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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0호 목차 › Text 주일설교

예방책이 최상책이다 (딤후4:1~8)

810호 · 2015-09-04

저는 지난주일 설교 때에 전도하지 않는 우리 성도들을 질타하면서 ‘우리 교회가 병들었다’고 통탄했었습니다. 이 말에 가장 충격을 받은 사람은 서울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이시대 목사였습니다. 그는 금요집회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제가 목사님을 28년 따라왔지만 교회가 병들었다고 말하시는 것은 처음 들었습니다. 이는 분명히 하나님께서 목사님의 입술을 통해 말씀하신 것이라 믿습니다. 지금 우리 교단이 무슨 병에 걸렸는지 진단해서 고쳐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병중에 제일 무서운 병은 자각증상이 없는 병입니다. 눈이 안 보인다거나 허리가 아프다거나 속이 쓰리다거나 하는 증상이 나타나는 병은 초기에 병원에 가서 고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암은 대체로 아무런 증상이 없습니다. 증상이 나타났을 때는 이미 3기다, 말기다, 온 몸에 퍼져서 손을 쓸 수 없다며 사형선고를 내리기 일쑤입니다.

하나님도 알고 나도 아는 죄는 회개하면 되니까 괜찮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알고 계시는데 나는 모르는 죄, 그것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자각증상이 없는 죄, 인지 못하는 죄가 가장 무서운 죄라는 겁니다. 왜요? 죄가 죄인지 모르니까 그 죄를 반복해서 짓기 때문입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그런 경우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외식하고 있는지 모르고 있었습니다(마23:33). 그들은 착각하고 있는 겁니다. 자신들이 의로운 자들인 줄 아는 거지요. 마태복음 24장과 25장은 말세를 만난 우리에게 주님이 주신 메시지입니다. 종말론이지요. 그 주제가 무엇이냐면 바로 착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등불은 있으나 기름을 준비하지 않은 다섯 처녀가 당연히 혼인잔치에 갈 것이라고 생각한 것은 착각이니 너희들은 깨어 기도하라는 말씀이고, 한 달란트 받은 자가 그것을 땅에 묻어놓았다가 주인 앞에 다시 내놓을 때 다섯 달란트 남긴 자처럼 칭찬 받을 줄 기대했다면 그것 역시 착각이니 너희들은 받은 달란트대로 일하여 남기라는 것입니다. 또한 자기의 배만 채우면서 주님의 오른편에 설 줄로 생각했다면 그것도 착각이니 너희들은 가난한 자, 외로운 자에게 베풀면서 살라는 것입니다. 우리도 착각하고 사는지 모릅니다. 내가 적어도 목사인데, 내가 장로인데, 헌금도 꼬박꼬박 내는데… 하면서 말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3장의 말씀입니다.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계3:17).

요한계시록 3장 1절에는 사데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책망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데 교회에게 ‘너희의 행위를 보면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실제로는 죽었다’고 하셨습니다. 영적으로 죽었다는 말씀입니다. 목사라면서, 장로라면서, 권사요 집사라면서 교회가 썩었다는 말을 듣고도 번민하지 않고 가슴에 찔림이 없다면 허울뿐인 목사요, 장로요, 권사, 집사입니다. 영적으로 죽은 자요, 영적 문둥병에 걸린 자들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경고는 우리가 살 가능성이 있을 때 하십니다. 의사도 살 가능성이 있는 사람에게 운동해라, 수술하라고 권하지, 가능성 없는 자에게는 집에 가서 먹고 싶은 것 실컷 먹어라 하지 않습니까? 하나님도 우리에게 가능성이 있기에 경고하신 것입니다.

사도행전 2장에 보면 베드로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가 메시아임을 들은 유대인들은 마음에 찔림을 받아 “우리가 어찌할꼬”(행2:37)라고 했습니다. 이에 베드로가 회개하고 성령을 받으라고 하자 그 날 3천명이나 되는 사람이 예수를 메시아로 고백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사도행전 7장에 보면 대조적인 반응이 있습니다. 스데반의 말을 들은 공회원들은 마음에 찔려 스데반을 돌로 죽이고 맙니다. 오늘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신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나는 어찌할꼬’ 통탄하며 자신의 신앙을 점검하고 진단하는 이시대 목사 같은 자가 있는가 하면, 하나님의 경고의 음성을 듣고도 깨닫지 못하고 오히려 반감을 가지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에게 경고하신 것은 죽이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건강케 하려고 하신 것입니다. 앞으로 30년 다시 시작하기로 했는데, 병든 목사, 병든 장로, 병든 권사와 집사를 데리고 갈 수 없으니까 건강한 교회, 건강한 성도들을 만들어 예전보다 더 크게 쓰시려고 우리 교회에게 하나님이 경고하신 것입니다.

성장하지 않는 교회, 가정, 기업, 나라는 어디가 병이 들어도 단단히 든 것입니다. 디모데전서 4장에 바울은 디모데에게 ‘전심전력하여 진보를 보이라’로 했습니다(딤전4:15). 성장을 보이라는 것입니다. 맞습니다. 성장이 없는 것은 죽은 것이거나 병든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이, 우리의 영혼이 성장하지 않고 진보하지 않는다면 지금 심하게 병든 것입니다. 그러니 지금 진단하고 수술해야 합니다. 시기를 놓치면 손을 쓸 수 없고, 결국 사망하게 될 것입니다. 에스겔서 10장에 보면 배역을 일삼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염증을 느낀 하나님이 다신 그들과 대화하지 않겠다고 하신 장면이 나옵니다. 얼마나 신물이 났으면 그러셨겠습니까? 하나님이 기회를 줄 때 돌이켜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지속적으로 많은 선지자를 보내어 경고했건만 돌이키지 않으니 하나님이 진노하신 것이고, 그들과 관계를 끊으신 것입니다. 우리에게 보내신 하나님의 사인을 인지해야 합니다. 요나의 말에 니느웨 모든 사람들이 회개하고 변화한 것처럼, 나단의 경고에 다윗이 눈물로 회개하고 평생에 말씀을 준행한 것처럼, 우리도 이번 기회에 영혼상태를 진단하고 수술해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 세월이 가면 겉사람이 후패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겉사람이 후패해간다고 해서 덩달아 속사람까지 후패해간다면 문제가 있습니다. 다윗이 나이가 들어갈수록 더욱 주의 일에 매진했던 것처럼, 그의 영성이 날로 진보했던 것처럼, 우리의 영성은 날이 갈수록 그래야 합니다.

왜 영성이 후퇴하는지 압니까? 그것은 눈에 보이는 것을 추구하고 좇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과 롯의 경우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둘 다 겉사람은 후패해갔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행했고, 본향을 사모하며 살았기에 범사가 형통하는 복과 자손의 축복을 받았지만, 롯은 눈에 보이는 세상을 좇다가 그의 영성이 바닥을 드러내어 결국 비참하게 되었습니다. 보이는 팥죽 한 그릇을 좇은 에서와 보이지 않는 장자권을 취한 야곱의 경우도 동일합니다. 이렇듯 무엇을 바라보느냐, 어디를 바라보느냐에 따라 속사람의 양상이 달라집니다. 나이가 들었으니 직분 놓고 손주나 봐야겠다 하는 분들, 이제 힘도 없으니까 전도 못하겠다 하시는 분들, 나이 들어 기도 못하겠다 하시는 분들, 지금 자신의 영성을 돌아봐야 합니다. 지금 병든 영혼을 수술하고 건강을 찾아야 무난히 천국에 입성하고, 주님을 뵙는 그 날 당당할 것입니다. 내 영혼을 대신해 줄 사람은 아무도 없으며, 주님 앞에서는 어떤 변명도 통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요6:63).

우리 교회는 이제 건강을 되찾았습니다. 조기 검진하고 처방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예전보다 더 큰 일을 하기 위해서는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그러셨던 것처럼(요3:34).

우리 다시 일어나 우리 교단을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이룹시다. 할렐루야!

조기진단은

암도 고친다

경고를 무시하면

경고도 너를 무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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