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찬이 좋아야 입맛이 난다(잠19:2~8)
성경의 잠언은 지혜서입니다. 이 잠언을 읽다보면 절로 지혜의 샘이 터지게 됩니다. 그러나 아무리 지혜의 샘이 터진다고 해도 그것을 생활에 접목하지 않는다면 그 지혜는 사장되고 말 것입니다.
“너그러운 사람에게는 은혜를 구하는 자가 많고 선물을 주기를 좋아하는 자에게는 사람마다 친구가 되느니라”(잠19:6).
이 말씀 역시 지혜의 샘 속에서 퍼낸 말입니다. 선물이 뭡니까? 선물(膳物)이란 반찬 선(膳)과 만물 물(物)자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선(膳)자의 구조를 보면 달 월
(月)과 착할 선(善)으로 이루어져 밤에 아무도 모르게 전하는 착한 마음을 뜻합니다. 그런데 그 선물을 주면 사람마다 친구가 된다는 것입니다.
야곱과 에서의 관계는 원수지간이었습니다. 여러분도 잘 알다시피 야곱이 에서의 장자권을 가로채서 외가로 줄행랑쳤었기 때문입니다. 천신만고 끝에 거부가 된 야곱은 늘 고향이 그리웠습니다. 그런데 갈 수가 없었습니다. 형 에서가 문제였습니다. 이제나저제나 하고 칼을 갈면서 기다리는 형이 떡하니 버티고 있었기 때문에 두려웠습니다. 그야말로 옛 유행가처럼 ‘고향이 그리워도 못 가는 신세’가 된 것입니다. 야곱은 고민하고 또 고민했습니다. 그러다 생각해냅니다. 에서에게 먼저 예물을 보내기로 말입니다. 그래서 염소와 양, 낙타와 황소를 택하여 앞서 보냅니다. 이는 “야곱의 생각에 내가 내 앞에 보내는 예물로 형의 감정을 푼 후에 대면하면 형이 혹시 나를 받으리라 함이었더라(창32:20)”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정말 형이 선물을 받은 후에 분을 풀고 오히려 야곱에게 와서는 “내가 너의 앞잡이가 되리라(창33:12)”고 하며, 호위를 자처하게 됩니다. 이처럼 선물은 원수까지도 감동시키며 관계를 회복시키는 윤활유 역할을 합니다.
사무엘상 30장에 보면 다윗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다윗이 길보아에서 시글락에 돌아옵니다. 그런데 돌아와 보니 시글락이 아말렉 군대에게 약탈당한 상태였습니다. 재산은 물론이고 아내와 자식들까지 다 잡혀가고 없었습니다. 참으로 황당했습니다. 다윗은 아멜렉 군대를 뒤쫓기로 했습니다. 다윗은 군사 중 200명은 너무 지쳐 있는 관계로 제하고 400명의 군사만을 이끌고 아말렉 진영에 뛰어들어 그들을 전멸시키고, 포로로 끌려간 이스라엘 백성과 가족들을 되찾아옵니다. 당연히 많은 전리품도 취했지요.
여기서부터 다윗의 행동을 잘 봐야 합니다. 전리품을 나누는 과정에서 다윗은 전투에 참석하지 않고 후방에 남아 있던 200명에게도 동일하게 전리품을 나눠줍니다. 전투에 참석한 자들이 불평했지만, 다윗은 그것을 동일하게 나누었습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전리품의 일부를 유다 지파의 장로들에게도 제공합니다. 잘 생각해보십시오. 전투에 참석하지 않은 자들이 전리품을 받고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유다 지파의 장로들은요? 그들이 다윗의 친구가 됨은 물론이요, 다윗을 위하여 자기의 목숨이라도 선뜻 내놓지 않겠습니까?
중국도 예로 들어봅시다. 중국의 대외원조는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입니다. 특히 아프리카의 원조는 아주 구체적이며 아프리카 사람의 마음을 사기에 충분할 정도입니다. 아프리카의 숙원사업은 부족한 식량문제를 푸는 것인데, 중국은 아프리카 농지개간에 투자하고 품종을 개량하며, 아프리카 젊은이들을 자국에 불러들여 농업교육을 시키고 있습니다. 또한 종합병원을 짓고, 항만시절에 투자하는 등 일사천리로 아프리카 인프라사업에도 적극 지원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 일은 많은 서방국가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지만, 중국은 개의치 않습니다. 그들의 속내가 훤히 보이지만, 분명 이것은 지혜입니다. 아프리카에는 아직도 풍부한 자원이 있습니다. 그들이 그것들을 누구에게 개방하겠습니까? 소금 먹은 놈이 물켠다고 했지 않습니까?
저도 해외 선교를 떠날 때면 항상 다양한 선물을 준비합니다. 거금을 들이는 것이 아니라 아주 자그마한 것들입니다. 대개 이태원에서 파는 우리나라 전통문양이 그려진 지갑이나 넥타이 같은 것들인데요, 집회를 주관하는 현지 목회자들이나 집회를 적극 돕는 권력 및 재력가들에게 저는 넥타이를 선물하고는 직접 목에 매어 줍니다. 그리고 꼭 한 마디를 덧붙입니다. “우리 변치 말고 주를 위해 같이 목을 맵시다.”라고요. 이러면 그들은 굉장히 감격해합니다. 또 지갑을 선물하면서 “당신 평생에 재물이 마르지 않게 될 겁니다.” 이렇게 말해주면 그들은 지갑 이상을 선물로 받은 기쁨을 표현하며 더욱 충성을 다지게 되는 것을 봅니다.
이것을 실생활에 활용하는 겁니다. 시어머니께 작은 선물을 해보세요. 시어머니의 마음이 살짝 열릴 것입니다. 그 때 진심을 전하면 모든 것이 해결되고 화해될 것입니다. 아내가 요새 시큰둥합니까? 오늘 퇴근길에 예쁜 티셔츠라도 선물해보세요. “여보, 이거 별거 아니지만, 내 맘이야.” 하고 전하면 아내의 마음이 녹을 것입니다. 또 남편의 주머니에 용돈을 몰래 넣고는 ‘기죽지 말고 살아요.’라고 쪽지라도 써넣으면 처진 남편의 어깨가 펴지지 않을까요? 직장이나 거래처에도 작은 선물로 마음 문을 먼저 열어보세요. 그리고 덧붙이고 싶은 말은 선물을 무슨 때에만 하지 말고, 일이 생겨야 하지 말고 평소에 하세요. 그래야 효과가 좋습니다.
또한 성경에는 “선물은 그 사람의 길을 너그럽게 하며 또 존귀한 자의 앞으로 그를 인도하느니라”(잠18:16)는 말씀도 있습니다.
솔로몬의 지혜와 명성은 아라비아 반도 서남부에 위치한 사베안 왕국의 스바 여왕에게까지 들렸습니다. 스바 여왕은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많은 수행원을 대동하고 솔로몬을 찾아갑니다. 먼 길이라고 빈손으로 간 것이 아닙니다. 스바 여왕은 향품과 금, 보석을 많이 가지고 갔습니다. 역대하 기자는 스바 여왕이 솔로몬에게 드린 향품이 전에는 없던 것이라고 말해 가장 좋은 것임을 입증 했습니다. 솔로몬을 방문한 스바 여왕은 명불허전
(名不虛傳)이라며 혀를 둘러댔고요. 이것이 전례가 되었을까요? 국가 간의 정상이 만날 때면 선물 교환이 먼저 이뤄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예의요, 화해와 평화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시댁에 보내는 예단 역시 같은 개념입니다.
하나님도 우리에게 가장 감동적인 선물을 주셨습니다. 죄 때문에 죽을 수밖에 없던 우리에게 당신의 아들을 주사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엡2:8). 또한 죽었다 부활하신 예수께서 다시 하늘에 오르시면서 회개한 자에게 성령을 주사 세상을 이기게 하셨습니다.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행2:38). 그리고 성령께서 우리에게 은사를 선물로 주심으로 교회에 덕이 되게 하셨습니다.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내가 또한 제일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고전12:31).
이제 주님을 위해 선물을 준비해야 할 때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에게 큰 것을 바라지 않습니다. 작은 헌신과 겨자씨만한 믿음이면 족합니다. 그것을 주님께 드리면 주님은 감격과 감동으로 범사에 잘 되는 복을 선물로 안기실 것입니다.
여러분! 문이 안 열릴 때 힘으로 하려고 하지 말고, 문에 기름을 치는 것이 좋습니다. 마음의 문을 열 때도 기름을 치는 것이 낫습니다. 선물을 주면 됩니다. 기억해야 할 것은 선물과 뇌물은 다른 것입니다. 뇌물은 반드시 대가를 바라는 마음으로 주는 것이나 선물은 주는 것으로 행복하고, 상대가 기뻐하는 것을 보면서 더욱 기쁜 것입니다.
선물은 마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마음, 간절한 마음을 선물에 싣는다면 그것은 인생을 순풍에 돛단 듯이 평안한 길로 인도할 것입니다. 할렐루야!
받는 자보다
주는 자가 더욱 복되다
지혜란
세상을 살아가는 처세술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