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이냐 돈이냐
꿈을 선택하자니 돈이 안 되고 돈을 선택하자니 꿈이 눈에 밟히고.
많은 청춘들이 꿈과 돈 사이에서 갈등하지요. 그런 그들에게 김미경 강사는 이렇게 말합니다. “답은 심플하다. 무조건 돈부터 벌어라.”
이유는 꿈의 성분과 돈의 성분이 똑같기 때문이지요. 꿈을 이루기 위해선 도전, 인내, 열정, 성실함이라는 성분이 필요한데, 돈을 벌기 위해서도 역시 도전, 인내, 열정, 성실함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그래서 돈을 벌고 나면 꿈을 이루기 위한 실력을 갖게 되고, 더 나아가 부모님에게 손 벌리지 않고 내가 내 꿈의 스폰서가 될 수 있다는 것이지요. 보통 돈을 선택하면 꿈을 버리는 거라고, 현실과 타협하는 거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꿈을 이루는 길과 돈을 버는 길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저는 고등학교 졸업할 때부터 대학교 졸업할 때까지 안 해본 아르바이트가 없습니다. 과자 공장부터 핸드폰 공장, 핸드폰 배터리 공장, 음반가게, 서점까지. 단지 등록금을 벌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면 모든 게 지겨운 단순 노동에 불과했겠지요. 저는 그 일이 뭐든 늘 이런 생각을 가졌습니다. 나중에 이 일이 어떤 식으로든 나에게 도움이 될 거야, 라고요. 그래서 어떡하면 조금 더 즐겁게 일할 수 있을까? 어떡하면 조금 더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을까? 그 방법을 찾으려고 했고, 덕분에 같은 시간을 일해도 남보다 더 많은 양을 끝낼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설날이나 추석이 되면 사장님들은 제게 직원보다 더 많은 선물과 보너스를 챙겨주셨지요.
한번은 휴학을 하고 음반가게에서 일을 했는데 손님이 너무 없어서 알바비를 받기 미안할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손님이 오면 그들을 단골로 만들기 위해 사갔던 앨범을 기억해두었다가 다시 오면 그 앨범이 어땠는지 먼저 물어보고 음악 얘기를 꺼내곤 했지요. 모르는 사람과 대화를 시작하고 그 마음을 여는 방법을 그 때 자연스럽게 배우게 되었습니다.
한땐 유학을 가고, 어학연수를 가고, 비싼 돈을 들여야 꿈에 가까워질 수 있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래서 친구들이 외국에 나갈 때 알바를 하고 있는 제가 뒤쳐지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지요. 하지만 그 시간들은 허투루 새지 않고 차곡차곡 쌓여서 저에게 성실한 습관을 만들어주고, 사회생활의 스킬, 일을 대하는 태도, 사람을 얻는 방법을 가르쳐주었지요. 외국에서도 돈을 주고도 못 사는 소중한 것들을요.
혹시 지금 꿈과 상관없는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되나요? 그 일을 그저 돈 버는 일이라고만 여긴다면 하루하루 꿈과 멀어지는 것같이 느껴질 겁니다. 불평이 쌓여갈 겁니다. 이제 조금만 다르게 그 일을 대해보세요. 지금 당신은 꿈을 위해 실력을 비축하고 있다고요. 지금 그 일이 어떤 일이든지 그 작은 일에 충성하면 더 큰 일을 해낼 수 있는 당신으로 변화되어갈 것입니다. 반드시.
-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 찌어다
신은혜
dopal0203@naver.com
위기 앞에서
‘파부침주(破釜沈舟)’. 밥 지을 솥을 깨뜨리고, 돌아갈 때 탈 배를 가라앉힌다는 뜻으로 결사의 각오로 적과 싸우겠다는 결의를 나타낸 말이다. 이는 초나라 장수 항우가 불과 3만 병력으로 진나라 20만 대군을 상대로 승리를 거둔 일화에서 유래한 것으로, 강이나 바다를 등 뒤에 두고 전투에 임한다는 ‘배수진(背水陣)’과도 일맥상통한다. 물론 임진왜란 당시 신립 장군이 이끈 탄금대 전투와 같이 실패한 배수진으로 평가되는 경우도 있고, 나의 강점으로 상대방의 약점을 이기는 전략 등 또 다른 승리의 요인도 함께 작용하는 것이지만, 온 힘을 다해 ‘죽기 살기’의 필사각오로 임한다는 그 정신만큼은 우리 영·혼·육에 적용하여 돌아볼 만하다. ‘열심히 하면 망하고, 죽기 살기로 해야 성공한다’는 말처럼 사력을 다하는 정신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큰 결과를 낳기 때문이다.
굵직한 외국계 기업들을 제치고 국내 커피 프랜차이즈 업계 소비자 만족도 1위를 차지한 이디야(EDIYA)의 문창기 대표는 IMF 외환위기 때 다니던 은행이 무너지며 하루아침에 실업자가 되었던 사람이다. 그의 표현대로라면 그는 은행원 시절 행장을 목표로 삼고 ‘죽기 살기’로 열심히 일했고, 그래서 맡은 분야의 다른 담당자보다 배의 성과를 내기도 했다. 또한 사람을 귀히 여긴 그는 한권에 백 명의 기록이 빼곡한 노트를 여섯 권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그러한 정신은 2004년, 가망 없이 쓰러져가던 이디야를 인수한 이후에도 어김없이 발휘되어 몇 달을 들어앉아 경제, 경영, 철학, 동서양 고전 등을 망라하는 책읽기에 온몸을 바쳤다. 결국 내부고객 만족이 성공의 마스터키가 됨을 깨달은 그는 직원들의 사기를 끌어올리는데 힘을 쏟았다. 직원들의 여가는 물론 그 가족까지 생각한 충분한 보너스 제도, 그리고 매달 빠지지 않는 독서 지도까지. 이 모든 것은 마침내 국내 굴지의 커피 프랜차이즈로 끌어올리는 발판이 되었다.
성경 속 믿음의 선친들도 그와 다르지 않다.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야곱이다. 그가 형 에서와 외삼촌 라반으로 인해 앞뒤 사방이 꽉 막힌 상황에서 어떻게 했는가? 가족들을 먼저 보내고 얍복 강가에 홀로 남아 밤새도록 천사와 씨름을 한 야곱은 천사가 환도뼈를 쳐서 뼈가 어긋나도, 새벽녘이 되어 그냥 가려고 해도 죽기 살기로 그를 놓아주지 않았다. 그리고 기어코 축복을 받아내고야 말았다(창32:13~32). 예수님도 잡히시기 전날 밤 감람산에서 기도하실 때 땀방울이 핏방울같이 되기까지 기도하셨고(눅22:39~48), 사도바울은 자기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따라 자신 또한 힘을 다하여 수고한다고 고백했다(골1:29). 에스더는 ‘죽으면 죽으리이다’ 하는 정신으로 삼일을 금식하고 왕 앞에 나아가 민족을 구원하는 역사를 이루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면 자신의 노력이 결과의 전부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하나님을 알고 신뢰하는 이는 절체절명의 위기의 순간에 하나님 앞에 영적인 배수진을 쳐서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끌어낸다. 이것이 하나님을 경험한 이와 그렇지 않은 이들의 차이다. 영적, 혼적, 육적 위기 앞에 배수진을 치자. 온 힘을 다하는 끈질긴 정신으로 묶여있던 사슬을 풀고 새로운 역사를 이루어가자.
이국진
joyful_jina@hanmail.net
봄이 왔어요
부자 거인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의 정원에는 사시사철 아름다운 꽃이 피었고, 탐스러운 열매들이 주렁주렁 맺혀 있었습니다. 어느 날, 거인이 없는 틈을 타서 동네 아이들이 이 정원에 들어와 뛰어놀다가 거인에게 들켜 호되게 야단쳐서 내쫓겼습니다. 그 후 그곳에는 아주 높은 담장이 생겼습니다.
다음 해 봄이 왔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된 일인지 거인의 정원만은 여전히 매서운 겨울이 계속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거인이 아침에 깨어보니 정원에 따뜻한 햇살과 새소리가 넘치고 있었습니다. 깜짝 놀라 밖으로 나와 보니 담장 한 쪽에 구멍이 생겨 그 사이로 아이들이 들어와 뛰어놀고 있었습니다. 아이들이 놀고 있는 곳에만 봄이 찾아온 것입니다. 그제야 거인은 아이들이 봄을 불러 온 것을 알고 커다란 도끼로 담을 모두 부쉈고, 아이들이 정원에서 마음껏 놀 수 있도록 했습니다. 정원은 새싹이 트고, 다시 예쁜 꽃들과 새들로 가득 차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변했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놀아주고, 아이들을 안아 나무에 올려주는 친절한 사람으로 변해갔습니다. 그런데 그의 마음속에는 늘 한 소년에 대한 그리움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정원에 처음 봄이 찾아온 그날, 자신의 얼어붙은 마음을 입맞춤으로 녹여주었던 소년입니다. 그 후로 소년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세월이 흘러 거인이 노인 되었을 때 장성한 그 소년을 만나게 됩니다. 그 소년의 손과 발에는 선명한 못 자국이 있었습니다. 소년은 이번에는 자신의 정원에 거인을 초대합니다. 그렇게 거인은 자신이 가졌던 정원보다 훨씬 아름다운 정원, 천국에 초대되어 가게 됩니다.
봄은 왔건만 마음은 여전히 삭막하고 추운 자들에게 드리는 소설가 오스카 와일드의 ‘욕심쟁이 거인’이라는 동화입니다. 그 소년은 누구일까요?
예수중심편집실
나의 신앙고백
예수님을 영접한지 6개월 된 남편이
“여보, 다음 주에 애들 데리고 어디 좀 다녀올게. 근데 그 날이 주일이네.” 하며 가뿐한 음성으로 당연하다는 듯 얘기하는데 순간 당황스러웠습니다. 물론 하나님 말씀으로 잘 권면하여 그 약속은 취소되었지만 주일성수에 대한 소중함을 다시 깨닫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주일은 주님의 날입니다. 우리 주인 되시는 주님만 섬기는 날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는 그런 날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마12:8)고 하셨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공짜로 얻은 날이라 하여 주일을 공일이라 칭하기도 합니다. 섬겨야 할 주인이 안계시니 산으로 바다로 내 마음껏 사용하지만, 우리는 공짜로 얻은 날이 아닙니다. 우리 영혼의 주인 되시는 주님을 섬겨야 하는 날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구약성경(출20:9~11)에서도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제 칠일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 인즉…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출20:9~11)”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주일은 나의 신앙을 고백하고 나의 사랑을 표현하는 거룩하고 복된 날입니다. 그래서 내가 가지고 있는 것 중 최상의 것을 드리는 날입니다.
하나님을 하나님 되시게 하는 가치는 자기 자신이 결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 가장 좋은 것은 자기를 위해 쓰고 자녀를 위해 써버리고 남은 찌꺼기만을 하나님께 드린다면 그것이 나의 신앙고백이요, 신앙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주님을 주인으로 잘 섬기고 계시는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