수 이름으로 명하니 미문에 있던 앉은뱅이가 일어났다는 소문을 들었기에 두려웠고(행3:1~10), 또한 그것이 소문나면 결국 그들이 죽인 자가 하나님의 아들인 것과 예수 이름이 하나님의 이름인 것을 시인해야 했기에 그들은 예수 이름을 입 밖에도 꺼내지 못하게 한 것입니다. 그래서 야고보를 죽였고, 베드로와 바울을 옥에 가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의 이름은 천하 만물을 지으시고 주관하시는, 인간을 지으시고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이름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최고의 이름, 바로 예수의 이름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어떻게요? 회개하고 예수 앞에 나오면 누구나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1:12).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가 된 자들에게 예수 이름으로 오신 성령을 부어주십니다.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이 예수의 이름으로 우리 속에 오시면 더불어 그 예수의 권능도 우리에게 옵니다.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행1:8). 성령이 임하자 베드로를 비롯한 사도들과 집사들이 나가 예수 이름으로 기적을 일으킨 것이 바로 그 증거입니다.
제가 귀신을 쫓고, 앉은뱅이를 일으키고, 소경의 눈을 뜨게 하며, 각색 병을 고치는 것은 이초석의 이름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예수의 이름으로 하는 것입니다. 제가 자주 말하는 일화가 있습니다. 목회 초창기에 귀신을 쫓는데, 귀신이
‘너는 못 쫓아’ 그러는 겁니다. 순간 움찔했습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제 입술을 주장하시기를 “그래, 나는 못 쫓아. 그러나 너 예수 알아? 내가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이 사람 몸에서 나가!” 했더니 바로 귀신이 나가고 깨끗함을 입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인 예수 이름 앞에는 모든 것이 복종해야 할 의무가 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가 앉은뱅이를 일으키고, 심지어 바울의 손수건이나 앞치마만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어도 나음을 받은 이유가 이것입니다. “사도들을 가운데 세우고 묻되 너희가 무슨 권세와 뉘 이름으로 이 일을 행하였느냐 이에 베드로가 성령이 충만하여 가로되 백성의 관원과 장로들아 만일 병인에게 행한 착한 일에 대하여 이 사람이 어떻게 구원을 얻었느냐고 오늘 우리에게 질문하면 너희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알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고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사람이 건강하게 되어 너희 앞에 섰느니라”(행4:7~10).
예수 이름을 소유한 당신도 베드로나 바울처럼, 그리고 이초석 목사처럼 권능을 행해야 합니다.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찌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막16:17~18). 즉 예수를 믿고 세례를 받은 자는 예수 이름의 권세를 소유하여 예수 이름으로 귀신을 쫓고, 병든 자에게 손을 얹으면 낫게 된다는 것입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15:5)고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포도나무에 붙어 있는 가지는 곧 포도나무입니다. 내 팔이 나 아닙니까? 내 팔이 몸에 붙어 있으면 곧 나듯, 우리가 예수 안에, 예수가 우리 안에 계시면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권능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행1:8). 그래서 우리가 그 권능으로 귀신을 쫓고, 천사를 명하며, 하늘과 땅, 그리고 땅 아래의 것들을 명령할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보다 더 큰 일도 행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요14:12).
포도나무 가지 자체는 아무런 능력이 없지만 포도나무에서 공급된 영양으로 포도나무 가지가 열매를 맺듯, 포도나무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우리도 예수님과 같은 일을 하는 것입니다. 곧 예수의 이름으로 우리가 악령을 쫓고, 예수 이름으로 가난과 고통을 쫓는 것이며, 또 예수 이름으로 병을 쫓아내고, 예수 이름으로 축복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포도나무에서 떨어지면 포도나무 가지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땔감도 안 됩니다. 우리를 포도나무로 비유하신 예수님의 뜻을 알아야 합니다. 포도나무에서 떨어지지 않도록 늘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라는 것입니다.
당신은 왜 예수 이름의 권세를 사용하지 않습니까? 총알이 장전된 총일지라도 방아쇠를 당기지 않으면 호랑이는 고사하고 토끼 한 마리도 잡을 수 없습니다. 돈도 주머니에 있을 때는 아무런 권세가 없습니다. 돈을 사용해야 돈의 권세가 나타나듯, 예수 이름을 소유만 하는 것으로는 아무런 표적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예수 이름을 사용하여 명령하고, 예수 이름으로 귀신을 쫓고, 예수 이름으로 축복하고, 예수 이름으로 안수해야 예수 이름이 나가서 여러분이 구한 것을 얻게 하는 것입니다.
소 새끼는 소이고, 개의 새끼는 개입니다. 사람의 자녀는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는 무엇입니까? 다들 이 질문에 입을 다물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 예수님의 형제로 신적 권위를 가졌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폐하지 못하나니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을 신이라 하셨거든”(요10:35). 그러니 당당하게 예수 이름으로 만물을 명령해야 합니다. 그래서 행복하고, 건강하게, 풍성하게, 머리로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당신의 아들을 이 땅에 보내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의 뜻입니다. 할렐루야!
배움의 끝은 실천이다
예수 이름을 사용하라
물 떠난 고기는
벌레밥이 되고 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