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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과 불통

786호 · 2015-03-20
승리하는 삶

21세기 미디어의 화두는 쌍방향 커뮤니케이션(two-way communication)이다. 과거 우리는 신문이나 TV 등 언론매체의 정보를 일방적으로 전달받는데 그쳤다. 2015년 현재, 우리는 인터넷 신문기사의 좋은 점과 나쁜 점을 자신의 감정에 따라 댓글을 달기도 하고, TV 뉴스에 제보를 할 때도 있다. 이전까지는 ‘관람식 정보전달’이었다면 이제는 소통을 강조하는 ‘참여형 정보전달’로 변화하고 있다.

지금부터 10년 전, 아프리카 TV라는 1인 인터넷 플랫폼 방송시스템이 생겼다. 이 플랫폼은 1인 미디어의 대표적인 사례로 1명의 출연자가 카메라, 마이크, 인터넷만 연결되면 누구든지 다양한 주제(공부, 게임, 스포츠 등)로 방송을 할 수 있다.

지난 2012년 19대 총선 때는 유명후보들의 실시간 선거운동 방송으로 활용돼 주목을 받았으며, 당시 선거방송 누적 시청자수는 하루 평균 10만 명에 이르렀다. 작년 통계에 따르면 2014년 11월까지 누적 시청자수는 40만 명에 이른다.

공중파도 케이블도 아닌 이 인터넷 플랫폼이 인기가 있는 이유는 다름 아닌 유저(user)들과의 소통이다. 1인 BJ(방송 진행자)들은 대부분의 시간을 유저들과의 소통으로만 채운다. TV로 치자면 시청자와 다름없는 사람들과 늘 소통을 하며 방송을 한다.

이 플랫폼의 발전으로 최근 MBC에서는 이 플랫폼을 그대로 착용한 방송 프로그램을 만들고 큰 호응을 얻었으며, 첫 회에서는 소통을 가장 강조한 출연진이 방문객수를 가장 많이 얻어 프로그램 내에서 우승하였다.

우리 교회에도 강력한 소통의 대가가 있다. 그 분은 바로 총회장 목사님이시다. 모든 성도들의 의견에 항상 귀를 기울이시고 어느 한 영혼의 말도 귀담아 듣지 않으신 적이 없다. 성도들이 어느 날 목사님의 하얀 양복이 나이 들어 보인다고 하니 다른 패셔너블한 양복으로 갈아입으시고, 성도들이 목사님께 단에서 다리를 꼬고 앉지 말아달라고 부탁하니 다리를 꼬지 않을 수 있는 다른 의자를 준비해 다리를 꼬지 않으셨다. ‘우리 교회의 제일 높으신 분이고 굳이 저렇게까지 안하셔도 되는데’ 라고 우리는 생각하지만, 목사님은 예수님처럼 어린아이의 소리까지도 귀를 기울이시고 답해주셨다.

하나님도 마찬가지로 소통의 최고봉이시다. 우리는 누구나 항상 일방적인 기도를 한다. 하나님의 의견은 구하지 않은 채 몇 년째, 몇 십 년째 우리의 모든 것을 형통하게 해달라고 본인의 의견만 생각하고 기도한다. 기나긴 시간 때론 감사기도, 때론 원망기도, 때론 협박기도 등 우리의 이런 일방적인 기도에 하나님의 인내심은 항상 저 바다보다 넓어 늘 인자하심으로 답하신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언가 항상 말씀하시지만 우린 우리의 일방적인 기도만 더 할뿐 하나님의 말씀을 잘 귀담아 듣지 않는다. 하나님께는 소통을 바라면서 나는 하나님께 불통으로 답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면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이 성립될 수 없다. 우리는 이제라도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하나님이 나에게 원하시는 길이 무엇이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법이 무엇인지 그분의 의견을 구하고 듣고 행동해야 한다. 그동안 하나님께 불통했던 나 자신을 뒤돌아보며 하나님께 소통으로 나아가자.

“여호와께서 임하여 사무엘아 사무엘아 부르시는지라 사무엘이 이르되 말씀 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하니” (삼상3:10).

송현혜

charisma0691@hanmail.net

참된 깨달음

빈대의 교훈

현대그룹 고(故) 정주영 회장에 대한 일화입니다. 정 회장이 젊은 시절, 인천 부둣가에서 막노동자로 일하던 때였습니다. 그는 노동자 합숙소에서 생활하고 있었는데, 피곤에 쪄든 그를 괴롭히는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것은 빈대였습니다. 하루 종일 일하고 피곤하여 잠을 자려고 하면 빈대들이 물어뜯어 도저히 잠을 잘 수가 없었습니다. 불을 켜고 빈대들을 잡아보기도 했지만 속수무책이었습니다. 무슨 방법이 없을까 생각하다 긴 나무탁자를 만들어 그 위에서 자려고 했지만 빈대들은 포기하지 않고 상다리를 타고 올라왔습니다. 안 되겠다 싶던 그는 이번에는 세숫대야 같은 그릇 네 개를 구해다가 거기에 물을 가득 채운 다음, 상다리를 그 그릇 속에 담가 놓았습니다. 빈대가 물을 어떻게 통과하랴 싶었던 것입니다. 정말 며칠 동안은 빈대가 물지 않아 단잠을 잘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며칠 후, 그는 자다가 벌떡 일어났습니다. 또 빈대가 물어서요. ‘아니, 어떻게 물그릇을 통과한 거야?’ 하며 그는 불을 켜고 어떻게 된 일인가 보았는데 이게 웬일입니까? 빈대들이 벽을 타고 천장으로 기어 올라가 그를 향해 뛰어내리는 것이 아닙니까?

그때, 그는 무릎을 쳤습니다. ‘빈대 같은 보잘것없는 미물도 목표를 향한 노력이 이렇게 대단한데, 만물의 영장인 사람이 목표를 정하고 노력하면 이루지 못할 것이 없지 않겠나!’

그래서 그는 성공이라는 목표를 세우고 질주하여 당대에 대한민국 역사상 최고의 기업을 일궜습니다. 그는 후에 노력해보지 않고 안 된다, 못한다 하는 부하직원들에게 ‘빈대보다 못한 놈’이라고 책망했다 합니다.

안하기 때문에 못하는 겁니다. 더욱이 우리가 누구입니까? 우리는 주님이 주신 능력 안에서 무엇이든 할 수 있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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