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 뒤에 영광
여보게!
사람들이 내게 ‘왜 요즘은 빨간색 넥타이를 안 매고 노란색 넥타이를 즐겨 매냐’고 묻더군. 그래서 내가 뭐라고 했는지 아는가? 이젠 고난의 시기가 지났다고 했네. 지금부터는 영광의 시대를 살 거라고 말일세. 늘 눈 덮인 산야, 물 없는 사막이겠나. 이제는 초목이 푸를 때도 됐지 않나.
겨울이 아름다운 이유는 다가올 봄이 있기 때문이라네. 계속 겨울만 있다면 하얀 눈도 마냥 아름다울 수 없지. 싹이 나고 얼음이 녹는 봄이 있어 매서운 겨울도 맛이 있는 거라네. 우리 주님도 십자가를 지고 죽는 고난을 치르고 하늘보좌 영광의 자리에 앉아계시지 않은가.
사람들은 고난을 싫어하지. 그건 고난 뒤에 영광이 있음을 모르기 때문이네. 고시를 준비하는 자들을 보게. 몸 하나 누이기에도 빠듯한 고시원에서 세상과 단절하고 엉덩이가 무르도록 책만 파고 있지 않은가. 나중에 검정 가운 입는 영광을 위한 것이지. 새벽에 스케이트장에 나가기가 그렇게 싫었던 김연아 선수의 지금 영광이 그 때 그 고난의 열매 아니겠나.
고난 없는 삶은 없네. 그런데 고난을 삶의 자양분 삼느냐, 아니면 고난이라는 늪에 빠지느냐에 따라 영광이냐 파멸이냐로 갈리지. 바람이 분다고 방 안으로 들어가 버리는 자가 있는가 하면, 바람이 불 때 연을 날리는 자가 있지. 누가 지혜로운 자이고 성공한 자일까.
여보게!
세상에서는 고진감래(苦盡甘來)라 했고, 성경은 고난이 유익이라고 했네(시119:71). 우리 현진옥 권사가 잘 부르는 “왜 나만 겪는 고난이냐고 불평하지 마세요. 고난의 뒤편에 있는 주님이 주실 축복 미리 보면서 감사하세요.”라는 찬송처럼 축복을 미리 보면 고난이 유익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네. 배를 만드는 일은 고단한 고난이지만, 그 고난을 잊는 것은 배를 타고 망망대해를 건너는 상상 때문이라네. 신앙도 그렇다네. 우리가 가는 길이 협착하고 고난의 길이지만, 그날에 받을 영광을 생각하면 그다지 힘든 길도 아니라는 것이지(롬8:18).
지금 힘든가? 고난 중에 있는가? 이 또한 지나가고, 그 뒤에 웃는 날이 올 거라네. 그러니 고난을 이겨내게. 하나님이 이길 힘을 주실 것이네.
朋友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